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알바니아 ②

▲ 알바니아 곳곳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모스크. 이는 알바니아가 유럽에선 드문 무슬림국가임을 알게 해준다.
▲ 알바니아 곳곳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모스크. 이는 알바니아가 유럽에선 드문 무슬림국가임을 알게 해준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관문인 불가리아와 마케도니아를 거쳐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로 향하는 국제버스에 올랐다. 때는 유럽대륙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있던 한여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폭염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냉전·폐쇄정책·독재로 서민들의 경제 어려워도
자신의 나라에 온 손님에게 작은 할인의 선물도
소박하고 선량한 친절을 간직한 티라나 사람들


그 더위에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낡은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넘게 달려야 했으니, 마케도니아 스트루가를 출발해 티라나에 도착했을 땐 기자만이 아닌 탑승자 모두가 지쳐있었다. 무엇보다 시원한 음료 한잔이 절실했다.

머물 숙소를 찾기 전, 허름한 구멍가게에 들러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하나 꺼내들었다. 맥주 이름이 도시 이름과 똑같은 `티라나`다. 동유럽 도시들은 이름이 예쁘다. 루비아나, 포드고리차, 소피아, 벨그레이드, 부카레스트 등등…. 티라나 또한 단어가 주는 느낌이 앙증맞다.

막 도착해 환전소를 찾기 전이라 알바니아 화폐인 레크가 없었다. 맥주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800원. 계산 방식을 묻는 내게 구멍가게 주인은 0.5유로(약 650원)만 내란다. 그리곤 “알바니아에 온 걸 환영하는 뜻에서 해주는 할인”이라며 웃었다. 낯선 도시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베푼 소박한 친절에 기자 역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 티라나 시내. 많은 건물들이 지난시절의 묵은 때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정비되고 있다
▲ 티라나 시내. 많은 건물들이 지난시절의 묵은 때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정비되고 있다

가게를 나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곤혹스러웠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바니아엔 번듯하게 지어진 버스터미널이 없다. 인접국을 오가는 국제버스를 포함해 알바니아 국내를 돌아다니는 버스들까지 모두 `길거리` 일정 장소에 정차한다. 뿐만 아니라, 출발지와 목적지별로 정차 장소까지 다르다. 그러니, 여행자는 자신이 하차한 곳이 어디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평소에도 길눈이 밝지 않은 기자는 숙소 찾는 걸 도와주고, 시내 지도 등을 얻을 수 있는 관광안내소부터 찾았다. 하지만, 한참을 돌아다녀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교통경찰인 듯 보이는 사내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서너 번을 반복해 듣고서야 기자가 찾는 숙소의 이름을 알아채고는 말이 아닌 몸짓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뻗었다가 돌리기도 하고, 횡단보도를 설명할 땐 두 발을 모은 채 폴짝 뛰기까지 하면서. 그 광경을 누군가 봤다면 그를 경찰이 아닌 마임 배우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 성의가 고마워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다. 그 또한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조그만 가게 주인과 경찰의 사소한 배려가 알바니아의 첫인상을 좋게 만들고 있었다.

 

▲ 알바니아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에서의 소박한 한 끼 식사.
▲ 알바니아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에서의 소박한 한 끼 식사.

고군분투(?)한 경찰의 설명 덕분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바니아가 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 소년시절을 보낸 청년 두 사람이 공동경영 하는 숙소였다. 다소 낡았지만 정원에는 향기 뿜어내는 나무가 여러 그루 서있고, 그 아래 플라스틱 테이블이 놓인 소박하지만 정감 어린 호스텔. 그 풍경이 지난시절 한국의 민박집을 떠올리게 했다.

기자가 유년을 보낸 부산의 어느 변두리 같은 풍경에 마음이 편안하게 풀어져,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야외 탁자에 앉아 `티라나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해 마셨다.

냉전시대, 폐쇄정책으로 일관한 독재자가 장기집권 했던 알바니아. 아직도 경제적인 부분에선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나라를 찾아온 여행자에게 선량한 미소를 보낼 줄 아는 사람들. 그 웃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낮에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달콤했다.

 

▲ 티라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서민식당의 간판.
▲ 티라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서민식당의 간판.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본다. 경제적 궁핍이 인간성마저 메마르게 하는 모습을. 하지만, 몸이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곤궁해지는 게 과연 당연하고 옳은 일일까? 알바니아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게 하는 공간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궁핍을 면하고 있지 못함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 그 미소의 발원지가 궁금해졌다.

사실 내부와 외부 모두가 완벽한 세상, 정신적인 부분과 물질적인 부분 모두에서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누군가 “정신적인 행복과 물질적인 풍요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가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힘. 그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알바니아는 쉽사리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여행자가 그닥 많지 않은 알바니아. 기자가 머문 숙소도 겨우 10여 명 남짓의 손님이 전부였다. 그러나, 국적은 다양했다. 한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온 여행자와 몬테네그로 커플까지.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인 그들은 금방 친해졌고, 해가 저문 호스텔 정원은 분위기 좋은 야외카페로 변신했다.

 

▲ 매연을 뿜어내는 산업시설이 많지 않기에 알바니아의 하늘은 옥빛처럼 파랗다.
▲ 매연을 뿜어내는 산업시설이 많지 않기에 알바니아의 하늘은 옥빛처럼 파랗다.

그때 눈길을 사로잡은 이가 한 명 있었으니,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발코니 의자에 떨어져 앉아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갈색 머리칼의 사내. 나이도 제법 지긋해 보였다. 편안한 표정과 선한 눈빛을 가졌기에 호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미국 워싱턴에서 왔다는 그는 정치인들의 연설문이나 보도자료를 대필해주는 것으로 생활을 해결한다고 했다. “당신이 돕는 정치인들이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고 물었다. 웃음 머금은 얼굴로 그가 답했다. “조지 부시를 좋아할 만큼 바보는 아니죠. 민주당쪽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서툴고 거친 기자의 영어는 당연지사 그가 모국어로 사용해온 세련된 영어와 충돌했다. 이런 경우 여행자들의 대화는 중단되기 쉽다. 서로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였을까. 그날 우리의 대화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것은 순전히 단어를 조합하는 수준에서 던지는 말에 귀 기울여주고, 쉬운 문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미국 사내의 배려 덕택이었다. 똘레랑스(tolerance)가 프랑스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했다.

알바니아를 보다 즐겁게 여행하려면…

여행이란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른 지역을 몸소 경험해보는 것이다. 알바니아 역시 한국과는 판이한 환경을 지닌 국가.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아래 사항을 미리 알아두자.

● 한국식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을 기대하면 실망이 클 것이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정비된 서유럽을 먼저 여행한 사람이라면 알바니아의 교통시스템에 경악할 수도 있다.

알바니아엔 조그만 도시와 시골은 물론이고, 수도인 티라나에도 버스터미널이란 게 없다. 목적지에 따라 자신이 알아서 버스가 정차하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알바니아 사람들은 관광객들에게 친절하다. 자신이 가고자하는 여행지를 그들에게 알려주면,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버스가 정차하는 장소로 안내해줄 것이다.

● 다소 경직된 이슬람 문화와 자유방임의 유럽 문화가 뒤섞인 공간이 알바니아다. 음식에서도 그 특성은 드러난다. 유럽과 오스만투르크의 맛이 묘하게 융합된 요리는 여행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길거리 허름한 식당에서 알바니아 서민들과 섞여 구운 양고기와 감자튀김을 먹는 것도 좋지만, 촛불 밝힌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독특한 향신료가 가미된 스테이크와 올리브를 듬뿍 넣은 샐러드를 추천한다.

●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낡은 기차를 타고 느린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알바니아가 관광객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평균 시속이 50km도 되지 않기에 KTX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짜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엔 알바니아 사람들의 삶이 숨겨져 있다. 지난시절 우리가 사이다와 삶은 달걀을 챙겨 기차에 올랐다면, 알바니아인들은 빨간 사과와 통밀빵을 들고 여행을 떠난다. 환하게 웃는 꼬마들에게 한국식 게임을 알려주고 함께 즐겨보길 권한다.

● 무슬림들의 성당인 모스크를 방문해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알바니아 사람들은 대부분 모스크를 찾는 관광객들을 반긴다. 이슬람교도가 폐쇄적이란 건 일종의 편견이다.

그들의 낙천적인 성격이 외지인에게도 자신들 종교의 속살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게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높은 천장 아래 푸른 타일이 예술적으로 배열된 모스크에서 잠시잠깐 세속의 번잡함을 잊어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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