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라오스 ②

▲ 밀림 속 비밀스런 라오스의 고대 사원. 기묘한 형상의 석조물이 여행자의 눈길을 잡아채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회에 이어 다시 라오스 `슬로우 보트` 이야기다. 표현이야 근사하게 `슬로우 보트`지만, 사실 루앙프라방에서 출발해 태국 치앙콩 국경을 넘는 배는 낡고 조악한 목조 통통배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식당시설은 물론이거니와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화장실조차 없다. 대형 유람선의 음악 감상과 영화 상영? 꿈같은 소리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이 여행의 말벗이 돼준 이들이 태국 여성 핌(pim)과 팜(pam)이다.

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직장생활을 10년쯤 하다가 가족과 친구가 있는 제 나라로 돌아온 30대 중반 여성 둘. 몇 해 전엔 핌이, 작년엔 팜이 한국을 찾았고 둘과의 해후는 다른 어떤 사람들과의 재회보다 반가웠다. 아래는 그 반가움의 이유다.

2박3일간의 `장대한 국경 넘기 항해`가 끝난 마지막 날. 태국 치앙콩에서 핌과 팜 그리고, 기자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현금이 없는 내게 기꺼이 숙박비를 빌려준 둘에 대한 감사인사의 자리였다.

 

▲ 라오스 강변마을에선 낡은 목선이 줄을 지어 정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라오스 강변마을에선 낡은 목선이 줄을 지어 정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철없는 사내를 따스하게 감싸는 손길

메콩강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레스토랑. 알코올 함량이 50%를 넘는 토속주 `라오라오`를 초저녁부터 내처 들이킨 기자는 몽롱하게 취해있었다. 그런데, 식사가 막 시작될 무렵, 차려진 음식 위로 돌풍과 함께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대성 스콜이었다. 주먹만한 빗방울만으로도 곤혹스러운데 갑작스레 불어 닥친 세찬 바람에 포도주잔까지 날아가는 황당한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러나, 그건 전조에 불과했다. 곧이어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고, 설상가상 정전까지 돼버렸다. 비상전력으로 가동되는 가로등 따위가 없는 국경 인근 시골마을. 정전이 된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캄캄절벽이었다. 손님들은 물론 레스토랑을 정리하던 종업원들까지 공황상태에 빠졌다.

 

▲ 초록빛 나무와 아기자기한 동물 모형으로 꾸며진 라오스의 정원.
▲ 초록빛 나무와 아기자기한 동물 모형으로 꾸며진 라오스의 정원.

근데, 그 어둠과 폭우, 벼락에도 기자는 손에 든 술잔을 놓지 않았다. 취한 자의 호기였을까? 모두가 굵은 비를 피해 호텔 로비로 가는데 혼자서 출렁이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레스토랑 난간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팜이 로비로 가다말고 뛰어와 기자의 손을 잡았다.

“그만 마시라”고, “우리도 빨리 비를 피하자”고 말하는데 그녀 손이 너무 따뜻했다.

마흔을 넘긴 사내의 대부분은 천둥이나 번개, 어둠에 잠긴 강 따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팜은 손과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그게 갑자기 불어온 돌풍 탓인지, 검은 하늘을 찢으며 번쩍이는 불빛과 귀를 때리는 벼락 소리 탓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왜 그녀는 두려움을 떨치고 빗속을 뛰어왔을까?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여성의 손은 따뜻하다는 것, 그 명명백백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을 뿐. 그리고, 당연한 순서처럼 아래와 같은 문장이 영화 자막인양 눈앞으로 흘러갔다.

 

▲ 고요와 평화로움이 깃든 라오스의 강변 풍경.
▲ 고요와 평화로움이 깃든 라오스의 강변 풍경.

“맞다. 여성가 없다면 누가 있어 철없는 세상 남성들을 위로하고 안아줄 것인가. 다행이다. 세상에 여자가 있어서.”

▲ 옥수수를 나누며 그녀들과 함께 웃다

태국인 팜에 얽힌 추억 외에 라오스 사람들과 나눈 따스한 기억 역시 선명하게 떠오른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빼어난 시 100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무사(思無邪)라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마음 안에 사악함이 없으면 표정에서도 그게 드러나는 게 사람이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만난 소녀들이 그랬다.

 

▲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라오스의 시골마을 풍경.
▲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라오스의 시골마을 풍경.

두 번째 라오스 여행에서 여장을 푼 첫 도시가 비엔티안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답지 않은 한적함이 좋았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라오스식 마사지`를 받으러 들어간 가게. 거기서 일하는 일곱 명의 아가씨들. 넷은 라오스 중남부 사완나켓, 셋은 그것보다 더 남부에 위치한 마을 팍세에서 왔다고 했다. 스물넷인 최고참 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19세에서 20세 사이.

1달러어치 반짝이는 스팽글을 사와 흑백화면 핸드폰을 장식하는 그네들은 한국의 여고생들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손님이 없는 한낮의 마사지 가게. 수다를 떨며 옥수수를 먹고 있길래 “나도 하나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뭐가 부끄러운지 쪼르르 달려와 그것만 건네고 제 자리로 재빨리 돌아간다.

 

▲ 루앙프라방의 새벽을 여는 승려들의 탁발 행렬.
▲ 루앙프라방의 새벽을 여는 승려들의 탁발 행렬.

그 모습이 귀여워 옥수수를 더 사와서 나눠먹자고 했다. 한국 돈 2000원에 옥수수 10개. 옥수수 알을 뜯으며 영어를 못하는 그 소녀들과 라오스어를 하나도 못하는 기자가 뭐가 그렇게 좋았던지 손짓 발짓을 섞어 한참을 깔깔거렸다.

다음 날도 거길 다시 갔다. 삶은 옥수수 10개를 사들고. `서울 갔다 돌아온 나이 많은 큰오빠`가 비단구두를 사온 양 기뻐하는 아이들. 1시간 내내 처음 보는 사람의 몸을 마사지해주고 겨우 5500원을 받는 소녀들. 그중 절반은 가게 주인이 가져가고, 절반만을 자기가 가지면서도 언제나 웃는 아이들. 그 애들의 하루 수입은 5000원에서 7000원 남짓이라고 했다.

일의 힘겨움 탓에 손바닥이 중년여성보다 더 거칠어진 그 아이들을 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어린 동생들 돌보며 빨래와 청소, 농사일까지 도맡아 하다가, 결국엔 동생들 스케치북과 연필 사줄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올라온 젊은 시골 여성들. 한국의 1970년대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기자는 그저 이런 혼잣말만을 중얼거렸을 뿐이다.

 

▲ 광활한 초원에 자리한 라오스의 고대 유적.
▲ 광활한 초원에 자리한 라오스의 고대 유적.

“너희들 모두를 한국으로 초대해 핑크색 핸드폰 고리와 반짝이는 은귀걸이라도 하나씩 사주고 싶구나. 옷가게에 데려가 1만원짜리 티셔츠 한 장씩이라도 선물하고 싶구나. 너희들의 빛나는 젊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주위사방을 환하게 밝히지 않겠니.”

요즘도 가끔 궁금하다. 비엔티안 마사지가게 소녀들의 안부가. 여행자거리 외곽에 위치한, 지금은 상호를 잊어버린 마사지숍 꼬마숙녀들, 모두 건강하지?

■ 나라 전체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침묵 속에 잠들어있는 라오스. 선량한 미소와 순수함이 여행자를 감동시키는 라오스는 숨겨진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몇 해 전 케이블TV 유명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론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여행지가 된 비엔티안과 방비엔, 루앙프라방에서 해볼만 한 것들은 뭐가 있을까.

 

▲ 비엔티안에서 프랑스식 만찬 즐기기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희귀한 에피타이저와 메인 요리, 디저트 등으로 구성된 프랑스 정식. 한국에선 판매하는 곳도 드물뿐더러 원체 비싼 가격 탓에 맛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라면 큰돈을 가지지 않은 여행자라도 프랑스식 요리를 맛보는 `소박한 사치`를 즐겨볼만 하다. 비엔티안 중심가 곳곳엔 `프랑스 정찬`을 차려낸다는 레스토랑이 흔하다. 가벼운 샐러드와 전채요리, 쇠고기 또는 닭고기를 이용한 스테이크에 향이 풍성한 라오스 커피까지를 세트메뉴로 내놓는 레스토랑의 한 끼 식사비용은 대략 1만5천원에서 2만원. 이정도 가격이면 동행한 여자 친구나 아내에게 “오늘은 프렌치 스타일로 먹어볼까”라고 권할만하지 않을까?

 

▲ 국민들 대부분이 불교도인 라오스에선 여러 형태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 국민들 대부분이 불교도인 라오스에선 여러 형태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 방비엔에선 웅덩이로 다이빙을…

메콩강 지류가 넘실대는 강변마을 방비엔에선 수상 레포츠가 제격이다. 물가를 따라 형성된 대부분의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에선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수상 레포츠 상품`을 판매한다. 1만원 안팎의 비용만 지불하면 트럭에 몸을 실은 채 시원한 라오스 맥주 `비어 라오`를 마시며 강의 상류로 올라가 튜브나 보트를 타고 하류로 내려오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을 따라 줄줄이 마련된 `놀이광장`에서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화끈한 파티`도 준비돼 있으니 그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줄에 매달려 10m 아래 짙푸른 웅덩이로 다이빙 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졌다면 더욱 더 좋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아이돌 가수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 인접국 베트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라오스의 빵도 맛있다. 배낭여행자들은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 인접국 베트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라오스의 빵도 맛있다. 배낭여행자들은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 루앙프라방의 새벽은 동승(童僧)과 함께

라오스의 고대왕국이 자리했던 고도(古都) 루앙프라방에선 오렌지 색깔의 승복을 입고 새벽마다 탁발을 다니는 어른 승려들을 만날 수 있다. 노승의 뒤를 따라 경건한 표정으로 줄지어 흙길을 걷는 동승의 하얗고 조그만 맨발을 보는 것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감동을 준다. 12~13세의 어린 라오스 승려들은 대부분은 가난한 형편 때문에 부모와 헤어져 사찰에서 생활한다. 이들에게 과자나 찰밥을 나눠주며 자신의 욕심 많은 삶을 반성해볼 수 있다는 건 라오스 여행의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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