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미국 수재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경쟁하기가 힘들어. 우리 교육방식의 문제야.”

어제 오늘 하루 종일 이 한마디가 필자의 가슴을 내내 아프게 하고 있다.

임지순 교수! 그는 후배들에겐 `공부의 신`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천재 과학자이다. 70년 경기고 수석졸업, 대입예비고사 전국수석, 그리고 서울대 수석입학. 소위 그 시절 3관왕의 영예를 누렸던 선배이다. 미국 버클리 유학 시에도 시험은 수석이었다고 한다.

서울대 교수 30년 생활을 정리하고 올해 포스텍으로 부임한 임 교수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가 던진 독백과 같은 이 한마디가 내내 뇌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간 20조 가까운 연구개발 투자비와, 교수들에게 4조가 넘는 연구비를 주고 있지만 한국이 노벨상을 타는 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그가 건네준 전 카이스트 총장 러플린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버클리에서 학사, MIT에서 박사를 받은 러플린은 그후 벨 연구소에서 일하는데 괴짜이고 주변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쫓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버클리로 돌아왔다가 스탠포드 교수가 되었는데 벨 연구소에서 연구한 연구업적을 근거로 48세인 1998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후 벨 연구소의 해당 연구실은 러플린을 몰아낸 걸 크게 후회하였고, 노벨상 수상자를 몰아낸 연구실로 낙인찍혔다는 이야기다. 러플린과 알고 지내던 임 교수는 그가 괴짜 연구자라고 단언하면서 한국에서 성장했으면 학교를 다니다가 쫓겨났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국 교육환경이나 연구환경은 러플린 같은 학자는 수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단언코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도 쫓겨난 괴짜를 한국 교육계와 연구계가 수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을 비롯, 획기적인 발견과 창의성은 의외로 이런 괴짜에게서 발견된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는 날이 올까?

300개가 넘는 노벨상 수상을 한 미국을 선두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일본, 중국, 심지어 인도, 파키스탄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수상했다. 실제로 노벨상을 수상한 나라는 40개국을 넘고 있다. 한국은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에 가까이 가고 있고 올림픽에선 항상 10위안에 드는 G20인 국가이다. 그러나 노벨상은 전무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중진국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고 한국만 유일하게 빠져있는 상태이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이 질문에 임지순 교수의 독백은 하나의 정답을 보여 주고 있다. “불가능에 가깝다.”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미국의 수재들과 한국의 수재들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답을 구하는데 급급한 한국의 수재들은 해법이 없는 문제를 접했을 때 며칠간 끙끙대다가 끝내 답을 구하지 못했다. 미국의 수재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면 된다”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던 한국학생들은 이 한마디에 “졌다”라고 복창했다.

창의력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인가 혹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지만 창의력의 90% 정도는 훈련과 환경에 의해 얻어진다고 보여진다.

노벨상을 수상하는 졸업생의 동상을 앉히겠다고 포스텍에는 빈 좌대가 있다. 포스텍을 설립한 지 금년이면 30년이다. 원래 계획은 설립 30년쯤 좌대가 채워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좌대는 비어 있다.

과연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의적으로 길러지지 않은 학생들에게 대학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면 노벨상을 받게 할 수 있을까? 대학의 창의력 교육이나 연구는 제대로 되고 있는가?

독백처럼 내뱉은 임지순 교수의 한마디가 오늘 한국교육과 연구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 같은 수재가 힘들다고 한다면 정말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창의적 교육과 연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 답을 내놓기 전에는 한국의 노벨상 수상은 아직도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