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인도 ⑤

▲ 칼랑구트 해변의 아침은 고요함이 지배한다. 북적이는 낮의 풍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어슬렁어슬렁 나선 해변 산책. 인도 고아주(州)의 칼랑구트 해변은 노천카페와 몰려든 인도인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태양은 눈부시고… 맥주 한잔이 간절했다.

원로정치인 김종필은 낮술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태양이 작렬하는 대낮의 해변
노천카페서의 맥주 한 잔은
오래오래 기억될 추억으로…

태양과 바다의 합작품 저녁놀
감상하다보면 `여기가 천국`

 

▲ 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인도 모자(母子).
▲ 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인도 모자(母子).

“이봐, 낮에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실로 감로수와 같은 것이야.”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온 기자는 낮술 마시기에 적당한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한 초록색 운동화 속으로 하얀 모래가 들어와 버석거렸다.

운동화 색깔이 예쁘다며 자기가 일하는 노천카페로 기자를 이끈 게 홍차가 유명하다는 다즐링 출신의 스물다섯 살 사내 아밋(Amit)이었다. 날은 덥고 피곤한데 여러 군데 찾아다닐 것도 없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해변 모래밭에 깔아놓은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인도맥주 킹 피셔와 주먹보다 큰 새우 4~5마리를 구워 시작한 낮술은 그날 석양 무렵까지 이어졌다.

생면부지의 땅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 아밋과는 당연지사 친구가 됐다. 그는 칼랑구트 해변에 산재한 수십 군데의 노천카페 중 한곳에서 일하는 종업원.

아밋이 다른 종업원까지 모조리 데려와 소개를 시켜준다. 제 출신지와 이름을 말하는 그들. 나또한 짧은 영어로 맞장구를 쳤다. 반갑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맥주 한잔 할래, 저기 있는 친구도 불러와라...

급하게 들이켠 낮술의 취기가 도도해졌고, 한국에서처럼 인도에서도 술 마신 사람 특유의 느긋함과 낙관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 인도 남부 바르칼라 해변엔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이 흔하다. 어떤 이들은 바르칼라의 매력에 빠져 3~4개월을 머물기도 한다.
▲ 인도 남부 바르칼라 해변엔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이 흔하다. 어떤 이들은 바르칼라의 매력에 빠져 3~4개월을 머물기도 한다.

대략 6~7시간쯤을 노천카페에 앉아 술 마시고, 밥 먹고, 놀았는데 함께 사진 찍은 사람이 30명은 됐던 것 같다. 국적과 이름과 직업과 월급의 액수를 묻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것의 2배쯤 더 많았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인도를 여행하다가 우리 동네에 오면 꼭 한 번 놀러오라”는 초대도 여러 차례 받았다.

오후가 되니 해변을 오가며 조잡한 액세서리와 튀김, 과일 따위를 팔러 다니는 노인과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들도 옆자리에 앉히고 감자칩과 콜라 따위를 대접하며 잠시 쉬어가게 했다. 물론, 그들 손에 들린 액세서리와 파파야, 말린 망고도 사줬다.

그런 취기도도함 속에서 아라비아해를 달구었던 태양이 바다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이 왔다. 아… 해질녘의 칼랑구트 해변이란. 감탄사를 남발하는 문장이 유치하단 걸 알지만, 어찌 그 풍광을 감탄사 없이 기억의 회로 속에서 불러낼 수 있을까. 근사했다. 필설로 형용이 어려울 만치.

해가 지고 노천카페 천막 안에 형광등이 켜질 때쯤 운동화를 아밋에게 선물했다. 그는 그걸 신지도 않고 자신의 사물함으로 보물인양 고이 모셔갔다. 데이트 할 때 신으려고 그랬던 걸까? 기자의 맨발엔 가게 안을 굴러다니던 낡은 슬리퍼가 신겨졌고, 그걸 신은 채 낯선 인도음악에 맞춰 발가락을 까딱거렸다.

 

▲ 칼랑구트 해변의 일몰 무렵. 태양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색채가 환상적이다.
▲ 칼랑구트 해변의 일몰 무렵. 태양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색채가 환상적이다.

손목에 있던 시계는 또 다른 종업원에게 선물했다. 그는 흔한 손목시계 하나에 너무나 기뻐했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오가며 자랑했다. 낡은 시계 하나로 누군가를 그토록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니, 기자 역시 기꺼웠다.

역시 얻어먹는 술보단 사는 술이 맛있고, 무언가 도움을 받는 것보단 베푸는 게 더 행복한 법이다.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돌아갈 시간이 됐다. 더 마시다간 만취해서 실수라도 할 판이었다. 계산서를 보니 거의 공책 한 페이지에 빽빽하게 그날 기자가 먹고 마신 품목들이 기록돼 있다.

킹 피셔 맥주 12병, 인도 전통주 `캐슈 페니`가 4잔, 스프라이트와 콜라가 20병, 돼지고기와 식초, 토마토로 만든 `빈달루`, 새우구이, 감자칩 5접시. 이걸 모두 다 먹고 마셨는데 한국 돈으로 4만원이 조금 넘는다. “인도는 인심 쓰기에도 좋은 나라구나”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계산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선 작가 루이제 린저(1911~2002)의 소설 속 문장을 여러 차례 반복해 혼잣말로 흥얼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끝이 난다. 고통 또한 그렇다.”

지난 번 여행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인도로 출발할 당시 이런 마음을 가졌었다.

“한 달 만에 거대한 나라 인도의 모든 걸 다 보려고 하는 건 욕심이다. 마음을 비우고 근사한 곳이 있다면 거기서 여행 내내 머문다 해도 뭐가 문제겠는가. 어차피 과거의 풍경 속에서 쉬러 가는 것인데.”

 

▲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칼랑구트 해변의 개들.
▲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칼랑구트 해변의 개들.

칼랑구트 해변에서 수십 명의 인도 사람들과 술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잘 구운 차파티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행복했던 날을 보내고 나니 이런 생각은 보다 구체화되어 가슴을 채웠다. 해서, 4일쯤을 칼랑구트에 머물렀다. 인도여행이 27일이었던 걸 감안하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기간 내내 아밋이 일하는 노천카페에 앉아 시원한 킹 피셔 맥주를 느긋하게 마시며, 출렁이는 파도와 오가는 인도 관광객들을 구경했다. 물론, 그들과 함께 사진 찍고, 국적과 직업, 이름과 월수입을 하루에 100번쯤 말해줘야 하는 즐거운(?) 고역도 계속됐다.

낮술의 취기가 적당히 오르면 20대 시절 읽었던 이외수(1946~)의 `영주 풍경`을 조용히 읊조리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됐기에 더없이 즐거웠던 칼랑구트 해변의 나날이었다.

누가 어진 마음으로 살라하여 그리 되더냐

가만히 두어도 어진 산비탈

오늘은 사과꽃 눈부시게 만발 하였으니

이런 날 도(道) 따위 닦아 무엇에 쓰리

영주 땅 가득히 엎질러진 햇살

부처님 진신사리도 녹아드는데.

돌아가고 싶은 인도의 바다… 그 곳에서 `유유자적` 선량하게 늙어가고 싶다

누구나 가끔은 이런 혼잣말을 한다. “내가 발 딛고 선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나 길고 지루하구나.”

`지금 이곳`이 아닌 `다가올 날, 또 다른 곳`을 꿈꾸는 건 어쩌면 인간만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로 훌쩍 떠나 또 다른 삶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기자 역시 `오늘`과 `여기`가 아닌 `내일`과 `다른 공간`을 꿈꾸며 살아왔다.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큰 그림은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한국이 아닌 인도의 남부, 서울이나 포항이 아닌 깨를라주(州) 바르칼라에서 나머지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것.

돈 몇 푼에 얼굴 붉히고 드잡이하는 게 아니라 유유자적을 지향하며, 빛깔 잃어가는 수채화처럼 선량하게 늙어가고 싶다.

10년 전쯤이다. 무시무시한 태풍이 다가온다는 인도방송의 뉴스를 들은 날. 바르칼라 해변으로 갔다. 풍문대로 인도 몬순(monsoon)은 거칠었다. 절벽 위에 늘어선 야자수 아래 시퍼런 바다가 천지창조의 그날처럼 미친듯 들끓었다. 거대한 태풍이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인간이란 `찰나 생(生) 찰나 멸(滅)` 하는 보잘것없는 존재. 어떤 이에겐 `적멸`이 아름답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까.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새벽. 혼자서 바르칼라 해변을 거닐었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수십 마리의 개들과 사이좋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생전 하지 않던 조깅을 했을 뿐. 그리고, 비에 젖은 담요인양 무겁게 내려앉은 남부 인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결심했다.

“언젠가는 여기로 돌아와 생의 나머지를 살아가리라.”

가슴 안에서 지워낼 수 없는 단 한 사람, 자신의 전 생애를 걸어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라도 있는 인간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끝끝내 돌아가고 싶은 생의 `어느 한 때`와 `특정 공간`을 품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비단 바르칼라 해변만이 아니다. 그해 기자가 떠돌았던 칼랑구트, 베나울림, 팔로렘, 코발람 해변의 짙푸른 파도와 눈앞에서 숭어떼처럼 튀어 오르던 소금기 묻은 햇살을 떠올리면 `여기 이곳`에서 아등바등 살아간다는 사실이 참으로 춥고 서글프다. 곧 겨울이 온다.

사진제공/송선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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