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인도 ⑥

▲ 인도 기차가 원시의 풍광 속을 지나가고 있다.
▲ 인도 기차가 원시의 풍광 속을 지나가고 있다.

고아의 해변을 출발해 함피를 향하는 여정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인도 내륙에 위치했고, `성스러운 도시`로 불리는 함피로 가는 관문인 호스펫에 도착했다.

시내는 늦은 시간임에도 몹시 북적거렸다. 인근 마을을 다녀오는 인도 사람들부터 멀리서 이곳을 찾은 이방의 여행자들, 거기에 장사치들까지 시끌벅적 제 할 일과 제 갈 길을 찾고 있었다.

오토릭샤 가이드인 소년가장과 사흘동안 `함피` 여행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허물없이 술잔 나눈 추억들
성스러운 도시의 유적군·바위풍경에 넋을 잃기도

수천 리 먼 길을 오느라 힘겨웠으니 숙소는 좋은 걸 잡아 편히 쉬며 여독을 풀려고 마음먹었다. 호스펫 버스터미널 인근 `말리기호텔`이 괜찮다는 정보를 얻어들었다. 하루 1000루피(약 2만원)면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잠들고, 다음 날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다니 나쁘지 않아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을 찾아가는 길. 어리게 보이는 `오토 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인도의 교통수단) 기사 하나가 끈질기게 따라오며 “당신이 여기에 머무는 동안 함피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돼주겠다”고 제의했다. 영어도 썩 잘한다.

 

▲ 매혹적인 함피의 석양.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 매혹적인 함피의 석양.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사람을 예의 바르게 대하고, 눈빛이 살갑기도 해서 정이 갔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으니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난 사흘쯤 있을 텐데 얼마를 주면 될까?”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주면 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어 “하루에 500루피면 어떠냐”고 물으니, “오토 릭샤로 당신이 원하는 곳을 다 가주고, 내가 아는 멋진 곳도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계약은 어렵지 않게 성사됐다.

그 소년 운전기사와 사흘 내내 붙어 다니며 친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소년가장이었다. 이름이 `프랭키`라고 했다. 인도 관광안내인들은 본명이 아닌 영어 닉네임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만약 `여행`이 `일상`보다 가치우위의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뭘까? 뭐니 뭐니 잡다한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기자의 생각엔 새로운 바람의 냄새, 이제껏 보지 못한 바다의 빛깔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하자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주는 힘을 가졌다는 게 아닐지. 그런 이유로 여행은 일상보다 위대하다.

 

▲ `성스러운 도시` 함피로 가는 길에 만난 `세속의 사람들`
▲ `성스러운 도시` 함피로 가는 길에 만난 `세속의 사람들`

고아의 바다에서부터 멀고 먼 길을 달려 도착한 함피. 힌두와 이슬람 유적이 곳곳에 산재한 이 고도(古都)는 일상을 벗어난 기자에게 여행이 줄 수 있는 최고치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함피가 전해준 냄새와 빛깔 모두는 한국과 판이했고, 거기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허물없이 친구가 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다.

열여덟 운전사 프랭키, 치과의사가 될 스물두 살 독일 소녀 프란시, 50개국을 혼자서 떠돌았다는 열아홉 살 캐나다 청년,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지저분한 주점에서 낮부터 취해있던 술꾼들. 기자는 그들 모두와 새로운 냄새 그리고, 빛깔을 기꺼이 나누어가졌다. 술 혹는, 정(情)에 취해.

함피에서 오토 릭샤로 15분 거리에 있는 호스펫 말리기호텔에서 맞은 첫날 아침. 늦잠을 잤다. 흙먼지 가득한 울퉁불퉁한 길을 낡은 버스로 10시간 넘게 달려온 데다 밤에 도착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다.

프랭키가 바래다준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생애 가장 시원한 샤워를 했다.

 

▲ 인도를 여행하면 볼 수 있는 열대의 풍경. 조용하고 평화롭다.
▲ 인도를 여행하면 볼 수 있는 열대의 풍경. 조용하고 평화롭다.

콧속은 황토로 막혀있고, 목덜미 역시 붉은 색깔의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새까만 발가락과 손톱 밑에 낀 때는 또 어땠던가. 이것들을 말끔히 씻어내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샤워 후에 시원한 맥주 한잔이 없을 수 있나. 때에 절은 옷은 세탁서비스를 맡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 `웨이브`로 가서 닭 가슴살로 만든 스테이크와 인도산 맥주, 여기에 위스키까지 한잔 주문했다.

통후추를 듬뿍 뿌린 닭고기 스테이크가 입에 맞았다. 술을 곁들여 천천히 음미했다. 어두워진 호스펫 시내 풍경을 구경하다가 열다섯 살이 안 돼 보이는 레스토랑 막내 웨이터와 친구가 됐다. 그가 한 잔, 한 잔 서빙해주는 양주를 대략 한 병 쯤 마셨다.

외로운 여행자의 친구가 되어준 어린 웨이터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한국에서 가져간 소형 플래시를 선물해주고, 취한 채 방에 도착했을 땐 이미 자정이 훌쩍 넘어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눈알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러했으니, 늦잠의 이유는 충분했다.

 

▲ 함피 곳곳에 산재한 고대유적들 사이를 걸어가는 인도 수행자들.
▲ 함피 곳곳에 산재한 고대유적들 사이를 걸어가는 인도 수행자들.

그런데, 깨어난 아침. 잠시 당황했다. 어젯밤 프랭키와의 약속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뜬 후에는 엄청난 속도로 더워지니 일찌감치 아침 8시에 호텔 입구에서 만나 함피를 돌아보자는 프랭키의 제의에 “오케이”라 말했었는데, 벌써 9시 30분이 넘어있었던 것.

세수도 하지 않고 4층 방에서 로비까지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아, 미안하게도 기자를 보며 환하게 웃는 프랭키. 그는 약속에 늦은 손님을 기다려준 것이다. “미안하다. 어제 너무 마셔서 늦게 일어났다”고 하니, “괜찮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응수한다. 7시 30분에 와서 2시간 넘게 기다렸단다. 더 미안해졌다.

다시 방으로 올라와 대충 얼굴만 씻고 프랭키가 기다리는 호텔 입구로 부리나케 나갔다. 사과하는 뜻에서 호텔에서 아침을 사주겠다고 하니 한사코 사양했다. 호텔 레스토랑의 비싼 음식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 함피에서 만난 고대 석조건축물.
▲ 함피에서 만난 고대 석조건축물.

“그럼 일단 함피로 가자. 점심을 사겠다”란 말에 프랭키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오토 릭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얼마나 달렸을까.

“아…” 감탄사 없이는 형용조차 할 수 없는 함피의 거대한 유적군(群)과 현실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기묘한 바위 무더기가 눈앞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그 풍광에 `기절할 뻔` 했다.

보통 사람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삶을 마친 요절한 젊은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아래와 같은 노래를 불렀다. 우울하고 어둡고, 습한 목소리였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폐허다

부정하려해도 그 폐허가 나를 키웠음에 분명하다

내 폐허 위론 또 어떤 꽃이 피어날까.

 

▲ 인도에서 만난 노점상 할아버지. 그를 통해 기자의 조부와 외조부를 상상할 수 있었다.
▲ 인도에서 만난 노점상 할아버지. 그를 통해 기자의 조부와 외조부를 상상할 수 있었다.

노점상 할아버지, 건강하시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자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외할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두 분 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요절했기 때문이다. 그 이른 죽음의 이유를 기자는 잘 알지 못한다.

청년기를 보낸 일본에서 학교보다 기생집을 더 자주 출입했던 조부는 1944년 가을 아내와 다섯 자식을 거느리고 귀국해 몇 년을 못 살고 사망했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폭음을 했고 아침나절 피를 토하며 갔다고 한다.

외조부 역시 두주불사(斗酒不辭)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역시 40대 중반에 돌아가셨단다. 외조부의 성함은 김만두(金萬斗). 쌀이건 콩이건 1만 석을 수확하는 부농(富農)이 되라고 지은 이름 같은데 결국은 이름처럼 살아보지 못했다.

그들을 보지 못한 `조부 부재`의 결핍감 때문일까? 기자는 멋있게 나이 든 사내를 좋아한다. 낡은 흑백사진에서 본 할아버지 같기 때문이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코트를 챙겨 입거나, 흰색 두루마기를 폼나게 차려 입고 유유자적한 걸음을 걷는 노인들이 근사해보였다.

인도를 여행할 때다. 근사하게 늙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맘에 꼭 드는 할아버지 한 명을 만났다. 해발 2500m에 건설된 고산도시 우티(Ooty)에서였다. 그는 노점상이었다. 하루 종일 있어봐야 담배 두어 갑과 말린 약초 한 주먹이나 팔까싶은 조그만 길거리 가게. 그 도시에서 머문 3박4일 내내 거기서만 담배를 구입했다. 돌아가신 조부와 외조부가 떠올라서였다. 우티를 떠나던 날. 가게에 들러 담배 20갑을 한꺼번에 샀다. 손을 잡고 “앞으로도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했다. 순간 그 노인의 눈가에 맺히던 물기. 기자 역시 이상스럽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자의 할아버지 같았다. 해괴한 감정 전이였다. 만약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생존해있다면 그들에게 효도했을까? 내 삶의 방식을 다른 시대를 살아온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기억 밖에 존재하는 두 노인이 보고 싶다. 아니, 지금도 인도 땅 서남쪽 산간마을에서 담배와 약초를 팔고 있을 그 노인까지 합해 세 노인이 보고 싶다.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 늙는다는 것, 병들어 죽는다는 것의 비밀스러움을 기자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제삿날 조부와 외조부에게 한 것처럼 인도의 노인에게도 들리지 않는 인사만을 겨우 전할 뿐.

“어르신, 아픈 데는 없으시죠?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사진제공/송선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