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친구` 포항시와 해병대
(1) 프롤로그

▲ 해병대 상륙훈련에 참가한 K9 자주포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해병대 제공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 비로소 친구가 친구임을 안다.`중국의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남긴 친구에 관한 소회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마주했을 때 곁에서 어깨를 내어주는 친구가 진실한 우정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영원한 친구`포항시와 해병대의 인연은 한국전쟁 당시 포항비행장을 방호하던 미 해병대에 한국 해병대 1개 중대가 합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희로애락(喜哀)을 함께했다. 본지는 특별기획시리즈를 통해 반세기 넘게 운명을 함께한 포항시와 해병대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21세기 민·군 협력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려 한다.

한국전쟁 당시 美 해병대 전비단에
韓 해병대 1개중대 합류로 첫 인연
1959년 3월 `포항시대` 본격 개막

`포항시·포특사 발전협의회` 결성
대민 지원·부대 주변환경정비 등
공동발전사항 논의 꾸준히 이어가

산불·수해·폭설 등 재난수습도 앞장
악재극복 발벗고 나선 든든한 지원군

□ 군부대의 포항주둔 역사

포항시가 지난 2014년 발간한 `포항시사(浦港市史)`에 의하면 포항지역에 주둔한 군부대의 역사는 신라시대 수군진 설치에서 비롯돼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현재 해병대 제1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일원은 조선 태종·세종 때 새로운 군사제도 마련에 따라 설치한 수군진이 위치한 곳으로 천혜의 요새였다. `세조실록`과 `경상도속찬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경상도 4진 중 하나인 영일진은 임곡포(林谷浦·현재의 임곡항)로부터 6리 20보(2.5㎞) 지점`이라고 정확히 기술돼 있다. 영일진은 중익(中翼)으로서 좌익(左翼)을 장기(현 장기면)로, 우익(右翼)을 흥해(현 흥해읍)로 삼았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1941년 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동남아에 국한됐던 전쟁이 태평양 전체로 확대되면서 포항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일본 본토에 대한 미국의 점령을 우려했던 일제는 1943년부터 포항, 여수, 목포, 제주도에 비행장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고 포항지역에는 영일군 오천면(현 포항시 오천읍) 일월동 일대에 비행장 건설작업을 실시했다.

일제는 1943년 5월부터 포항 유지들에게 군용비행기 할당을 강제해 패전때까지 비행기를 계속 헌납받았다. 비행기 완공후에는 가미가제용 비행기 2대를 대기시켜 기초훈련을 실시했으며 불과 몇년만에 광복을 맞게 되면서 1945년 10월 3일 포항비행장에 대한 무장이 해제됐다.

□ 해병대와 포항의 인연

해병대는 한국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던 1952년 8월 1일 미 해병대 제1전투비행단의 포항비행장 외곽경계를 지원하기 위해 1개 중대가 주둔하면서부터 포항시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이 부대는 같은해 10월 1일 해병대 포항경비부대로 개편된 이후 1개 중대를 증편해 평택파견대를 운용했으며, 1953년 3월 17일에는 포항막사로 개편됐다.

1955년 7월 21일 포항막사와 평택막사를 통합해 포항부대로 증편한 해병대는 이듬해 7월 1일 미 해병대 제3비행사단이 철수함에 따라 포항기지를 창설했다. 해병대는 포항비행장을 인수하고 주둔지 경계 및 교육훈련시설을 관리·유지하면서 포항기지에 예비역 교육대를 설치해 예비역 해병 입영근무 소집을 실시하면서 1958년 4월 15일 마침내 해병대 포항기지로 개편됐다.

장단·사천강지구 전투를 수행 중이던 해병대 제1전투단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서명과 동시에 수도권 방어임무를 위해 경기도 파주군 문산읍에 전투단 본부를 설치했다.

1954년 2월 1일 제1전투단을 기간으로 해병 제1여단이 금촌면에서 증·창설됐으며 3월 17일 미 해병 제1사단이 본국으로 철수함에 따라 작전권을 환수했다. 1955년 1월 15일 제1여단을 기간으로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해병대 제1상륙사단을 창설해 상륙작전부대로서 체제를 정비해갔다.

이같은 상황 속에 1959년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 해병대 제3비행사단이 주둔하던 포항기지를 한국 해병대가 인수해야 한다는 미 해병대사령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부전선에 있던 해병대 제1상륙사단은 1959년 3월 28일 포항으로 이전하며 본격적인 해병대 포항시대가 개막했다.

 

▲ 해병대 1사단과 미해병 3사단 장병 100여명이 2014년 4월8일 포항시 남구 장기면 도지지역 전투훈련장에서 양측의 도시 지역 전투 기술을 선보이고 공유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저항군이 있는 건물에 진입한 해병 1사단 장병이 강렬한 눈빛으로 사주경계를 펼치고 있다.                   /경북매일 DB
▲ 해병대 1사단과 미해병 3사단 장병 100여명이 2014년 4월8일 포항시 남구 장기면 도지지역 전투훈련장에서 양측의 도시 지역 전투 기술을 선보이고 공유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저항군이 있는 건물에 진입한 해병 1사단 장병이 강렬한 눈빛으로 사주경계를 펼치고 있다. /경북매일 DB

□ 경제효과 연간 2천억원

㈔세계한민족미래재단 부설 포항환동해미래연구원은 지난 2014년 `해병대와 포항지역발전`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당시 세미나에서는 전병훈(전 해병대 제1사단장) 박사, 전명종 포항환동해미래연구원 소속 연구원, 이종판 한국미래문제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서상문 포항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등 군관련 전문가 4명이 차례로 등장해 해병대와 포항시의 관계에 대해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전명종 연구원은 해병대가 포항시에 주둔함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는 2010년 기준 1천846억원으로 지역 총생산의 1.05%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규모는 해병대 가족투어가 실시된 2012년 초부터 더욱 늘어나 오늘날 연간 2천억원이 넘는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소비집단으로만 여겨졌던 해병대가 주둔 지역의 사회·문화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분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 상생협력 첫걸음 `포항시·포특사 발전협의회`

포항지역 주변 영토와 해안을 방어하는 해군과 해병대의 합동지역 사령부인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이하 포특사)는 포항시와 정기적인 회의를 실시하면서 정책협의적 교류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2004년 12월 해병대가 현안문제 협의체 구성을 포항시에 제안해 시행된 것으로 2005년 5월 18일 첫 회의 개최 이후 현재까지 `포항시·포특사 발전협의회`라는 명칭으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포항시와 해병대는 회의를 통해 군부대의 대민지원, 지자체의 부대 주변환경정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논의하고 양측의 각종 현안사항과 공동 발전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특히 군부대의 물리적 개방뿐만 아니라 군 부대원이 지역사회에 대해 가지는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개방성을 확보해주기 위한 다양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군의 폐쇄적 성향에 대해 가지는 편견을 깨는 노력이 이 협의체에서부터 시작돼 사회·문화적 영향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사회가 제기하는 다양한 민원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기적인 회의를 진행하면서 포항시와 해병대는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지난 2013년 3월 9일 포항시 북구 용흥동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한 후 이틀째인 10일 잔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는 해병대원들.                                                      /경북매일 DB
▲ 지난 2013년 3월 9일 포항시 북구 용흥동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한 후 이틀째인 10일 잔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는 해병대원들. /경북매일 DB

□ 대형사고 수습에도 앞장

춘삼월 봄기운이 움트던 지난 2013년 3월 9일 포항시 북구 용흥동의 한 야산에서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은 최고 초속 15.9m의 강풍을 타고 도심 속 야산 3개를 타고 넘었다. 불과 1시간여 만에 직선거리 2㎞, 인근 4개 동을 휩쓸었다.

이 산불에 의해 1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당했고 주택 58채가 불에 타 120여명이 갈 곳을 잃었으며 재산피해만 29억6천만원에 달했다. 당시 경찰조사결과 철없는 중학생의 불장난이 거대한 화마로 이어진 것으로 밝혀져 충격은 배가 됐다.

시름에 빠져있던 주민들을 위해 나섰던 이들은 다름 아닌 해병대.

해병대 제1사단은 사고 당일인 9일 포항시로부터 긴급지원요청을 받아 즉시 포특사 위기조치반을 소집해 산불진화부대 병력 700여명과 소방차 2대, 헬기 2대를 산불 현장으로 급파했다.

해병대는 이날부터 10일 새벽 1시께까지 포항시 북구 용흥동과 연일읍 일대에서 유관기관 인력과 함께 지역별 방화선을 구축하고 군사작전에 준하는 산불진화작전을 수행했다.

복구작업에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화재현장에 투입된 해병대 장병 500여명은 산불 발화지점에서 날아온 불씨가 옮겨 붙어 피해를 입은 수도산과 포항고, 포항여고, 영흥초 등에서 화재 복구작업을 실시했다.

이렇듯 해병대는 화재발생 이후 사흘간 총 2천200여명의 장병을 투입해 화재진압과 복구에 구슬땀을 흘렸고, 이같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은 지역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해병대는 이처럼 포항의 크고 작은 재난(산불, 수해, 폭설, 영농지원 등)에 발벗고 나서며 포항시민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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