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인도 ⑧

▲ 인도 북부지역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환경을 자랑한다. 어떤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함피에서 눈 뜬 세 번째 날. 어디선가 스멀스멀 익숙한 향기가 몰려온다. 이건 뭔가? 맞다. 밥 짓는 냄새다.

그랬다. 기억의 회로 저편 멀리에도 엄마가 “탕탕” 도마 두드리고, 조개에 구수한 된장 풀어 아침을 준비하던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건 애틋한 그리움의 영역이다.


집 떠난지 1년…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캐나다 청년과의 추억

아침을 제공하는 말리기호텔 레스토랑은 1층에 있는데, 4층 기자의 방까지 휘몰아쳐오는 쌀 익어가는 향기. 그것 때문에 잠을 깼다.

아직은 선선한 이국의 아침 바람을 맞으며 프랭키가 운전하는 오토릭샤에 올랐다. 겨우 통닭 한 마리 사준 걸 두고 “엄마가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라고 했다”며 웃는 프랭키. 덩달아 웃게 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함피를 둘러보며 만난 고대 유적.
▲ 함피를 둘러보며 만난 고대 유적.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비탈라사원(Vitthala Temple). 오늘 함피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모양이다.

입구엔 아주 당당하게 `인도인 10루피(200원), 외국인 250루피(5천원)`란 푯말이 우뚝 서있다. 그래, 이게 정당한 거다. 재벌의 100만원과 노동자의 100만원은 절대적 가치에 있어선 동일하나, 상대적 가치는 판이한 법. 가끔은 `바가지`를 쓰고도 웃어야할 때가 있는 법이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사원에 들어섰다. 찌는 듯한 날씨 탓에 기자 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혼자 두리번거리며 왕이 탔다는 거대한 석조마차와 두드리면 실로폰 소리가 난다는 신전(神殿)의 기둥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 백인 여자 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며 나타난다.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래요?”

“저도 혼자인데 잘 됐네요. 제 셔터도 한번 눌러주세요.”

이렇게 시작된 스물두 살 독일 소녀 프란시와의 대화는 그늘로 자리를 옮겨 제법 오래 계속됐다.

기자의 한국어판 `론리 플래닛`(가이드북)과 그녀의 독일어판 `론리 플래닛`을 펴놓고, “이거 똑 같네”라며 낄낄대다가, “너 어디 사냐?”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냐?”로 이어지던 대화 끝에 그녀가 치과대학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됐고, 여행을 좋아하던 오빠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 몇 마리의 소가 한적한 인도 시골길에서 여유롭게 어슬렁거리고 있다.
▲ 몇 마리의 소가 한적한 인도 시골길에서 여유롭게 어슬렁거리고 있다.

제 오빠가 살아있을 때 이집트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당신이랑 닮았다”고 한다. 우뚝한 코에 짙은 눈썹, 거기에 꿈꾸는 녹색 눈동자까지 프란시의 오빠는 전형적인 게르만 사내였다.

대체 백인과 황인이 어디가 닮았다는 건지. 그러나,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두 달 전 독일을 출발해 인도를 거쳐, 태국과 베트남까지 6개월쯤 여행할 것이라는 프란시에게 차가운 생수 하나를 사주며 “저녁을 함께 먹자”고 제의하니, 망설임 없이 좋단다. 저녁에 숙소 앞으로 데리러간다는 약속을 했다.

그녀를 보내고 프랭키가 안내하는 유적과 박물관, 호수 등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점심 먹을 때가 됐다. 프랭키와 그의 친구 서너 명을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 역시 혼자 하는 식사보단 `어울리는 밥상`이 좋고, 얻어먹는 밥보단 사는 밥이 훨씬 맛있다.

 

▲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과 찍히는 걸 다 좋아한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인도인들.
▲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과 찍히는 걸 다 좋아한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인도인들.

점심을 먹은 후 프랭키는 집에 가서 쉬라고 돌려보낸 후 함피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망고트리`에 갔다. 바나나나무가 가득한 숲 한가운데 위치한 카페였다.

망고트리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차가운 음료수를 주문하고 그물침대에 누워 한국에서 가지고간 이성복 시집을 뒤적거렸다. 이렇듯 `즐거운 독서`가 얼마만인가. 명민했던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죽기 전 몇 년 동안 쓴 일기를 묶은 책 제목은 `행복한 책읽기`였다.

`행복한 책읽기`를 하다 뒤를 돌아보니 눈동자가 사파이어처럼 새파란 어린 친구 하나가 혼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다. 시선이 마주쳐 미소를 보냈더니, 저도 “하이!”라며 씩 웃는다.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아무 것도 없기에 “날 더운데 뭘 좀 마셔”라고 권하며 콜라와 싸구려 샌드위치를 사줬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는 캐나다에서 온 열아홉 청년이었다. 집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넘었고, 언제 돌아갈지는 자기도 모른단다. 게다가, 이런 정처 없는 장기여행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한국이라면 고등학교 3학년쯤 되는 나이. 이처럼 스케일 큰 여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어떤 한국 부모가 입시를 앞둔 자녀에게 무한정의 자유를 허락하겠는가. 그래서, 물었다.

 

▲ 비탈라사원에는 왕이 탔다는 오래된 석조마차가 있다.
▲ 비탈라사원에는 왕이 탔다는 오래된 석조마차가 있다.

“너희 부모는 네가 사는 방식에 관해 아무 말 안 하니?”

“아버지와 엄마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건 내 삶이잖아요”라는 똑 부러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껏 그 열아홉 청년이 여행한 곳은 대략 50여 개 나라. 지구 위에 존재하는 국가의 25%에 육박하는 숫자다.

믿기지 않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겨우 열아홉임에도 삶에 대해 한없이 `열려있는 태도`를 가진 아이였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열아홉 청춘들의 삶이 불쌍해졌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의 암기에만 목을 매달아야 하는 그들은 자신의 삶을 자유의지로 다스려가는 이 캐나다 청년이 얼마나 부러울까.

세상의 모든 곳을 돌아본다고,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보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확률은 훨씬 높다. 많지 않은 나이에 제 삶의 방식과 지향을 스스로 선택해 의연히 그 길을 걸어가는 모습. 참으로 근사했다.

그 옛날, 타히티를 찾아낸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 제독이 그랬던 것처럼 해도(海圖) 없는 바다를 향해 용감하게 닻을 올린 열아홉 캐나다 청년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앞으로도 네 영혼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라”고 격려해주고 싶었다.

시원찮은 영어로 손짓과 발짓을 섞어 그와 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프란시와 약속한 저녁 데이트에 가야할 시간이었다.

▲ 인도 아이들의 눈은 커다랗고, 눈동자는 맑다. 기자는 그게 부러웠다.
▲ 인도 아이들의 눈은 커다랗고, 눈동자는 맑다. 기자는 그게 부러웠다.
인도 아기들의 커다란 눈을 보면…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결핍되거나 결락돼 있는 것을 부러워한다. 그건 인지상정이다.

조금은 천박한 표현일 수 있지만, 돈을 가지지 못한 자는 부자를 부러워하고, 여행을 하고 싶지만 여러 여건 때문에 다녀보지 못한 이는 여행자를 동경한다. 또,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서로가 궁금해 하고 다른 성(性)으로 살아보고 싶어 한다.

기자의 경우엔 뭐가 결핍돼 있을까? 어떤 결락이 빈 가슴을 더욱 춥고 쓸쓸하게 하는가.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 전 일찌감치 폐기처분한 순수와 무구함.

살아갈수록 세상사 때가 더 진하게 묻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시간들. 그걸 생각하면 아득해지고 그럴 때면 아이들이 순정한 눈동자를 보며 위로를 얻는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눈빛은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기들의 눈 속엔 티끌 한 점으로 시작된 인류의 시원(始原)이 보인다. 윤대녕의 소설 한 대목을 빌리자면 “존재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몸짓”이 읽힌다. 해서 기자는 아이들이 부럽다. 1개월의 인도여행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뭄바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소녀와 바지를 사러 들어간 함피 옷가게 주인의 두 딸, 제 아버지와 기자가 이야기하는 잠시잠깐을 참지 못해 칭얼대던 귀여운 남매까지.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내내 부끄러웠다.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라며 지나온 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기자는 그렇지 못했다. 자꾸만 잘못 살아온 것 같아 편치 않은 마음이 울렁거렸다.

모두가 조카들처럼 예쁜 그 아기들을 부둥켜 안아주고 싶었다. 그처럼 순정한 포옹 속에서 기자의 오만과 선입견, 자만과 탁한 욕망을 털어내고 싶었다. 세상 어느 `어른`도 가지지 못한 순진과 무구 그리고, 순수함을 지니고도 결코 거들먹거리지 않는 아기들의 겸양. 비록 그게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아기들의 눈망울은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다. 다시 한 번 인도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 아이들의 눈동자와 만난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다짐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기 힘들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송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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