낯선 길 위에서
홍성식의 지구촌 방랑기
마케도니아 ①

▲ 새파랗고 투명한 오흐리드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정교회성당.

인간은 누구나 정주(定住)와 유랑(流浪)의 가운데서 삶을 이어간다. 머물러 있는 자는 떠남을 꿈꾸고, 자신이 살던 삶의 터전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은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게 세상사 이치다.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가 말한 바 `가장 아름다운 행복`이 정주하는 일상이라면, 여행은 낯선 유랑의 공간과 만나는 시간이다. 여러 여건 탓에 쉽사리 정주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랑은 꿈이다. 잠시 기자의 길을 접고, 유랑의 다른 이름인 여행을 통해 집이 아닌 길 위에서 꿈을 찾으려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기록과 단상을 통해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에서의 경험,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생경한 체험이 주는 즐거움을 새해부터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여행기는 발칸반도,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나라 터키, 이슬람국가 이란, 인도차이나반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수도 스코페엔 정교회성당·가톨릭교회·이슬람사원이 옹기종기
노벨평화상 수상 테레사 수녀 고향다운 화합의 도시 이미지 물씬
그리스와 출생지 다툼 벌이는 `알렉산더 대왕` 조형물도 눈길


몇 해 전. 신곡 발표를 앞두고 있던 가수 전인권(61)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날의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누군가에게 기다림을 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을 설레게 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행복하다”.

비단 사람만일까. 자신이 태어나 줄곧 삶을 이어온 공간이 아닌, 또 다시 찾고 싶은 `낯선 공간`을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 역시 행복하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마음 속 이상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연재기사를 기획하며 그 첫 시작을 어느 나라로 해야 할 것인지 여러 날 고민했다. 그 고민의 끝에서 내린 결론은 “마케도니아 이야기부터 출발하자”는 것이었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그 이름조차 낯설었던 국가가 어째서 필자의 가슴 안에 언젠가는 다시 찾아가고 싶은 `이상향`이 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하려 한다.

▲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거리의 일상적 모습. 한적하고 평화롭다.
▲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거리의 일상적 모습. 한적하고 평화롭다.
독특한 석회암 지형과 노천온천으로 유명한 터키의 관광지 파묵칼레를 여행할 때였다. 한국의 육개장과 유사한 굴라시를 잘 끓여내는 한 식당에서 중년의 한 부부를 만났다. 미국 플로리다에 산다는 한국인 여성과 미국인 남성 커플이었다. 여성은 도서관 사서, 남성은 교수라고 했다.

터키 이후의 여행지를 고민하던 필자에게 그 부부는 입을 모아 한 나라를 권유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마케도니아가 있어요. 오래 전 거기서 1년쯤 살았는데, 풍광이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하더군요. 수도인 스코페에서 2시간 남짓 달리면 오흐리드라는 마을이 나와요. 크고 깨끗한 호수가 인상적인 시골마을이죠. 우리 둘 다 여행을 꽤 많이 한 편에 속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지는 마을이에요.”

지구의 반대편에서 만난 한국인. 숱한 사연을 간직한 듯한 그 여성의 말투와 표정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마케도니아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나라의 조그만 호숫가 촌락 오흐리드와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질 줄은. 두 번에 걸쳐 2개월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 머물며 적지 않은 현지인 친구들까지 사귀게 될 줄은.

▲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 도심 한가운데 거대하게 자리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 도심 한가운데 거대하게 자리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터키 이스탄불을 출발한 야간열차가 그 이름도 예쁜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향해 달렸다. 자정을 넘겨 터키-불가리아 국경에 도착한 기차. 여행객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하차해 졸린 눈을 부비며 출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거기에 더해 새벽녘 기차 안에서 이어진 불가리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여권검사가 몇차례. 예정된 도착시간을 훌쩍 넘겨 다음날 정오쯤에야 도착한 소피아. 거기서 다시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는 국제버스를 갈아탔다. 삼면이 바다인데다 북쪽은 동일민족이지만 이념이 다른 국가 북한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으면 넘을 수 없는 한국의 국경. 그러나, 유럽은 달랐다. 육로로 이어진 동유럽의 국경은 간단한 입국심사만 거치면 걸어서도 통과가 가능했다. 이런 체험조차 생경하고 신기했으며 또한 즐거웠다. 그렇게 꼬박 1박2일만에 도착한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 거리마다 생소한 키릴문자가 넘쳐났다.

한 나라의 수도라기엔 너무나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스코페의 중심가. 규모로 보자면 포항의 구도심인 중앙로 일대의 크기에도 못 미쳐보였다. 가장 먼저 여행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것은 도시의 규모와 불협화음을 이룰 만치 거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청동조형물. 높이가 족히 수십 미터는 될 듯했다. 사실 알렉산더의 출생지를 놓고 마케도니아는 오랫동안 그리스와 다퉈왔다.

▲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마케도니아에는 터키식 요리가 흔하다. 양고기를 갈아 만든 케밥과 오이와 양파 등 등 각종 채소가 곁들여진 한끼 식사.
▲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마케도니아에는 터키식 요리가 흔하다. 양고기를 갈아 만든 케밥과 오이와 양파 등 등 각종 채소가 곁들여진 한끼 식사.
서로가 “알렉산더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지구 위 대부분의 인접국들이 그렇듯,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도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지금은 유럽 경제불황의 여파를 톡톡히 겪고 있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그러니, 그 반대급부로 한때 유럽은 물론 서남아시아로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알렉산더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서로가 뺏기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다툼은 이방인의 눈엔 과장스럽게 보이는 동시에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리스, 세르비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과 국경을 맞댄 마케도니아는 1991년 9월 요시프 티토(1892~1980)가 주도했던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분리, 독립했다. 한 때 같은 연방국에 속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등이 인종과 종교간 갈등으로 비극적인 유혈사태를 겪은 것에 비해 비교적 평화적인 독립이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스코페 올드타운엔 마케도니아인과 알바니아인, 그리스인과 불가리아인, 터키인은 물론, 유럽 전역을 떠돌며 괄시받는 집시들까지 큰 불화 없이 섞여 살고 있다.

▲ 마케도니아 시내에서 기념품으로 판매되는 사진과 엽서들.
▲ 마케도니아 시내에서 기념품으로 판매되는 사진과 엽서들.
조그만 도심에 마케도니아 정교회성당과 가톨릭교회, 이슬람사원까지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도 종교간 갈등이 이제는 물밑으로 가라앉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종교적 화해와 화합의 배경엔 아마도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1910~1997)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먼 인도 콜카타의 빈민촌에서 거의 대부분의 생애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친구로 살았기에 `성녀(聖女)`로까지 추앙받는 테레사 수녀는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태어났다. 인종과 종교로 경계 지어진 벽을 평화적으로 허문 화합의 도시와 그녀의 이미지는 썩 잘 어울렸다. 그래서일까. 스코페에서의 사흘은 필자에게도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마침내 400만 전에 생성된 거대한 호수가 있는 시골마을 오흐리드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마케도니아는…
유럽 발칸반도 내륙 위치
한반도 8분의 1 면적
4개 국가와 국경 맞닿아

유럽의 동남부 발칸반도 내륙 북부 중앙에 위치한 나라다. 바다와는 접하지 않은 국가. 북쪽으로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동쪽으로는 불가리아, 남쪽으로는 그리스, 서쪽으론 알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은 2만5천713㎢. 한반도의 8분의1 크기다. 계곡과 분지가 이어지는 산악지형이고 가장 높은 지대는 코라브산(山) 일대로 해발 약 2천753m. 백두산과 비슷한 높이다. 인구는 210만 명 내외로 대부분이 수도인 스코페를 비롯한 도시에 거주한다.

인구의 67%는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23%)도 다수 거주하며, 터키인(4%)도 일부 생활하고 있다. 화폐 단위는 데나르(MKD)인데, 사용되는 지폐의 디자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데나르는 현재 한화로 약 21원. 종교는 마케도니아정교(67%)와 이슬람교(30%)를 믿는 이들이 대다수다. 소수의 가톨릭교도도 존재하는데, 인도에서의 봉사활동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테레사 수녀가 알바니아계 마케도니아인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마케도니아어를 사용한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는 불가리아어에 가깝다. 표기는 통상 키릴문자로 한다. 최소 4백만 전에 형성된 것으로 조사된 투명한 물빛의 `오흐리드 호수`와 마케도니아 전통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자연스레 어우러진 스코페의 `올드 타운(구도심· Old Town)`이 대표적 관광지로 꼽힌다.

마케도니아로 가는 방법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입국해 거기서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는 국제버스를 타는 게 배낭여행자들에겐 보편적이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금전적 여유가 있는 관광객이라면 이스탄불과 유럽 주요도시에서 스코페나 오흐리드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홍성식 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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