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마케도니아③

▲ 여름날, 한가로운 오흐리드 호수의 모습이다.
▲ 여름날, 한가로운 오흐리드 호수의 모습이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뭘까?

무언가를 모르면 그것에 관해 배우면 된다. 그래서 학교와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며 세상 속에 섞여 살다보니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게 편견과 선입견이란 걸 알게 됐다.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불화의 대부분은 바로 이 편견과 선입견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무슬림들은 모두가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폭탄을 든 테러리스트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동남아의 밤길은 위험하다” “처음 보는 여행자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등등. 여행은 바로 이런 선입견과 편견을 자신의 마음 안에서 허무는 과정이 아닐까. 나 역시 배낭을 메고 세상 곳곳을 홀로 떠돌기 전엔 가슴 속에 작지 않은 편견과 선입견의 덩어리를 지니고 살았다.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는 바로 그 편견과 선입견을 깨뜨려준 도시다.

 

▲ 오흐리드에서 열리는 발칸축제에 전통복장을 입고 참석한 사람들.
▲ 오흐리드에서 열리는 발칸축제에 전통복장을 입고 참석한 사람들.

10대 때부터 록음악을 좋아했다. 마케도니아를 여행지로 선택해 그곳에 가보기 전엔 그 나라의 예술적 환경과 문화적 토양에 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조그맣고 가난한 나라에 무슨 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어`란 선입견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마케도니아에 록밴드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나, 선입견은 선입견에 불과했다.

오흐리드의 써니레이크 호스텔에서 만나 단 며칠 만에 죽마고우처럼 속마음까지 터놓게 된 라제 파마코스키는 프로 뮤지션이었다. 오흐리드에서 결성된 록그룹 `백도어 밴드(Backdoor Band)`의 기타리스트고, 인근 불가리아 TV에도 소개된 나름의 유명인이었던 것. 유튜브를 통해 그의 연주와 인터뷰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하던 편견과 선입견의 한 조각이 깨졌다.

사실 유럽을 여행하며 적지 않은 외국인 청년들에게 “한국은 중국어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일본어를 사용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들은 한국이 인접한 강대국의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다. 한국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럽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들에게 세종대왕에 관해 이야기해주며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선입견은 존재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오흐리드 정교회성당.
▲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오흐리드 정교회성당.

다시 이야기를 오흐리드의 써니레이크 호스텔로 돌리자. 같은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친해진 라제와는 거기 머물던 내내 어울려 다녔다. 때로는 벨기에에서 캠핑을 온 여대생들과 포도주를 함께 마셨고, 어떤 날은 아일랜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다는 스물여섯 아가씨 앞에서 마케도니아와 한국 노래를 번갈아 불러주기도 했다.

라제에게 빌린 기타를 멋들어지게 연주한 터키의 청년들과는 오흐리드의 재즈바로 우르르 몰려가, 19세기 프랑스의 표상주의 시인 랭보와 베를렌이 즐겨 마셨다던 초록빛이 아름다운 술 `압생트`를 거푸 몇 잔씩 들이켜는 호기를 부리기까지 했다. 필자처럼 오흐리드의 매력에 흠뻑 빠져 열흘 이상을 써니레이크 호스텔에 머물던 오스트리아 비엔나 소녀 미리엄, 알리나와는 뱃놀이도 다녀왔다. 둘은 투명한 오흐리드 호수 위에 뜬 조그만 배 위에서 황금빛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로렐라이처럼 노래를 불러 일행을 행복감에 젖게 해줬다.

사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아주 가끔 자신의 인종과 나이를 잊는다. 어울리는 이들이 40대이건 10대이건 그건 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케도니아를 다녀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잊을만하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어이, 언제 다시 한 번 봐야지. 올 여름 오흐리드 써니레이크 호스텔 정원에서 다시 만나는 건 어때?”

써니레이크 호스텔 정원에선 밤마다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은 다국적 친구들의 우정이 빛을 발했다. 사용하는 언어가 각기 달랐던 터라 자기 나라의 간단한 인사말 등을 서로에게 가르쳐주던 것도 기억난다. 너나들이로 친해진 라제는 한국어에 깊은 관심을 표했고, “악센트가 강해서 멋지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고양이와 호랑이를 마케도니아어로 말하며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라제에게 배웠던 마케도니아어 중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라 스트라비아”와 “팔라”다. 앞에 건 “건배” 뒤에 건 “고맙다”란 뜻. 라제 역시 술을 좋아하는 친구라, 우리가 머물던 호스텔 정원 야외탁자에선 “마시자”라는 한국식 건배사와 “라 스트라비아”가 끊임없이 외쳐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친구들이 합석을 하는 날은 여기에 독일식 건배사인 “프로스트”가 추가되기도 했다.

 

▲ 마케도니아 록밴드의 기타리스트 라제 파마코스키(좌).
▲ 마케도니아 록밴드의 기타리스트 라제 파마코스키(좌).

라제의 약혼녀 일레나와 함께 했던 저녁식사도 즐거웠다. “요새 라제는 하루 종일 당신 이야기만 해요”라며 소리 내 웃던 그녀는 화이트와인과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생소한 주법도 가르쳐줬다. 일레나의 빛나던 금발과 라제의 근사한 턱수염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멋진 커플이었다. 만약 다시 마케도니아로의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면 그 이유의 절반 이상은 라제와 일레나를 포함한 오흐리드의 친구들 때문일 것이다.

라제와 일레나 외에도 오흐리드가 선물해준 친구는 또 있다. 필자가 여름 한철 내내 머문 숙소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주인 지코 스파세스키. 민머리에 굵직한 음성만으로 봐서는 성격도 거칠 것 같지만, 사실은 보기 드문 휴머니스트가 지코였다. 임대한 건물에서 어렵게 소규모 호스텔을 운영하면서도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고 컸다. 가난한 여행자들에겐 별다른 조건 없이 숙박료를 파격적으로 할인해주는 게 그의 특기(?)다. 여기에 커피와 빵, 소시지 바비큐와 삶은 달걀 등을 장만해 이웃 노인들에게 대접하는 `한국형 경로사상`까지 보여준 친구.

마케도니아 여행에서 만난 그들은 편견과 선입견에 관해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해줬다. 만약 인간이 친구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 친구의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오흐리드에 머문 그해 여름, 써니레이크 호스텔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은 필자의 인식을 한 뼘쯤 넓혀준 `어린 스승들`에 다름없다. 그들 중 라제에겐 이런 편지라도 한 통 보내야 할 것 같다.

“잘 지내고 있지, 라제. 요즘도 써니레이크 호스텔 정원에 밤이 내리면 국적 다양한 친구들과 흥겨운 취기를 에너지 삼아 노래 부르며 살고 있겠지. 화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늘 미소 띤 네 얼굴이 가끔은 그립다. 네가 따라주던 마케도니아의 자랑이라는 술 라키아. 한국에도 그것만큼 멋진 소주라는 술이 있어. 그것 몇 병 배낭에 챙겨 넣고 다시 오흐리드로 갈 날을 꿈꾸며 지루한 일상을 견디고 있단다. 너 또한 일레나와 함께 생을 견디게 해줄 어떤 의미를 찾아내기를.”

▲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의 매력적인 숙소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주인 지코.
▲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의 매력적인 숙소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주인 지코.
낯선 여행지에서
외국인 친구 만들고 싶다면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 머물며 20대 초반 벨기에 여대생부터 30대 중반 아르헨티나 전직 축구선수, 40대 호주 전기기술자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가졌다. 자신의 나라와 멀리 떨어진 낯선 공간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건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이다. 비단 마케도니아만은 아니다. 세계 어느 곳이라도 아래와 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진다면 국적과 인종, 언어를 뛰어넘어 각국의 여행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1. 먼저 마음 문을 열어야 한다.

낯선 사람에게 선뜻 말을 건네거나 “하이”라고 인사하는 게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먼저 드러내고 다가가는 이들에게 마음을 닫아거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숙소의 복도에서, 머무는 곳 인근 식당에서, 혹은 거리에서라도 먼저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보자.

이후부터는 여행이 좀 더 편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마케도니아에서 적지 않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식 예의범절, 즉 먼저 마음을 열어 반가운 인사를 전하는 태도가 있었다.

 

▲ 중세에 축조된 오흐리드의 고성에서 바라본 호수 풍경.
▲ 중세에 축조된 오흐리드의 고성에서 바라본 호수 풍경.

2. 굳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같은 국적의 친구라면 굳이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동일한 피부색을 가지고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은 지금도 충분히 많지 않은가. 동유럽은 그 숫자가 적지만 프랑스, 독일 등의 서유럽엔 한국인 또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넘쳐난다.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의사소통이 용이하고,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숙소를 이용한다.

하지만, 여행은 낯선 문화를 체험하고 낯선 사람과의 교류를 기대하며 떠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선 한국인 이외의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여행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이용하길 권한다. 그게 미국인이건, 그리스인이건 만나고 인사부터 해야 친구가 될 것 아닌가.

 

▲ 청정한 오흐리드 호수에서 잡은 송어로 만든 바비큐. 소박하지만 멋스럽다.
▲ 청정한 오흐리드 호수에서 잡은 송어로 만든 바비큐. 소박하지만 멋스럽다.

3. 영어를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

물론, 영어는 `여행자들의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전문적인 단어를 써가며 정치나 종교문제를 토론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저 반갑게 인사를 전하고, 상대방의 말에 가볍게 대꾸해줄 정도만 된다면 영어 사용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영어가 서툰 걸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여행 중에 내가 만난 영국인, 프랑스인, 브라질인, 독일인은 단 한 명도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게 두렵거나 미안해야 할 일인가?

어떤 외국인도 당신만큼 유창하게 한국어를 할 수 없다는 자긍심을 가져라. 그러면 동시에 배짱도 생긴다.

또한, 상황에 따라선 몸짓과 눈빛만으로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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