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고대 그리스 지방인 에피로스의 왕 피로스(Pyrrhus)는 로마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는 모두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신 장수들을 많이 잃어 마지막 최후의 전투에서는 패망했다. 이후부터 많은 희생이나 비용의 대가를 치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 부르게 됐다. 그래서 피로스의 승리는 `실속 없는 승리` 또는 `상처뿐인 영광`과 동의어로 불린다.

8·9전당대회에 당 대표에 도전했다가 아쉽게 2등에 그친 4선의원인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이 24일 새누리당 대표·최고·중진간담회에 처음 참석해 꺼낸 첫 마디가 `피로스의 승리`란 말이었다. 주 의원은 이 말로 최근 새누리당이 처한 위기를 비유적으로 지적했다. 주 의원은“`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있고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 있다.`고 한다.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도 있고 `승자의 저주`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라며 “요즘 언론 1면에 계속 나오고 있는 현안문제, 소위 우병우 수석 문제, 저는 이겨도 지는 게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 걱정이 많다”고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를 빨리 정리하지 못한 데 대해 우려를 보인 것이다. 주 의원은 이어 “우리는 민심만 보고 가야되는데 당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해서 정리하고 있는지 걱정이 많이 앞선다”면서 소문난 불교통답게 선가에 전해내려오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로 새누리당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 말은 혜연(慧然)이 엮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당·정·청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야 될 일이 있지만, 이를 넘어서서 제 목소리를 내야 될 순간들이 있고,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이날 주 의원의 직설적인 지적에 대해서도 이정현 대표는 알쏭달쏭한 선문답으로 답했다. 그는 “당대표로서 당신이 쓴소리를 하느냐. 당신이 제대로 얘기를 하느냐라고 이야기한다”면서 “벼가 익고 과일이 익는 것은 그냥 보이는 해, 보이는 구름, 보이는 비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도 작용을 한다”고 했다. 즉, 벼를 익게 하고 과일을 익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바람이 늘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그저 영문모를 얘기였다.

우 수석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내에서도 호의적이지 않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18일에 이어 24일에도 “민심 이기는 장사 없다”며 우 수석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중진인 정우택 의원도 “우 수석이 스스로 거취 문제를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자진사퇴를 주장했다. 사정기관을 사실상 지휘하는 현직 민정수석의 입장에서 수사를 받을 경우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여론도 우 수석에게 매우 불리하다. 국민의 77%가 우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와 있다. 여야 관계 역시 우 수석의 거취를 놓고 꼬일대로 꼬였다.

지난 8·9 전당대회에서 호남출신 이정현 의원을 대표로 뽑아 큰 변화를 예고했던 새누리당이다. 이 신임 대표 스스로 자신을 `근본 없는 놈``흙수저 출신`이라고 지칭하며 변화와 혁신의 기수가 되겠다고 다짐해왔고, 민심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힘주어 말했으니 국민들도 기대만발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민심을 가감없이 전달하겠다던 이 대표가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기에 빚어진 일이다. 이제라도 이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더이상 우병우는 안 된다”라고 직언해야 한다.

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코끼리를 바늘로 찔러서 죽게 하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가 화제다. 정답은 `죽을 때까지 계속 찌르는 방법`이란다. 박 위원장은 이 방법을 우병우 사건에 적용하겠단다. 이 대표는 우병우를 `바늘에 찔려 죽는 코끼리`가 되도록 놔둬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