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몬테네그로 ②

▲ 버스 창밖으로 바라본 몬테네그로의 아름다운 해변마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나면 가방 몫으로 낸 차비(1유로)가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열 살 꼬마 차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동양의 산수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장엄한 산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그 아래로 투명한 계곡물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몬테네그로의 풍광은 여행자를 부드럽게 압도한다.

이끼 낀 성벽 품은 절경의 돌산
고급 요트와 크루즈선박 풍경 뒤
깨진 유리창과 폐건물이 방치
오랜 식민지·큰 지진까지
낭만과 폐허,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코토르의 추억

코토르와 부드바의 해변 역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멋들어진 백사장과 짙푸른 물빛을 태양 아래 드러내며 관광객들의 탄성을 불렀다.

수평선 근처에 기기묘묘한 모양을 하고 선 기암괴석도 장관이었다. 오랜 여행에 지친 기자는 아드리아해가 준 선물인양 몬테네그로의 풍경을 끌어안았다. 조급한 마음이 푸근하게 가라앉는 듯했다.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으니 일단 사용하는 화폐가 달라졌다. 이전 여행지 알바니아에선 `리케`라는 단위의 돈을 사용했는데, 몬테네그로는 `유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체감 물가가 3배는 높았다. 알바니아에선 600~700원쯤에 마시던 콜라가 몬테네그로 슈퍼마켓에선 2천원이 넘었다.

▲ 바닷가에 축조된 몬테네그로 고대 성곽을 찾은 관광객들.
▲ 바닷가에 축조된 몬테네그로 고대 성곽을 찾은 관광객들.
하지만, 소시지나 햄 등의 육가공품이나 견과류, 향과 맛이 좋은 포도주는 비교적 저렴했다.

그게 긴 여정에 지친 술 좋아하는 여행자를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셔츠가 온통 땀으로 젖는 고생 끝에 자정이 가까워서야 아드리아해와 접한 몬테네그로의 바닷가마을 코토르에 도착했다. 이제 몸을 씻고 머리를 누일 방을 구해야한다.

다행히 숙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국제버스가 오가는 코토르 터미널 대합실에 키가 훌쩍 큰 모녀가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그곳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다가서며 제 집에서 묵기를 청하고 있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민박집 호객`이었다.

법이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착해 보이는 모녀. 엄마와 딸 모두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그랬기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그만 팸플릿과 사진을 통해 하루치 숙박비와 방의 상태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적힌 가격은 1박에 10유로(약 1만2천500원).

기자가 별다른 흥정 없이 그 모녀를 따라가 그들의 낡은 아파트 방 한 칸을 3일간의 숙소로 삼은 건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딸의 부끄러워하는 미소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 붉은 지붕의 집들 뒤편으로 코토르항에 정박한 크루즈선박이 보인다.
▲ 붉은 지붕의 집들 뒤편으로 코토르항에 정박한 크루즈선박이 보인다.

# 거대한 고성, 화려한 크루즈선박, 그리고 비극

코토르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딸이 끓인 터키식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챙겨 먹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검은 산`이라는 나라 이름을 증명하듯 이끼 낀 거대한 성벽을 제 품에 안고 있는 가파르고 거대한 돌산이 절경이다.

해변엔 어디에서 온 것인지 고급 요트 수십 척이 줄지어 정박돼있고, 항구에는 족히 1천명은 싣고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짐작되는 크루즈선박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아드리아의 바다 색깔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재론의 여지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휘황한 관광지를 벗어나 시내 외곽으로 나오니 전혀 다른 풍광이 기자를 맞이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손님이 들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는지 가늠키 힘든 텅 빈 호텔과 관리가 전혀 안 돼 있는 수영장, 깨어진 유리창 뒤로 푸른 하늘이 그대로 올려다 보이는 폐건물, 거기에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은 주눅이 든 표정으로 해변을 서성이는 동네 사람들.

몬테네그로의 요약된 역사는 포털사이트 검색기능을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그걸 주절주절 인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관광지를 벗어나면 어딘지 모르게 폐허의 냄새가 느껴지는 코토르.
▲ 관광지를 벗어나면 어딘지 모르게 폐허의 냄새가 느껴지는 코토르.

오히려, 직접 그 도시를 경험한 사람의 느낌이 앞으로 몬테네그로를 여행할 이들에게 더 유용한 정보가 아닐까.

최근 독립을 이룰 때까지 너무나 긴 시간을 불가리아와 이탈리아, 오스만제국의 식민지로 지냈던 몬테네그로. 거기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제적 궁핍 때문일까?

눈이 부신 바다와 입이 떡 벌어지는 웅장한 석산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 도시임에도 코토르는 어딘지 모르게 `폐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역설적이게도 코토르에서 만난 석양은 터무니없이 낭만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어차피 낭만이란 단어 속에는 `폐허`와 `퇴폐`의 이미지가 숨겨져 있으므로.

 

▲ 코토르엔 독특한 양식으로 세워진 석조건축물이 흔하다.
▲ 코토르엔 독특한 양식으로 세워진 석조건축물이 흔하다.

# 자연재해가 입힌 상처의 깊이는…

폐허의 느낌과 사람들의 우울한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숙소 주인 모녀의 친척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다. “오래 전 큰 지진이 우리 마을을 덮쳤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기자가 감지했던 폐허의 냄새에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민족에게 식민지 경험이 유쾌할 수 있겠는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겪은 한국인이라면 그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재앙까지. 집단적 고통과 공포의 체험이 코토르 사람들의 마음속에 `폐허`를 만든 것이었다.

지진은 미소가 예쁜 딸에게서 아버지를 뺏어갔고, 딸은 그때부터 말수가 적어졌다고 한다.

아내는 생활을 유지해주던 남편의 월급이 사라진 후 아파트 방 한 칸을 여행자용 숙소로 내놓아야 했다. 역사와 자연재해가 이들 모녀에게 입힌 상처는 그 깊이가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기자는 코토르를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가끔 `불행 속을 살아가는 몬테네그로 코토르의 모녀`를 떠올린다. 그럴 때면 너나없이 인간 모두의 가슴 안에 자리한 황량한 `폐허`가 동시에 보이는 듯하다.

▲ 부드바 거리에서 만난 몬테네그로 국기와 여행 기념품들.
▲ 부드바 거리에서 만난 몬테네그로 국기와 여행 기념품들.
꼭 봐야할 몬테네그로의 보석 같은 도시들

다녀온 사람이 드문 것은 물론, 나라 이름조차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몬테네그로. 하지만, 거길 여행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몬테네그로는 동유럽의 숨겨진 보석”이라고. 가장 마지막까지 세르비아의 정치·경제적 지배하에 있었던 사연 많은 국가.

아래 세 도시는 말 그대로 몬테네그로의 `숨겨진 보석` 같은 곳들이다. 더 늦기 전에 배낭을 메고 둘러봐야 할.

▲ 포드고리차(Podgorica)

발음되는 이름이 조그맣고 예쁜 `포드고리차`는 몬테네그로의 수도다.

로마가 그 위용을 떨치던 시기에는 듀클리아(Doclea)로 불렸고, 중세에는 리브니차(Ribnica)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재의 명칭으로 불리게 된 건 1326년.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있기도 했고, 세계 제2차대전 직후인 1946년엔 유고슬라비아연방국의 하나가 됐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사연을 겪었기 때문일까?

포드고리차엔 로마의 유적과 터키 지배 당시의 건물, 거기에 아직 채 걷히지 않은 사회주의의 향기까지 공존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회문화적 유적과 흔적을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리브니차강(江)과 모라카강을 바라다보며 훈제된 연어를 안주로 맥주 한 잔 마시다보면 “역사란 무엇이고, 그 안에서 살아온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겨울엔 스키를 타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흔하다.

▲ 부드바(Budva)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탓에 떠오르고 있는 몬테네그로의 `핫 플레이스`.

연중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가 매력적인 도시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이 `그리스신화`에도 등장한다.

15세기부터 300년 이상을 베네치아공화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불과 40여 년 전 `지진`이라는 크나큰 자연재해를 겪었으나, 신속한 복구로 오늘날 아름다운 모습을 갖췄다. 올드타운은 베네치아공화국 시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과 이반(St. Ivan)성당, 세인트 마리(St. Mary)성당의 장엄함이 매력을 더하는 도시다.

▲ 코토르(Kotor)

사파이어의 색채로 반짝이는 아드리아해와 중세에 축조된 거대한 성벽으로 이름 높은 도시. 로마시대부터 번성하던 곳이었고, 그때 지어진 요새가 아직 존재한다. 불가리아의 통치 아래 있던 시절이 있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도 받았지만, 식민지의 설움과 이민족의 폭정도 이 도시의 빼어난 자연환경까지 파괴하지는 못했다.

1979년 해안에서 발행한 대지진으로 시가지의 절반이 파괴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아직은 세파에 찌들지 않은 환한 웃음으로 여행자들을 반긴다.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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