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라오스 ③

▲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장식이 눈길을 끄는 라오스의 사원.
▲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장식이 눈길을 끄는 라오스의 사원.

마음속에 웅크리고 숨어 있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고요한 강변 풍경, 끝없이 이어지는 고적한 황톳길,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양식으로 축조된 불교사원의 지붕, 방치된 듯 버려졌지만 그 안에 수천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대의 유적들… 라오스의 풍광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건 라오스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자가 만난 라오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인 친구가 생긴다. 특정 도시에 오래 머물 경우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1주일을 같은 숙소에서 머문 루앙프라방에서도 몇몇 친구들이 생겼다.

그중 한 청년은 한국인이 교수로 와 있는 대학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했다. 인터넷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군데 싹싹하고 예의를 지킬줄 알았다. 나이는 스물 하나. 자기 학교를 구경시켜준다며 숙소 앞으로 왔다.

 

▲ 숨겨둔 가슴 속 향수를 불러내는 라오스의 강변 풍경
▲ 숨겨둔 가슴 속 향수를 불러내는 라오스의 강변 풍경

한국의 중·고등학교 규모인 조그만 대학에서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다가 돌아오는 길. 그 친구가 “우리 집에 가서 함께 저녁 먹어요”라고 청했다. 그리고, 이어진 충격적인(?) 발언. “내 아내가 요리를 잘 해요”.

스물한 살짜리가 아내가 있다고? 더 놀라운 건 와이프 나이가 열여덟이란다. 충격은 또 이어졌다. “나는 평범해요. 빨리 하는 애들은 열여섯에 결혼합니다.”

그 `꼬마 신랑`이 어떤 아내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라도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라오스는 결혼하면 남자가 여자 집으로 들어간다. 당연지사 집엔 그 친구 장인과 장모가 있었다. 장인은 쉰셋인데 자식이 11명이라고 했다. 아들 셋에 딸이 여덟. 기자가 아는 그 청년과 결혼시킨 딸은 9번째 자식이란다. 막내아들은 이제 겨우 11살.

 

▲ 생소하지만 귀여운 느낌의 라오스어 간판.
▲ 생소하지만 귀여운 느낌의 라오스어 간판.

열여덟 살 아내가 요리를 하면 얼마나 잘 하겠나. 한국에서라면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도시락 싸서 학원이나 다닐 나이인데. 그런데, 놀라웠다. 채소와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국과 민트에 칠리소스를 더한 `라오스식 샐러드`가 제법 맛있다. 처음으로 먹어본 라오스 가정식 요리. `꼬마 주부`의 성의가 더없이 고마웠다.

“당신은 11명의 아이를 만든 슈퍼맨”이라는 기자의 농담을 사위가 통역해주자, 쉰셋 사내가 호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가족들만을 불러 모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 그토록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라니.

기자는 형제가 많은 이들이 부럽다. 어려울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조건적으로 기댈 곳이란 결국 가족이 아닌가. 적은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도 크게 웃을 수 있는 그 옛날 한국의 대가족 풍경. 그와 닮은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 스물한 살 신랑과 열여덟 살 신부가 고마웠다. 물론, `슈퍼맨` 장인어른도.

 

▲ 수천 가지 사연을 간직한 라오스의 고대 유적 앞을 어린아이가 지나고 있다.
▲ 수천 가지 사연을 간직한 라오스의 고대 유적 앞을 어린아이가 지나고 있다.

라오스 여행에서 만난 이들 중 기자의 가슴을 조용하게 흔든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라오스에선 스님들의 탁발(托鉢)을 매일 볼 수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허겁지겁 고양이세수만 하고 거리로 나서면 저 멀리서 맨발의 탁발승들이 다가온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어린 승려들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동승(童僧)이 되어 절에서 먹고 자고 글도 배우며 몇 년씩 지내는 게 라오스의 일상적인 풍습.

비엔티안에서 만난 열여섯 동승도 아주 어릴 때 집을 떠나 절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형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그걸로 대학을 가고 싶다”고 하는 소년의 얼굴이 쓸쓸해보였다. “대학을 마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의젓했다. “은행원이 돼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보살피고 싶어요.”

그날 기자는 어서 빨리 그 동승의 아버지가 대학 입학금을 모으기를, 그 열여섯 소년이 대학을 마치고 월급을 300달러(이 돈은 라오스 노동자의 평균임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받는다는 은행원이 되기를 빌었는데, 지금쯤 그 동승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황톳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라오스의 시골. 왼편으로 줄지어 선 전통가옥들.
▲ 황톳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라오스의 시골. 왼편으로 줄지어 선 전통가옥들.

루앙프라방에선 사전에 전해들은 정보를 통해 어린 스님들은 찰밥보다는 사탕, 초콜릿, 과자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새벽에 시주를 받아 절에서 그걸 나눠 먹을 때가 되면 밥보단 과자에 손이 먼저 간단다. 왜 그렇지 않겠나. 승복만 벗으면 이제 겨우 열 살, 열한 살 꼬마들인데.

거리로 나가 과자를 파는 상인에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동승들이 이 길로 지나가나요?”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답했다. “아마 120~130명쯤 될 거예요.” 50개 들이 중국산 과자가 2달러(약 2300원)다. 3박스를 샀다. 그러면 150개. 하나씩 다 나눠줄 수 있는 숫자다.

희부옇게 밝아오는 여명. 저 멀리 조용한 루앙프라방 새벽 거리로 탁발승들이 나타났다. 각각의 사찰에서 늙은 스님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서열 혹은, 나이에 따라 줄지어 행렬을 이루는 것으로 추측됐다.

 

▲ 열한 살 어린 승려도 참여하는 루앙프라방의 탁발 행렬.
▲ 열한 살 어린 승려도 참여하는 루앙프라방의 탁발 행렬.

30~40여 분을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는 동승들의 행렬. 탁발이 다 끝나니 날이 밝았다. 과자가 30개쯤 남았다. 그건 기자 옆에 있던 꼬마소녀의 종이박스에 넣어줬다.

탁발행사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동승에게 나눠주는데 몇몇 아이들은 오히려 빈 종이박스를 든 채 동승들이 건네주는 걸 받고 있었다. “왜 저러는 것이냐”고 물으니, 가난한 집 아이들이란다. 가난한 동승이 더 가난한 또래 친구를 도와주는 눈물겨운 풍경.

예닐곱 살로 보이는 소녀가 바나나와 찰밥, 과자 따위가 담긴 종이박스를 옆에 놓고, 식은밥을 손으로 뭉쳐 아주 조금 먹었다. 노점상은 “소녀가 얻어가는 음식은 가족들의 하루치 양식”이라고 했다. 어지간해선 슬퍼할 줄 모르는 기자의 코끝이 찡해왔다.

 

▲ 라오스에서 만난 스물한 살 신랑과 열여덟 살 신부의 가족사진.
▲ 라오스에서 만난 스물한 살 신랑과 열여덟 살 신부의 가족사진.

시인 황지우에 의하면 “세상에 슬픔처럼 쌍스러운 건 없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착한 사람들이 사는 라오스는 기자를 슬픔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함께 밥을 나누는 존재인 식구(食口)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행복한 게 아닐까? 루앙프라방의 새벽은 무겁고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 자전거 여행자를 신기해하며 모여든 라오스의 아이들.
▲ 자전거 여행자를 신기해하며 모여든 라오스의 아이들.

라오스에서 뭘 먹지?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진 고급 요리는 드문 나라가 라오스다. 하지만, 라오스 곳곳엔 오랜 전통을 지닌 특유의 음식이 적지 않다. 비엔티안, 방비엔, 루앙프라방 등 북부는 물론, 팍세와 시판돈 등 남부지역에도 기후와 토양에 맞게 발전해온 특색 있는 요리들이 존재한다. 아래는 맛보지 않으면 서운할 라오스의 3가지 음식이다.

 

▲ 쌀국수
▲ 쌀국수

이국의 향 가득한 채소를 곁들인 `쌀국수`

내륙국인 라오스는 메콩강과 그 지류가 만들어준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쌀농사가 잘 된다.

당연지사 쌀 생산량도 적지 않다.

연중 따스한 기후에 신의 선물처럼 주어진 기름진 땅에서 재배한 쌀로 만든 라오스의 국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트남 쌀국수`와 비교해도 그 풍미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라오스 쌀국수는 돼지고기, 닭고기, 어묵 등과 함께 싱싱한 초록빛 채소가 듬뿍 담겨 있어 보는 이의 침샘을 자극한다.

게다가 가격도 1천~2천 원 정도로 저렴해 라오스 서민들은 물론,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배낭여행자도 즐기는 음식이다.

 

▲ 카오니아우
▲ 카오니아우

찹쌀을 쪄 만든 밥 `카오니아우`

집집마다 가스레인지가 보급되기 전엔 한국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었다.

모락모락 피어나던 부엌 굴뚝의 연기를 보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뛰놀던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돌아왔다.

라오스의 저녁 풍경은 수십 년 전 한국과 놀랍도록 닮았다. 찹쌀을 쪄서 만든 카오니아우는 라오스 사람들의 주식이다. 끈끈한 찰기가 있는 그 밥을 생강, 매운 고추, 라임, 마늘 등을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탐막홍(tam mak houng)`이라 불리는 푸른색 파파야 샐러드와 생선을 반찬 삼아 먹는다. 설탕을 찍어 먹으면 한국의 인절미와 비슷한 맛이 난다.

 

▲ 라오스 커피
▲ 라오스 커피

강변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라오스 커피`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선 이름도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세태 탓인지 예전에 비해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라오스 커피는 매력적인 향기와 독특한 맛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라오스에선 커피를 `팍송(Pakxong)`이라고 부른다. 팍송은 지명이기도 한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난 아라비카 품종의 커피가 생산되는 곳이다. 방비엔이나 시판돈에서 고요히 흐르는 강을 보며 즐기는 한 잔의 커피는 갑갑한 도심에서 마시는 커피와는 그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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