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이 혹서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청아한 노래로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삶을 비웃는 곤충이 있으니 바로 매미이다. 예로부터 시인들은 매미가 애벌레로 오랜 세월 땅속에서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 여름 한철에 짧은 시간을 노래하고는 생을 마감하는데서 삶의 덧없음을 표현했다. 또한 높은 곳에서 이슬만 마시고 산다고 하여 청백리 고결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오랜 기간 땅속에 있음은 선비들에 비유하면 공부를 오랜 세월 하는 기간이요, 성충이 되어 밖으로 나와 짧은 시간 노래를 부름은 선비로서 국가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서 청렴하게 그리고 짧은 기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야인으로 돌아가란 뜻이다.

이행(李荇·1478~1534)의 용재집(容齋集)에 매미에 대한 시가 한 구절 있다. `너의 성품이 자못 고결하거니/ 누가 미천한 곤충이라 하리오/ 바람에 울자니 마음 유독 쓰리고/ 이슬만 먹고사니 배는 늘 주리네/ 사마귀의 도끼는 몰래 독을 품고/ 거미의 실은 포위 풀지 못하나니/ 몸뚱이 가지면 참으로 누가 되건만/ 이 동물이야 본래 삿된 마음 없어라.` 연산군 10년(1504)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 거제도에 귀양을 가서 양을 치던 시인 이행에게도 매미는 자기의 절절한 상념을 촉발하는 존재였다. 이행은 고결한 까닭에 학대받을 수밖에 없는 약자의 비애와 한탄을 매미에 투영해 이 시를 지었다. 이슬만 마시며 늘 가난하면서 사마귀와 거미라는 천적에 시달리는 그 모습은 바로 언사로 억울하게 귀양 온 청렴한 선비였던 자신의 모습에 빗댄 것이다.

정약용(1762~1836)의 `여유당전서`에는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이 기록돼 있다. `도산사숙록`은 퇴계 이황을 사숙(私淑)하며 얻은 것을 기록해 정리한 책이다. 1795년에 다산은 중국인 신부 주문모 변복잠입사건에 연루돼 금정역 찰방(金井驛察訪)으로 좌천된다. 그해 겨울 그는 이웃집에서 `퇴계집`을 얻어 매일 아침 세수한 후 거기에 수록된 편지 한 편씩을 읽었다. 오전에 공무를 보고 오후가 되면 편지를 읽으며 깨달은 점을 부연해 기록했는데 그 기록을 정리한 것이 바로 `도산사숙록`이다.

퇴계가 젊은 율곡(栗谷) 이이(1536~1584)에게 답한 편지를 읽고 다산은 퇴계의 편지 가운데 한 구절을 초록한 뒤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일에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대뜸 다른 의견을 만들어내지 말고 또한 대뜸 지나간 일로 여기지도 말라, 모름지기 자세히 연구해 말하는 이의 본지(本旨)를 알고자 힘쓰고 반복해서 증험해야 한다.` 여기서 대뜸이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란 의미로 깊은 생각 없이 조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다산은 도산사숙록에서 자신의 경솔함을 종종 반성했는데 이 조목 역시 퇴계의 편지를 부연하면서 자신을 경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상황들을 보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 `대뜸` 반응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한번쯤 깊이 생각하여 대뜸 판단하는 조급함만 없애버리면 범죄도 줄어들 것이고 서로를 고소하는 법에 의존하는 생각도 줄어들 것이다. 오늘날 사회구조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 일컬으나 원래 완전한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고, 저울처럼 균형이 유지되는 법치도 없는 것이다. 이유원(1814~1888)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이렇게 적고 있다. `부끄러움 안고 살기 보다는 부끄러움 없이 죽는 것이 낫다.` 부끄러움 앞에 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부끄러움을 초래한 자신의 잘못을 고쳐 새롭게 거듭나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떳떳한 사람을 부끄러운 사람으로 몰아가는 세상을 바로잡아야 할 때도 있다. 힘에 빌붙어 구차히 살기를 도모하는 사람을 볼 때에 사람들은 그를 더럽게 여기고,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면수심을 볼 때에는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자신의 비위를 감추고 부끄러움도 없이 서로를 검찰에 고발하는 우리사회의 고위공직자들이 한번쯤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