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이탈리아 ②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전경.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전경.
“이탈리아는 미남들이 사는 국가”라는 이야기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 전역에 퍼져있는 풍문이다. 기자 역시 귀를 가졌으니, 그 말을 듣지 못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건 뭐지?

남부 항구 바리에서 출발한 기차가 숨을 헐떡이며 달린 끝에 나폴리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구걸로 삶을 이어가는 동냥아치도 패션쇼 무대 위에 선 모델처럼 잘 생겼다는 이탈리아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역 근처엔 기념품과 싸구려 바지와 셔츠를 파는 검은 얼굴의 사람들 뿐. 미남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다.


절벽끼고 위태롭게 달리는 낡은 버스, 두려움도 잊게만든 아름다운 풍경
톰 크루즈보다 잘생긴 포지타노 식당 웨이터의 `이탈리아식 낭만` 정겨워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는 경제발전의 차이가 전혀 다른 별개의 나라로 느껴질 정도라더니, 그 이야기가 과장이 아닌 모양이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선 화를 낼 수도 있는 비교가 될 것 같지만,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는 동남아의 빈한한 국가 라오스나 캄보디아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우중충했다. 물론 기자는 알고 있다. 여행자가 처음 도착한 도시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

▲ 판테온 신전을 비추는 눈부신 햇살.
▲ 판테온 신전을 비추는 눈부신 햇살.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전엔 동유럽을 4개월간 여행했다. 일부러 한국 식당이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보다 큰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 음식을 먹은 지도 오래였다.

나폴리에선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자란 이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된장찌개와 냉면을 즐기고 싶었다. 해서, 인터넷을 뒤져 나폴리역 인근 한국인 숙소를 찾았다.

유럽은 도로와 건물이 일정한 방식에 의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어, 길 찾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그러나, 그건 잘 그려진 지도가 있고, 길눈이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형성됐을 때만이 가능한 일. 기자는 30년지기 친구 집도 갈 때마다 헷갈려 하는 사람이다.

메모한 주소만 들고는 숙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다시 혼란에 빠졌다. 바리역에서 기차표 발매기 앞을 서성이던 것처럼 나폴리역 광장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혼자서는 숙소를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바로 그때다. 이번에도 흑인 하나가 성큼 다가와 물었다. “도와줄까요?” 아주 짧은 그 물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바리에서 만난 흑인과 달리 이 사람은 183cm인 기자의 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러나, 덩치와는 관계없이 새까만 얼굴에 떠오른 환한 미소가 더없이 착해 보였다. 입술 사이로 새하얗게 빛나는 가지런한 이가 눈부셨다.

▲ 여름날, 로마와 나폴리 등 이탈리아 관광지엔 외국인 여행객이 넘쳐난다.
▲ 여름날, 로마와 나폴리 등 이탈리아 관광지엔 외국인 여행객이 넘쳐난다.
주소를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그걸 훓어본 그가 “따라오라”며 앞장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커다란 짐 보따리를 등에 멘 채로.

가고 싶어했던 한국인 운영 숙소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길을 찾아준 흑인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했다. 행상이 분명해 보이는 그에게 물었다. “보따리 안에 든 게 뭐냐?” 착한 웃음을 얼굴 가득 띤 채 그가 가방을 열었다.

조악하고 가벼운 화산암으로 만든 이탈리아 여행 기념품이었다. 1개에 5유로, 3개엔 10유로라고 했다. 10유로를 주고 1개만 집어 들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5유로짜리 지폐를 거슬러주는 흑인의 친절. 진원지가 불분명한 감정이 밀려왔고, 이상스레 슬퍼졌다.

흑인과 백인에 대한 차별이 살벌했던 시대의 미국. 흑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서로 때리고 맞아야 하는 권투를 직업으로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맞으면 아프고, 상대를 때리는 것이 좋을 까닭이 없는 게 보통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흑인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이란 한계가 분명합니다. 나 또한 권투선수가 되지 못했다면 거리를 떠도는 강도가 됐을 겁니다.”

편견과 선입견의 그늘 아래 사는 사람들.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는 흑인도 분명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언제쯤이 돼야 인간이 인간을 편견과 선입견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우리 앞에 도래할까?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 인류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 담긴 작품이 많은 곳이라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바티칸미술관.
▲ 인류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 담긴 작품이 많은 곳이라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바티칸미술관.
그렇다고, 이탈리아 여행이 위와 같은 고뇌와 슬픔만으로 이어졌던 건 아니다. 유쾌함과 즐거움 또한 적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해변도시 아말피와 포지타노. 그리고, 소렌토. 바위 위에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멋들어진 도시.

그곳으로 가는 길. 100m가 넘어 보이는 절벽을 끼고 2차선 좁은 도로를 낡은 버스가 위태롭게 달렸다. 그러나, 누구도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아름다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엽서 같은 풍경이 두려움을 멀리로 날려버렸다. 절경을 눈앞에 두고 터뜨리는 감탄사는 서양인과 동양인, 흑인과 백인, 아이와 노인이 다르지 않다는 걸 그 길에서 알게 됐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포지타노의 절벽 위 레스토랑. 음식과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종업원이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보다 더 잘 생겼다. 내려다보이는 바다의 색채처럼 푸르스름한 수염자국. 거기에 뚜렷한 이목구비. 세련된 헤어스타일에 커다란 키까지.

프라이팬에 녹인 버터를 한 숟가락 떠먹은 양 느끼하게 발음되는 그의 이탈리어어가 더없이 정겨웠다. 요리를 주문하는 여자들 모두에게 윙크를 날리는 모습도 귀엽기 짝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댔다. 그가 부르던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아직도 기억될 정도다. 바로 이게 이탈리아식 낭만이 아닐까.

다시 여름이 왔다. 푸른 바다가 그리운 계절. 아드리아해를 닮아 세상 누구보다 파란 눈동자를 빛내는 포지타노의 웨이터가 가끔 아니, 자주 그립다.
 

▲ 치즈와 신선한 채소가 올려진 이탈리아 피자.
▲ 치즈와 신선한 채소가 올려진 이탈리아 피자.
미식가의 나라 이탈리아에선 뭐 먹지?

이탈리아는 미식가의 나라다.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이탈리아인들은 너나없이 맛깔스런 음식과 포도주를 앞에 두고 이야기 주고받는 걸 즐긴다.

한국인들과 기질적으로 비슷하다. 한 나라를 여행한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음식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화의 하나. 이탈리아 사람과 여행자들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 담백한 맛이 일품인 피자

이탈리아 피자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넓게 편 밀가루 반죽 위에 올리는 재료도 많지 않다. 약간의 치즈와 절인 올리브, 루콜라 등의 싱싱한 녹색 채소와 선명하게 붉은 토마토소스 정도가 전부다. 그렇기에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낸다. 특히 남부 나폴리 일대의 피자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빼어난 맛을 자랑한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일종의 멸치젓갈인 앤초비(Anchovy)를 곁들인 피자를 권한다. 걱정과 달리 전혀 비리지 않다.

▲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해산물

만약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섬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사파이어보다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는 푸른 바다 근처의 레스토랑은 꼭 방문해야 한다. 은은한 숯의 향기가 배어 있는 싱싱한 생선구이와 남유럽 특유의 향신료를 가미해 만든 가재와 게 요리는 그 맛이 일품이다. 눈부신 햇살 아래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한 끼 식사. 금전적으론 부담이 되겠지만, 사랑하는 연인이나 아내를 위해 한 번쯤은 호기를 부려볼만 하다.

▲ 캄피돌리오 광장에 웅장하게 들어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 캄피돌리오 광장에 웅장하게 들어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이민자들이 즐기는 음식은 뭘까

이탈리아 전역엔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에서 이주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떠나온 자신들의 나라를 잊지 않기 위해 먹는 각종 전통음식들을 맛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북아프리카인들이 즐기는 쿠스쿠스(Couscous·밀가루로 만든 좁쌀 모양의 알갱이에 익힌 고기와 채소를 곁들여 먹는 요리)와 터키와 이란 사람들이 좋아하는 케밥(Kebab·양념한 양고기나 닭고기를 구워 채소와 함께 먹는 요리)은 독특한 향기와 식감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 내주 금요일부터는 특집기사 `포항지역 도서관 선진화를 위한 방안`을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홍성식의 지구촌 방랑기`는 8월 19일 다시 시작됩니다.

사진제공/서지은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