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알바니아 ③

▲ 마을 주변 산에서 바라본 알바니아 소읍 베라트의 풍경.

우려가 많았던 알바니아 여행.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그런 우려를 불식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예의 바르고 친절한 미국 사내와의 저녁식사는 즐거웠다. 어둠 내린 티라나의 거리를 나란히 걸어 레스토랑을 찾았고, 그가 “가능하면 여행지의 음식을 먹어보자”는 제의에 따라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번성했던 옛도시 베라트의 흔적이라곤
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뿐…
국적 다른 커플의 위대한 사랑에 감동
타인에 베푸는 넉넉한 마음도 선사 받아

수염을 기른 무슬림들이 탁자마다 자리를 메운 서민들의 식당. 다진 양고기와 채소를 반죽해 숯불 위에 구운 요리를 주문했다. 맥주 한 병씩을 곁들이니 더할나위 없는 만찬이다. 한 사람당 겨우 6000원의 상차림임에도 만족도가 높았다.

그 미국인과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 조지 부시와 버락 오바마의 차이점까지를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알바니아 티라나의 스칸데르베그광장이 정치토론장이 된 느낌이었다. 서툰 영어로 그처럼 많은 말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건 미국 사내의 배려와 `술의 힘`에 기댄 탓이 컸다.

많은 한국인들이 알바니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기자는 미국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상호주의가 아닌 자기중심주의에 기반해 사고하고, 약속국을 깔보는 태도를 가졌으리라는 선입견. 그러나, 그날의 만남은 그런 편견과 선입견의 일정 부분을 깨뜨렸다. 그렇다. 세상에 단순한 하나의 잣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그것이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 한때 번성했던 베라트를 짐작하게 해주는 산 위의 고성.
▲ 한때 번성했던 베라트를 짐작하게 해주는 산 위의 고성.

티라나에서 이틀을 머물고 베라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인구가 수천 명에 불과한 조용한 시골마을을 찾아간 것이다. 베라트는 야트막한 강이 마을을 가르며 소리 없이 흐르고, 야트막한 산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독특한 풍경을 이루는 곳.

시끌벅적한 카페와 네온사인이 없는 소읍(小邑). 옛날엔 번성했던 도시라고 하는데 당시를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라곤 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뿐이었다, 중심가에도 인적이 드물어 마치 `유령의 마을` 같았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에잔(Ezan)만이 낡은 모스크 기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하루 5번 울려나오는 조용하고 또 조용한 마을.

그러나, 도시가 주는 적요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는 그 마을에 딱 하나. `베라트 백패커스 호스텔`이었다. 그곳에 머문 덴마크와 잉글랜드, 핀란드와 체코, 독일과 호주,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이 20여 명은 금세 너나들이로 친해졌다. 네덜란드를 떠나 독일과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거쳐 거기까지 온 독일 커플은 이제 겨우 열아홉 살. 오로지 `히치하이크`로만 1천km가 넘는 길을 왔다고 했다. 놀라웠다.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온 열아홉 소년과 소녀의 가슴엔 나라간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방학을 맞은 그들은 슬리퍼 끌고 이웃 마을 놀러가듯 대여섯 개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뢰와 철조망으로 막힌 휴전선을 지나지 않으면 육로를 통해서는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한국. 우리들 뇌리를 잠식한 외국과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때론 인간이 태어난 지리적 위치가 그들의 의식을 온전히 규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놀라움과 함께 허탈감이 왔다.

베라트에 도착한 이튿날. 마을 광장 찻집에서 국적이 다른 한 쌍의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독일 남자와 알바니아 여자로 연애를 시작한지 3년이 됐다고 했다. 비교적 경제적 형편이 나은 독일 남자가 시간이 날 때마다 연인이 사는 알바니아로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단다.

독일 기독교신자와 알바니아 이슬람교도의 연애와 사랑. 종교적으로 볼 땐 축복받기 힘든 어색한 조합이다. 특히 여자 쪽이 더 힘들 것이다. 다소 교조적인 이슬람 교리를 지키는 무슬림국가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진 남편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차마 질문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애틋한 감정은 주위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독일 남자의 눈길은 한없이 따스했고, 독일 남자의 어깨에 기댄 채 뜨개질을 하는 알바니아 여자의 표정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왜 그렇지 못할 것인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랑은 그 어떤 금기와 제약도 기꺼이 이겨낼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삶은 물론, 죽음의 이유까지 될 수도 있는 사랑이 그까짓 국경과 인종을 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 `베라트 백패커스 호스텔`로 들어서는 조용한 골목길.
▲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 `베라트 백패커스 호스텔`로 들어서는 조용한 골목길.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그들의 빛나는 사랑에 축복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삼스레 두 사람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둘은 이미 왜곡된 세상의 시선을 넘어선 위대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기자는 포도주 한 병을 주문해주는 것으로 축복의 말을 대신했다. 독일 사내와 알바니아 처녀를 만난 바로 그날 밤. 취한 채 느지막이 숙소로 돌아왔다. 잠을 청하며 누웠으나 새벽까지 불면에 시달려야 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내게 저런 사랑이 온다면 그 사랑으로 인한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겠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알바니아 여행이 끝나던 날. 아드리아해의 파도가 출렁이는 항구도시 듀레스에서 이탈리아 바리(Bari)로 향하는 페리가 굴뚝에서 연기를 뿜었다. 부끄러움 많고 잘 웃는 알바니아 사람들. 그들 속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짧은 시간이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이탈리아처럼 높은 첨탑의 유명한 성당도, 프랑스처럼 고급스런 휴양지도 없는 나라 알바니아. 그러나, 기자는 직접 밟아본 그 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그건 아마도 마피아가 득실댄다는 오해 속에서 간난신고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타자에게 베풀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 매료된 탓일 게다. 멀어지는 알바니아 항구를 바라보며 읊조린 바람이 떠오른다.

“삶이 열정을 나눌 여인을 허락한다면, 나 역시 베라트에서 본 그 연인들처럼 금기와 국경을 넘어서는 사랑을 하리라.”


▲ 양고기를 재료로 만든 요리와 감자튀김, 올리브와 치즈 등은 알바니아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 양고기를 재료로 만든 요리와 감자튀김, 올리브와 치즈 등은 알바니아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맛 볼 만한 음식은…

평소에는 맛보지 못했던 생소한 음식을 즐겨보는 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이탈리아에 가서 피자를, 베트남에 가서 쌀국수를, 일본에 가서 초밥을 맛보지 않고 돌아온다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핀잔을 들어 마땅하다.

음식은 하나의 문화다. 여행하는 지역의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보는 건 여행자의 특권인데, 그 특권을 제대로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알바니아에도 많은 음식들이 이방인의 입맛을 자극한다. 그중 세 가지 정도는 알아두고 방문하면 메뉴 선택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 건강에 좋은 올리브:작열하는 태양에 의한 적절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양을 갖춘 남부 유럽은 올리브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알바니아는 올리브의 주요 생산지. 수도인 티라나의 현대화된 마켓은 물론, 작은 도시의 재래시장에도 올리브 본연의 맛에 각종 향신료를 가미한 올리브 절임이 지천이다.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노화예방에 좋고, 미용식품으로도 각광받는 올리브는 알바니아 토속주에 곁들여도 좋고, 맥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한국 돈 2000원 정도면 꽤 많은 양의 염장 올리브를 구입할 수 있다.

 

▲ 알바니아 재래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원색의 채소들.
▲ 알바니아 재래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원색의 채소들.

● 양고기를 이용한 각종 요리: 아시아에 비해 유럽은 동물의 내장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알바니아엔 양의 내장은 물론, 뇌를 재료로 만든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베라트 한 레스토랑의 메뉴판은 여행자들을 놀라게 한다. `LambBrain Stew`(양뇌 스튜)라는 음식이 적혀 있는 것.

하지만, 굳이 없는 용기를 발휘해 이런 요리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 무슬림국가인 알바니아 국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대신 양고기와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남유럽의 독특한 향신료를 첨가해 익힌 양고기 스테이크와 부드러운 닭 가슴살 구이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는다.

● 싱싱하고 값싼 과일과 채소: 한국의 채소와 과일도 세계 어느 나라 것들 못지않게 맛있다. 하지만, 지구의 반대편에서 만나는 과일과 채소는 그 나름의 매력으로 관광객들의 미각을 유혹한다. 원색에 가까운 빨강, 노랑, 초록의 알바니아 과일과 채소 또한 저렴한 가격에 사각거리는 식감이 좋다.

몇몇의 여행자들은 낯선 외국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서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을 찾는다. 밀착된 위치에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라나의 재래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새빨간 토마토와 선명한 연두색의 오이, 그 시원한 맛이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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