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인도 ⑩

▲ 인도에는 타지마할을 비롯한 아름다운 건축물이 흔하다. 그것들은 정교함과 미려함으로 여행자를 사로잡는다.
▲ 인도에는 타지마할을 비롯한 아름다운 건축물이 흔하다. 그것들은 정교함과 미려함으로 여행자를 사로잡는다.

뱅갈로르로 가는 차는 속도를 높이며 밤길을 달렸다. 야간 여행자를 위한 좌석인 `슬리퍼 시트`인지라 목과 등도 편안하다. 에어컨 역시 속된 말로 빵빵하다. 다만, 하나 거슬리는 게 있다면 뒷좌석에 앉은 이탈리아 여자-인도 남자 커플.

잘생긴 외모의 릭샤왈라가 소개한
영국 지배 역사가 보이는 城과의 만남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차에 타자마자 시작된 그들의 소곤거리는 밀어(蜜語)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영어발음은 왜 그렇게 딱딱 끊어지며 잠을 청하는 기자의 귀를 괴롭히던지. 그러나, 어쩔 것인가. 사랑에 빠진 이들은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너나없이 누구나 그런 청춘의 시절을 겪고 성장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속삭임 탓에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두어 시간을 정신없이 버스에서 잤던 걸까. 눈을 뜨니 사위가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뱅갈로르가 멀지 않았는지 저 멀리 직각으로 깎아 세운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 듯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10분쯤 달린 버스는 도로변에 멈춰 섰고, 승객들이 저마다의 짐을 챙겨 내리기 시작한다. “여기가 뱅갈로르 맞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 인도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바로 오토릭샤다.
▲ 인도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바로 오토릭샤다.

오토릭샤 몇 대가 정차한 버스 옆에 대기해있고, 릭샤왈라들은 호객에 여념이 없다. 어젯밤 차 안에서 펼쳐본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24시간 체크아웃`이 가능한 `제국호텔`(Empire Hotel)이 괜찮단다. 썩 마음에 드는 이름은 아니지만, 어차피 기자가 식민통치를 당연시하는 `왕정복고주의자`도 아니고, 호텔 명칭 따위가 무슨 문제가 될까.

다른 이들과 달리 손님을 모으는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릭샤왈라 한 사람에게 제국호텔을 아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간명하고 시원스럽다.

“안다. 타라.”

그런데, 이 릭샤왈라. 너무 잘 생겼다. 키가 족히 190cm는 넘어 보이고, 자연스런 웨이브의 머리칼이 만화책에 등장하는 미소년의 그것처럼 찰랑거린다.

지금 당장 매력적인 영국첩보원 `007 제임스` 본드 역할로 캐스팅돼도 전혀 꿀리지 않을 영화배우급 외모다.

 

▲ 인도인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하다. 그렇기에 미남과 미녀도 많다.
▲ 인도인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하다. 그렇기에 미남과 미녀도 많다.

“당신, 너무 잘 생겼네요”라는 칭찬에 그가 운전하다 말고 기자를 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이것 봐라, 웃음도 백만 달러짜리다.

잠시 달리더니 그 미남 릭샤왈라가 “여기서 사진 한 장 찍는 게 어때요?”라고 권한다. 그가 정차한 곳엔 유럽풍의 근사한 성(城)이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다. 한 가운데 선명하게 펄럭이는 인도 국기가 아니라면, 영국 왕족들이 주말을 보낸다는 `윈저궁`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멋들어진 건축물이다.

숙소로 정한 제국호텔에, 윈저궁을 벤치마킹한 듯한 성까지...

아, 맞다. 뱅갈로르를 포함해 인도는 오랫동안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식민지풍의 건물과 왕조시대의 향수를 부르는 호텔 이름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제3세계에 끼친 악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기자의 심사가 복잡해졌다.

 

▲ 고요한 인도의 한낮.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인도 여인의 모습이 평화롭다.
▲ 고요한 인도의 한낮.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인도 여인의 모습이 평화롭다.

십자가와 성병(性病)을 앞세운 유럽인들의 침탈에 학살당하는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 벽안(碧眼)의 이방인들에 대항해 제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피 흘린 지도자들인 호치민과 호세 리잘, 아우구스토 산디노 등의 이름이 연이어 떠올랐다.

“왜 나는 세상사를 편하게 보고 해석하지 못 할까”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허나, 오래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 고민은 한국에 돌아가서 해도 충분하니까. `인도에선 인도의 오늘을 즐기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잠시잠깐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핸섬한 릭샤 기사는 “이제 가자”며 길을 재촉했다.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제국호텔은 비교적 쾌적했다. 뱅갈로르 중심가가 가까웠기에 환전을 하기에도 좋았고, 근처엔 괜찮은 식당도 여럿 눈에 띄었다. 거기다 직원들도 격식을 갖춰 손님을 대한다. 체크인을 하고 잠시 들러 맛본 1층 카페의 우유 섞은 홍차 맛도 일품이다.

오늘 밤엔 한적한 시골마을인 함피와는 전혀 다른 이곳에서 네온사인 빛나는 나이트클럽에나 가볼까?

하지만, 계획은 금방 변경됐다. 일단 냉면을 판다는 한국식당을 찾아보기로 한 것. 2주 이상 한국음식을 먹지 못한 터라 시원한 냉면이 너무나 간절했다.

스스로 미식가라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기자는 맛없는 음식을 못 견딘다. 인간의 즐거움 속엔 먹는 기쁨이 분명 포함돼 있고, 그 포함의 영역이 꽤 넓다고 믿는 편이다. 해서, 맛있다는 음식점은 거리에 상관하지 않고 찾아다녔고, 맛만 있다면 가격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하는 인도의 시골마을 풍광.
▲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하는 인도의 시골마을 풍광.

그렇다고, 캐비아(소금에 절인 철갑상어 알), 트뤼프(송로버섯) 따위의 귀하고 비싼 희귀식품에만 열광하는 건 아니다. 그걸 자주 즐길만한 돈도 없을 뿐더러. 그저 적절한 가격에 성의를 다해 차려내는 음식점을 만나면 하루가 즐거웠을 뿐.

어쨌건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은 다르기 마련인데, 기자의 경우엔 된장찌개와 냉면을 가장 맛있어하고 즐긴다. 그런데, 뱅갈로르에 바로 그 `냉면`을 하는 식당이 있단다. 물론, 한국 사람이 주인일 것이다.

오뉴월 염천에 차게 식힌 고깃국과 동치미 국물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육수를 한 모금 마신 후, 고무줄처럼 질긴 함흥냉면이 아닌 슴벅슴벅 씹히는 평양냉면 대여섯 가닥을 입 속으로 밀어 넣는 느낌. 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고였다.

샤워를 한 후 제국호텔을 나서 일단 환전을 하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한국식당의 위치를 수소문했다. 인도에서 맛볼 평양냉면을 기대하며.

몸에 딱 붙는 청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들과 양복을 차려입은 샐러리맨이 보이는 걸 보니, 여긴 분명 `시골`이 아닌 `도시`다. 어제까지 머물던 함피와 오늘 도착한 뱅갈로르는 분명 달랐다.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베나울림 <br /><br /> 해변의 저물녘 풍경.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베나울림 해변의 저물녘 풍경.
잊을 수 없는 베나울림의 석양

고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희곡작가를 꿈꾸던 사촌형의 집에서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1898~1971)의 매혹적인 산문집 `섬`을 발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가 극찬한 책.

무작정 `바다`를 좋아하던 기자는 바다와 잘 어울리는 단어인 `섬`이란 제목에 매료됐고, 코앞으로 다가온 학력고사와는 관계없이 밤을 새워 그걸 읽었다. 아주 열심히. 시인이 되고 싶었던 소년에게 `성문종합영어`와 `해법수학`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섬`에서 발견한 그리 길지 않은 문장 서너 대목은 30년의 세월을 넘어 아직도 기자의 심장 깊숙한 곳에 우뚝한 돋을새김으로 남아있다. 르네 데카르트의 진술을 인용한 부분이다.

“나는 안개 낀 새벽녘 낯선 항구에 도착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비밀을 서랍을 지닌 채 가난하고 겸허하게 살고 싶었다.”

인도에 도착해 첫 번째로 머물렀던 칼랑구트 해변을 떠나 조그만 소읍 마르가오를 거쳐, 허위허위 베나울림 해변에 도착해 콜라 한 병으로 섭씨 40도의 더위를 식히던 때는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조악한 문장으론 그 아름다움을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아라비아해의 석양. 해넘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와 그 파도를 몰고 오는 저 먼 바다는 물론, 세상 전체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사나이라 믿어왔던 오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찔끔` 눈가가 시큰해져왔다.

그 감정 과잉의 상태가 고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이어진 기억의 연상작용은 장 그르니에 산문집 `섬`과 비밀과 겸허함에 관한 데카르트의 문장을 머릿속에서 복원시키고 있었다. 어디선가 낡은 도트 프린터 소리가 들려왔다.

“촤르륵 촤르륵...”

사위어가는 태양의 잔광은 눈처럼 흰 수염을 기른 노인과 그의 손자, 손을 맞잡은 연인과 그 바다에서 간난신고의 생을 이어가는 어부, 거기에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소에게까지 공평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장엄한 풍광을 견딜만한 용량이 아닌 기자의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 정말이지 여기 잘 왔구나”라는 혼잣말을 하며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 서 있었던 게 기억난다. 손에 든 콜라병이 파도와 함께 왈츠의 박자로 춤추고 있었다. 아직도 그 저녁, 베나울림의 석양을 잊지 못한다.

사진제공/송선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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