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인도 ③

▲ 인도의 행상. 어렵고 궁핍한 현실을 살면서도 인도 사람들은 달관한 듯 너나없이 잘 웃는다. 그 웃음은 여행자들에게 인도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 인도의 행상. 어렵고 궁핍한 현실을 살면서도 인도 사람들은 달관한 듯 너나없이 잘 웃는다. 그 웃음은 여행자들에게 인도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뭄바이를 향하는 비행기 안. 수천 미터 상공에서 마신 포도주 2병의 취기는 헛된 상념을 불렀다. 그 잡스런 생각을 깨뜨린 건 “곧 뭄바이 국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었다. “아, 드디어 인도구나.”

인천공항에서부터 4시간을 늦게 이륙한 에어인디아 항공기는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새벽녘에 인도에 내려앉았다. 뭄바이공항은 1970년대 후반 한국의 조그만 도시 버스터미널인양 괴괴했다. 게다가 내리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국인 한명도 없는 낯선 인도 뭄바이공항 도착
호텔로 가는 길, 수백명 노숙자들 모습에 충격과 공포
인도여행 포기하고 파리·시드니로 도망가고픈 충동도
다음날 아침 한국과 같은 일상 모습에 다시 인도 품으로

▲ 도로의 주인인양 위풍당당 걸어가는 코끼리.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도로의 주인인양 위풍당당 걸어가는 코끼리.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스스로 외로움을 느끼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라고 믿어왔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외로웠다. 한국 땅에서 발 뗀지 겨우 10시간 남짓임에도. 그러나, 시인 정호승(1950~)이 그랬던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그래 나도 사람이구나`라는 혼잣말로 가슴 속에서 슬금슬금 고개를 내미는 고독을 토닥였다.

찾아야할 큰 짐이 없어 바로 입국수속대에 섰고, 세관 검사까지 통과하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입국심사대에 선 공무원은 할리우드 배우 덴젤 워싱턴과 사무엘 잭슨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의 미남이었다. 그가 입국 도장을 “쾅” 소리 나게 찍어주며 웃음 섞어 “웰컴 투 인디아”라고 말해주는 게 고마웠다.

공항 픽업을 위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도인이 기자를 마중 나왔다. 그가 묻는다. “짐이 이게 전부인가요?” 다른 여행객에 비해 터무니없이 조그만 가방을 보며 하는 소리다. “네. 심플하죠?” 어깨를 들썩이며 그가 씨익 웃는다. 

어떤 이물질도 섞이지 않는 순도 100%의 웃음. 그 웃음이 그만의 전매특허인 줄 알았는데, 지내고보니 인도 사람 대부분이 그처럼 순한 소처럼 웃었다. 여행 내내 그게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 웃음은 때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주는 삶의 에너지로 역할한다.

▲ 인도 서부 아라비아해의 저물녘 풍경.
▲ 인도 서부 아라비아해의 저물녘 풍경.
그를 따라 승합차에 타고 뭄바이 시내를 달렸다. 숙소인 헤리티지호텔로 가야했다. 한 10여분을 달렸을까. 이게 뭔가? 손바닥과 눈동자만 하얀 색으로 구분할 수 있는 시커먼 사람들 수백 명이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이불도 없이 누워있다.

그랬다. 한국에서 이미 책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처럼 뭄바이엔 동양에서 가장 거대한 슬럼이 똬리를 틀고 있다. 허나, 책을 통해 알게 된 간접지식은 그 실체를 목격하는데서 오는 놀라움을 완화시켜주지 못했다.

2차 이라크전 당시 조지 부시와 도널드 럼스펠드 등 미국 국방지휘부가 바그다드에 수십 만 톤의 폭탄을 쏟아 부은 작전명이 절로 떠올랐다. 그 작전의 이름은 `충격과 공포`. 기자의 머릿속에서 스커드 미사일과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굉음을 뿜으며 충돌하고 있었다. 인도 첫날의 체험이 안겨준 `충격`과 `공포`였다. 

그 충돌의 굉음은 헤리티지호텔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귀를 먹먹하게 했다. 산다는 것 혹은, 견딘다는 것은 무엇이고 인간의 존엄과 최소한의 사람다운 생활이란 또 뭐란 말인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편치 않은 건 마음만이 아니었다. 도로를 달려올 때부터 코끝에 묻어온 생선 비린내와 무언가가 썩는 냄새가 아침까지 떠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적지 않은 여행경비가 가방 안에 그대로 있으니 인도여행을 포기하고, 내일 당장 파리 또는, 시드니행 항공권을 알아봐야하는 게 아닌가라고 아주 진지하게 고민했다.

▲ 인도 사람들이 무질서할 것이란 생각은 편견이다. 매표소 앞에 줄지어 선 인도인들.
▲ 인도 사람들이 무질서할 것이란 생각은 편견이다. 매표소 앞에 줄지어 선 인도인들.
고민 속에 아침은 밝았다. 환해져서 사물과 사람을 제대로 분간하게 되니 캄캄절벽 같았던 밤보단 마음이 훨씬 나아졌다. 오전 9시 정도면 새벽에 공항에서 만난 픽업맨이 뭄바이역으로 기자를 안내해주러 올 것이다. 한시바삐 아라비아해의 석양과 만나고 싶어 뭄바이-티빔(해변이 있는 인도의 도시)간 기차표도 한국에서 예약을 해둔 터였다.

커피 한잔 마시는 것으로 조잡한 호텔 조식을 포기하고 환해진 바깥을 1시간쯤 산책했다. 그런데, 이것 봐라. 사람 사는 모습이 한국이나 인도나 별 다를 바 없다. 분주한 출근길을 서두르는 양복 차림의 사람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인도 전통복장의 여성들, 신문과 담배를 파는 가판대 역시 활기가 넘친다. 

피부색과 옷차림만 달랐지, 서울이나 포항의 아침과 다름없는 풍경이다. 갑자기 몇 시간 전의 고민이 우스워졌다. `그래, 파리나 시드니는 무슨 얼어 죽을…`. 바깥으로 전화기를 꺼내놓은 구멍가게에서 엄마에게 인도 도착을 알렸다. 국제전화 치곤 무척 싸다. 음료수와 담배도 샀는데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바가지도 없다.

▲ 인도 서민들의 한끼 식사. 바나나잎에 올려진 음식이 이채롭다.
▲ 인도 서민들의 한끼 식사. 바나나잎에 올려진 음식이 이채롭다.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은 픽업맨은 “기차 시간에 늦지 않겠냐”는 우려를 딱 한마디로 일축했다. “노 프라블럼!” 그의 말처럼 기차 시간엔 늦지 않았다. 생수와 비스킷을 사서 열차에 올랐다. 픽업맨이 좌석까지 따라와 “즐겁게 여행하라”고 인사를 한다.

대략 12시간이 걸린다는 고아주(州) 티빔까지의 여정. 2-2 좌석 시스템인 한국과 달리 영국풍으로 설계된 인도의 철로는 폭이 넓은 광궤(廣軌)라 3-3의 형태를 가진 기차가 많다. 기자가 예약한 좌석 타입은 2A(한 칸에 2개의 침대가 있는 형태). 인도에서의 첫 번째 열차여행이고, 처음부터 체력을 고갈시키지 말자는 생각에 편한 걸 선택했다. 위쪽 침대칸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브라만(Brahman·인도 카스트의 최상위 계급) 아주머니가 탔다. 그녀는 자식이 둘인데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뭄바이에서 IT 계통의 일을 하고, 딸은 대학생이란다.

인도에선 카스트가 없는 외국인을 무시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괜히 기죽기 싫어서 “내 할아버지는 철학자”라고 말했다. 약간의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조부가 읽었던 중국의 철학서 `논어`와 `시경`이 아직 집에 있으니.

그런데, 깨를라(뭄바이에서 기차로 약 40시간이 걸리는 인도 남부지역) 간다는 이 아줌마가 챙겨온 짐을 보곤 기절할 뻔했다. 커다란 보온병에 짜파티(인도인들이 즐겨 먹는 밀가루 부침개) 20여 장, 짜파티에 싸먹는 각종 소스가 7~8가지, 거기에 속에 든 것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짐 보따리 3~4개까지. 그 양이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로 이민 가는 사람의 짐을 방불케 했다. 아예 살림을 다 떠메고 온 듯 보였다. “이게 인도 사람들의 기차여행 스타일인가”라는 혼잣말을 했다. 

▲ 인도의 해변은 시끌벅적한 동남아 바닷가와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 인도의 해변은 시끌벅적한 동남아 바닷가와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매력적인 인도의 해변

통상 인도라고 하면 고대의 힌두 유적과 이슬람 유적,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풍습을 가장 큰 관광 메리트로 꼽는다.

하지만, 인도에는 푸른 파도 출렁이는 아름다운 해변도 많다.

특히나 아라비아해의 석양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아래 소개하는 해변들을 찾아본다면 인도여행이 보다 즐거워질 것이다.

◆ 안주나 해변

`고아(Goa·바다에 인접한 인도 서부지역)의 보석`으로 불리는 곳이다. 196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의 히피들이 찾기 시작해 유명세를 탔다. 일 년 내내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으로 매주 열리는 `벼룩시장`이 유명하다.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인도에 머무는 장기여행자들이 자신에게는 쓸모없어진 다양한 물건들을 거래한다. 비단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만이 아니라, 여행정보를 주고받고 젊은이들의 불꽃 튀는 연애(?)가 이뤄지는 곳으로도 이름이 높다.

◆ 팔로렘 해변

고아의 해변들 중 가장 늦게 개발돼 비교적 `문명의 때`가 덜 묻은 곳이다.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올린 늘씬한 야자수.

그 나무그늘 아래서 맛보는 파인애플 주스 한 잔은 더운 날씨에 지친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해 뜰 무렵 넓은 모래밭을 달리다보면 인근 동네에서 수영하러 온 인도 아이들의 환한 미소와 만날 수 있다.

야외 테이블을 갖춘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어보는 것도 즐거운 체험이다.

◆ 바르칼라 해변

인도 남서부에 위치한 해변.

깎아지른 듯한 모래언덕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원시의 바다가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숙소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이 해변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태풍이 몰려오는 5~6월. 거친 몬순(monsoon·계절풍)이 불어오는 바르칼라의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면 수백 만 년 전 석기시대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제공/송선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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