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캄보디아 ②

▲ 앙코르 유적 사이에 꾸며진 법당. 다리를 뻗고 쉬고 있는 여성이 이채롭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빛깔의 돌 수백만 개가 이뤄놓은 웅장한 과거의 흔적. 비단 앙코르와트가 아니어도 좋다. 인근 앙코르톰이나 바이욘사원에서 여행자들 틈에 끼어 세상사 고민을 잠시 잊고 일출을 기다리는 건 가슴 설레는 경험이다.

동쪽에서 시작된 태양의 꿈틀거림이 사원의 성벽을 발갛게 물들일 때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앙코르 유적은 1000년 전 크메르인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찾을 미래의 불특정다수를 위해 축조한 장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1천년 전 크메르인의 장엄한 유적
일상의 감각·시간도 잠시 잊어
맨발의 어린 동승 축원 들으면
해탈은 법당이 아닌 길 위인 듯


일몰 또한 일출의 감동과 다를 바 없다. 높은 기온과 눅눅한 습기에 셔츠가 젖도록 땀을 흘리며 시엠립 곳곳에 자리한 크메르 사원을 돌아본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옅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앙코르 유적지의 벽에 기대 태양이 제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세상의 존재하는 붉은색 모두를 모아 흩뿌려놓은 듯한 진홍(眞紅)의 일몰. 사원의 나무그늘에서 만난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의 청년들은 바로 이 일출과 일몰 무렵의 앙코르와트를 만나기 위해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유적 기둥에 새겨진 압사라 여신의 춤은 세월을 뛰어 넘어 여전히 매혹적이다.
▲ 유적 기둥에 새겨진 압사라 여신의 춤은 세월을 뛰어 넘어 여전히 매혹적이다.

풍경이 주는 감동만큼 울림이 큰 게 사람이 주는 감동이다. 예술적으로 깎아 쌓은 돌 틈에 살아온 날들의 비밀을 고백하게 싶게 만드는 시엠립의 유적지. 그 이상으로 기자를 설레게 한 것이 캄보디아 사람들이다.

앙코르 유적은 사방 수십 km에 이름 없이 허물어져가는 작은 사원과 성곽 또한 흩뿌려놓고 있는 곳. 1~2달러를 주고 빌린 자전거에 올라 그곳들을 찾아다니다 만난 동승(童僧)들.

국민 대다수가 소승불교 신자인 캄보디아에선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어린 승려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 갓 열두어 살이나 됐을까.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오렌지색 승복을 입고 햇살에 달아오른 길을 맨발로 걷는 그 아이들의 눈빛에선 나이와 상관없는 외경이 읽힌다.

 

▲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본 앙코르 유적과 열대의 풍광.
▲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본 앙코르 유적과 열대의 풍광.

생수 한 병 혹은, 빵 한두 개를 그네들의 가방에 넣어주며 앞에 엎드리면 동승은 사람들의 귓가에 축원의 말을 조용히 읊조려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해탈이나 종교적 깨달음의 공간은 법당이나 성당이 아닌 `길 위`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한낮의 더위가 사라지고 해가 저물면 시엠립 여행자의 대부분은 `나이트 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줄지어 늘어선 노천카페 중 한 곳을 골라 안락의자에 편하게 등을 기댄다. 푸릇푸릇한 민트가 듬뿍 들어간 칵테일 `모히토`를 마시며 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한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 와 있다는 즐거움에 미소가 그려진다.

 

▲ 캄보디아 아이들에겐 유적지가 놀이터다. 그들 역시 옛날 크메르인들처럼 잘 웃는다.
▲ 캄보디아 아이들에겐 유적지가 놀이터다. 그들 역시 옛날 크메르인들처럼 잘 웃는다.

프놈펜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유쾌한 20대 청년은 기자의 서툰 강의(?)를 듣고는 한글 자음과 모음의 운용방식을 알아낸다. 영민한 청년이다. 그런 청년들이 이끌어갈 캄보디아의 미래가 어두울 까닭이 없을 것이란 믿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10대 후반 소녀도 잊을 수 없다. 다음 달이면 경기도 수원의 공장으로 일을 하러가게 됐다며 좋아하던 모습. 월급 액수와 체류 기간이 적힌 근로계약서를 보여주며 잇몸을 드러내고 웃던 그 소녀가 한국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며 앞날을 꿈꿀 수 있었으면.

 

▲ 캄보디아와 태국 등 동남아에선 기념품과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을 어디서건 쉽게 볼 수 있다.<br /><br />
▲ 캄보디아와 태국 등 동남아에선 기념품과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을 어디서건 쉽게 볼 수 있다.

앙코르와트의 도시 시엠립은 신을 믿지 않는 기자가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앙코르 유적에 새겨진 압사라 여신의 유혹하는 춤사위, 천 년 세월을 견뎌온 석조건물 사이에 낀 푸릇한 이끼, 눈부신 아름다움의 일출과 일몰, 흙먼지 날리는 동네 골목길에서 크메르 아이들의 천진한 몸짓에 취하게 되는 시엠립.

 

▲ 천년의 세월은 고대 사원과 나무를 한 몸으로 만들어놓았다.
▲ 천년의 세월은 고대 사원과 나무를 한 몸으로 만들어놓았다.

그곳에서 지내다보면 일상에서의 감각과 시간을 잠시 잊게 된다. 하지만, 여행은 떠날 때부터 돌아옴을 전제로 하는 것. 아쉬움은 추억이 가진 힘으로 견딜 수밖에 없다.

시엠립에서의 마지막 날.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 `툭툭`을 타고 톤레샵엘 갔다. 제주도보다 큰 면적의 바다 같은 호수. 포이펫에서 국경을 넘을 때 본 지평선 이상으로 아름다운 수평선이 쓸쓸함과 충만을 동시에 선사하며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 `아름다운 폐허` 앙코르 유적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 `아름다운 폐허` 앙코르 유적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수백 종의 민물고기를 제 안에 기르며 호수에 삶을 기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톤레샵. 그곳에서 만난 석양 역시 숨 막히게 붉었고 또한, 아름다웠다. 밀려드는 호숫가의 어둠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툭툭 기사가 “우리 삼촌 집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보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마을.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 2층의 희미한 남폿불 아래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툭툭 기사의 조카가 누워 있었다. 방글거리며 기자를 올려다보는 그 아기의 얼굴과 가난에도 주눅 들지 않은 아기 엄마의 미소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 푸른 이끼에 덮인 고대의 유적들 사이를 걸어보는 건 매력적인 체험이다.
▲ 푸른 이끼에 덮인 고대의 유적들 사이를 걸어보는 건 매력적인 체험이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지는 것이구나. 천 년 세월 저편 번성했던 크메르왕국 왕자의 탄생만이 축복받을 일은 아니구나. 비록 희미한 빛 아래 누웠지만 누가 감히 이 조그만 아기의 내일이 어둡고 습할 것이라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주위엔 세상의 번듯함보다는 폐허, 미래보다는 과거, 빛보다는 그림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다소 퇴행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들의 천성이 못나거나 구차스러워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건 인간 개개인의 취향과 지향의 다름에서 오는 것일 뿐.

현재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지난날의 흔적 시엠립 앙코르 유적의 그늘진 폐허에서 낙관과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기자의 취향. 그 취향과 지향을 앞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다. 앙코르와트는 과거인 동시에 진행 중인 현재이며, 내일을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설레는 미래다.

 

▲ 캄보디아 사람들은 물론, 태국인과 베트남인도 즐기는 쌀국수.
▲ 캄보디아 사람들은 물론, 태국인과 베트남인도 즐기는 쌀국수.

캄보디아를 즐기는 3가지 색다른 방법

여행지에서라면 평소 해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캄보디아는 4~5시간 안팎의 짧은 비행으로 가닿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서 한국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며칠이나마 즐겨보자. 틀에 갇히지 않는 여행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 자전거로 유적지 돌아보기

시엠립에서 앙코르와트를 포함한 각종 유적지를 둘러보는 가장 흔한 방법은 개조한 오토바이택시를 타는 것이다.

그러나, 젊고 더위와 싸울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여행자라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 밀림 속에 숨겨진 조그만 유적들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휘파람 불며 달리다가 우거진 수풀 속에서 천년 이상의 세월을 조용히 숨죽여온 사원을 발견한다면 `나도 모험가가 됐다`는 기쁨에 절로 큰 웃음이 나올 것이다.

자전거 대여료는 하루 1~2달러로 매우 저렴하다.

▲ 현지인들과 친구 되어보기

일반적인 패키지여행에선 현지인 가이드와 운전기사를 제외한 캄보디아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배낭을 멘 자유로운 여행자라면 얼마든지 현지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외국인에 대해 호의적이고 친절한 캄보디아 사람들은 조금만 친해지면 곧잘 “우리 가족들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집으로 놀러오길 청한다.

달콤한 사탕이나 한국에서 가져간 기념품 등 조그만 선물을 들고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 크메르의 내밀한 풍경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캄보디아 가정식으로 차린 저녁 식사도 대접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 캄보디아 전통음식 맛보기

수도인 프놈펜과 유명 관광지인 시엠립에는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이 흔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도 여럿 있다.

하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듯, 캄보디아에선 캄보디아 전통요리를 즐겨보자.

태국과 베트남 요리에 영향을 받은 캄보디아 음식들.

서민들은 쌀을 재료로 만든 면발에 각종 채소를 데쳐 얹은 국수를 즐겨 먹는다.

시장 좌판에 앉아 먹는 한 그릇 500원짜리 쌀국수도 제법 맛있다. 좀 더 고급스런 전통음식을 찾는다면 생선과 쇠고기 등에 코코넛밀크와 향신료를 더해 걸쭉하게 끓인 아목(Amok)을 권한다. 곁들여 먹는 밥이 커다란 바나나 잎에 올려져 있어 재밌는 볼거리까지 제공한다.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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