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그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봉화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다 서울로 전학온 일명 `서울 TK`출신이다. 서라벌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성심여대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지난 2012년에 서울 서초을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으려 애썼다고 한다. 국회의원 4년 임기를 마치고 올해초 다시 학교로 복귀하려던 그에게 청와대 참모로 일해보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국회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았던 그는 그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3개월 전 청와대에 들어온 강석훈 경제수석의 얘기다. 그는 우리나라 정책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이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인 근거로 결론지어지기보다는 지나치게 정략적인 기준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털어놨다.

“우리나라는 전문가의 권위가 너무나 없다. 예전에 대학생들에게 `누가 말을 하면 믿을 것인가` 물어보면 `김수환 추기경`이라고 답하거나 또 다른 사회지도층 중의 한 사람을 꼭 집어 얘기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 똑같은 질문을 해보면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 사람 말이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권위 실종`을 넘어 `권위 소멸의 시대`다. 개탄스런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권위가 사라진 증거로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을 예로 들었다. 실제로 4대강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어떤 전문가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하고, 어떤 전문가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니까 국민들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학자들이 정론을 버리고 시류에 영합하는 주장을 내세운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전문가들이 국론분열양상을 자초한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전문가의 권위는 사라지고 말았다.

국회에 있을 때 기획재정위 간사를 지낼 만큼 조세정책에 밝은 강 수석은 최근 새누리당과 야당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조세정책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경기침체가 되면 정부에서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법과 세금을 감면해주는 두가지 정책으로 경기부양을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야당은 재정지출을 늘리자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세금을 올리자고 한다. 세금을 올리면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효과가 모두 사라지게 되는 데도 말이다. 어떤 권위를 지닌 사람이 말해도, 어떤 논리적 근거를 들어 말해도 상대방은 들으려 하지 않고, 설득되지 않는다. 정파적 이익이 정치인의 눈과 귀를 가리면 그 정치인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게 되는 모양이다.

강 수석이 며칠 전 만난 식사자리에서 3개월간의 청와대 생활에 대해 소회를 털어놨다. 듣다보니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었다. “국회에 있을 때는 국민과 함께 민생현장에 있었는데, 청와대에 들어와보니 청와대와 국민들 사이에 언론이 숲처럼 둘러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95% 잘하고, 나머지 5%를 잘못했을 때 언론이 5%만 보도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언론과 더 많이 얘기하고 소통해야겠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권위 소멸의 시대를 전문가나 학자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치권에서 여야가 첨예한 정책대결을 펼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논리 대신 목소리 큰 사이비 전문가들을 내세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또 이런 진흙탕 싸움속에서 `너희끼리 지지고 볶고 싸워봐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련다`하는 심보로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전가의 보도로 휘둘러온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

다시 한번 정론직필(正論直筆)이란 언론의 사명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