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이탈리아 ①

▲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적 콜로세움.
▲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적 콜로세움.
본격적인 이탈리아 여행기에 앞서 먼저 에피소드 하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통해 이탈리아에 입국하기로 결심했다. 알바니아에서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건너 `미남들의 나라` 이탈리아로 가는 길. 그러려면 먼저 알바니아 항구의 세관과 출입국사무소를 거쳐야 했다.

한국선 `노안`으로 통하는 기자를 스무살이나 어리게 본 알바니아 세관
영어가 불통인 이탈리아서 만난 흑인의 깨끗한 친절… 영화 속 편견 깨

총이나 마약 등의 위험한 물건이 없으니 세관은 당연지사 무사통과. 문제는 출입국사무소에서 일어났다.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여직원이 기자의 여권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더니, 묻는다. “이게 정말 당신 여권인가?”

답했다. “사진을 보면 알지 않느냐. 내게 맞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놀라웠다. “여기에 1971년 출생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 마흔 살이 넘었다는 건데, 당신은 스물다섯처럼 보인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국에선 `노안`이라는 이야기를 듣던 사람인데…

 

 

▲ 캄피돌리오 광장에선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 캄피돌리오 광장에선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혼자서는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던지, 옆에 앉은 동료 여직원 둘까지 불러 여권 사진과 기자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젊은 여자 셋이 동시에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황당하고 다소 부끄러운 상황. `서양인은 동양인의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렵다`는 세간의 속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속으로는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너희만한 딸이 있을 사람을 붙잡고 이 무슨 우스운 짓이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희끼리 알바니아어를 주고받으며 호호거리는 예쁘장하고 어린 그녀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코미디 같은 상황이 20분 이상 지속됐다. 아, 나이를 자그마치 스무 살이나 아래로 봐주는 여성이 있는 알바니아로 이민이라도 가야하나. 폐일언.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건(을 뒤로 하고 천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거대한 페리가 알바니아의 듀레스(Durres)를 출발, 밤이 내린 암청색 아드리아해를 유유히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꼬박 13시간을 항해해 도착한 곳은 이탈리아의 남부의 조그만 항구도시 바리(Bari). 알바니아와 마찬가지로 이탈이라 입국심사대도 시끌벅적했다. 이탈리아어와 영어, 독일어와 알바니아어까지가 뒤섞여 시장판을 방불한다.

유럽인들의 휴가가 마무리 절정을 이룬 늦여름. 페리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관광객 때문에 2시간 넘게 땡볕 아래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기다렸다. 더위는 짜증을 부른다. 동유럽 사람들에 비해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다소 시끄러운 이탈이라 사람들. 그들의 높아진 목소리가 목과 겨드랑이에 땀처럼 들러붙었다. 어찌 보면 이탈리아인들은 한국인과 기질이 비슷하다. 입국사무소 보안요원과 다혈질인 이탈리아 사람들의 말다툼이 시시때때로 벌어졌다.

 

▲ 이탈리아는 미남과 광장의 나라다. 그걸 확인할 수 있었던 나보나 광장.
▲ 이탈리아는 미남과 광장의 나라다. 그걸 확인할 수 있었던 나보나 광장.

2시간을 기다렸는데, 입국을 허가하는 도장을 여권에 찍는 데는 5초가 안 걸렸다. 이전에 여행한 동유럽 국가와 달리 “왜 왔느냐?” “여기 온 이유가 뭐냐”라는 등의 간단한 질문 하나 없었다. 이건 최근 여행한 프랑스 파리의 입국심사대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출입국심사는 이탈리아를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 출국심사장에서도 출국 도장을 단 1초 만에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 유럽에서 출입국 심사가 가장 간단한 나라가 이탈리아라고 했다.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는 말인지. 아니면, 이탈리아인 특유의 여유인지.

우여곡절 같았던 알바니아 출국과 이탈이라 입국을 거쳐 바리 시내로 나왔다. 기자가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는 그리스를 필두로 유럽의 경제공황이 가시화되던 시기였다. 버스기사들의 파업으로 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인 나폴리로 가려면 바리역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바리 사람들,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 사람들보다 영어를 훨씬 못한다. “스테이션”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내뱉었지만, 그 단어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겨우겨우 기억을 소급해 역(驛)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스타지오네(stazione)`를 떠올렸고, 1시간 넘게 헤맨 끝에 역에 도착했다.

 

▲ 이탈리아 안에 자리한 바티칸시국의 근위병들. 복장이 이채롭다.
▲ 이탈리아 안에 자리한 바티칸시국의 근위병들. 복장이 이채롭다.

대부분의 문제는 연속해서 터진다. 서유럽과 남유럽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동유럽의 기차역에서는 창구에서 직원이 표를 판매한다. 한국처럼 전산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아서다. 그런데 바리역에는 자동발매기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티켓 발매기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친다. 마르고 새까만 얼굴의 흑인 하나가 유창한 영어로 묻는다. “도와줄까요?” 사람의 선입견이나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잔인한 범법자나 불량스런 깡패로 자주 등장하는 흑인들. 기자의 머릿속에도 그 이미지는 뚜렷해서 선뜻 “그래요. 고마워요, 나폴리 가는 기차표를 대신 좀 사주세요”란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도와주겠다는 이가 그 흑인 하나뿐이니 다른 방법이 없다. 자동발매기 앞에서 물러서며 50유로(약 6만5천원)짜리 지폐를 그에게 건넸다. 뚝딱뚝딱…. 채 1분 되지 않아 승차권과 잔돈을 전해주며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채 인사도 전하지 못했는데, 이미 역 밖으로 사라진 친절한 흑인.

친절한 흑인은 그 사람 하나만이 아니었다. 나폴리에 도착한 것은 해가 저문 늦은 밤. 그런데, 이건 뭔가? 사진으로 보고, 말로 듣던 나폴리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와 함께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4대 항구도시`로 손꼽히는 곳인데… 직접 본 나폴리의 첫인상은 조금 과장하자면 `쓰레기 더미` 같았다. 기차가 나폴리역에 들어설 무렵부터 철로 위에 온갖 잡동사니 오물들이 가득하더니, 역 광장에도 쓰레기 천지다. 여름이었으니 그 냄새는 또 어땠겠나.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는 게 `어려운 숙제`처럼 다가왔다. 또 한 명의 선량한 흑인을 만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수천 년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듯 이탈리아의 건축물들은 아름답고 견고하다.
▲ 수천 년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듯 이탈리아의 건축물들은 아름답고 견고하다.

이탈리아는…

유럽대륙 남부에 자리했으며, 정식 국명은 이탈리아공화국(Republica Italiana). 수도는 로마, 인구는 약 6천2백만 명. 수도인 로마에 270만 명이 거주한다. 면적은 30만1천㎢로 한국의 1.5배 크기. 농경지(37%)와 산림(29%)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알프스산맥에 접한 북부는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동쪽은 아드리아해, 서쪽은 티레니아 바다와 맞닿아 있다

인구 중 대략 4%가 아프리카인과 중동인, 동양인 등 외국인이다. 평균수명은 81.5세로 높은 편, 북부에는 프랑스계와 오스트리아계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며, 남부지방에는 알바니아와 그리스 이민자들이 다수 거주한다. 유로화를 화폐로 사용하며 1유로는 한국 돈 약 1천300원.

한국과는 1884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국교를 맺었고, 1957년 9월 주한 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이 개설됐다. 국민의 대부분이 가톨릭교도이며, 소수의 무슬림과 그리스 정교도들도 존재한다. 대륙성기후를 보이는 북쪽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내고,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독일과 프랑스 국경에 접한 지역에선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드물게 사용된다.

파스타와 피자 등 서민적인 요리가 발달해 여행자의 입맛을 자극한다. 사람들의 기질은 열정적이고 유쾌하다. 북부 사람들은 세련된 패션 감각과 늘씬한 키로 유명하다. 반면, 남부는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관광지는 셀 수 없이 많다.

수도인 로마는 `거리 자체가 고대박물관`이라 불릴만하고, 시칠리아를 필두로 한 남부의 섬들은 새파란 물빛과 맛깔스런 해산물 요리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르네상스시대 대가들의 그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성당과 종교 관련 유적,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고 있는 바티칸도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사진제공/서지은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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