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퀴블러 로스는 미국의 유명한 여의사다. 그는 인간이 죽음을 앞둔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심리 상태를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순응이라는 5단계로 설명하여 유명해 졌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인간이 살아가다가 부딪치는 `충격적인 사태` 앞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상태에도 적용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라는 최악의 위기 앞에서의 심리 상태는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특히 `탄핵`과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과 시민들의 분노 앞에서 반응은 어떠할까. 대통령의 3차례의 대국민 담화를 중심으로 대통령의 심리적 태도 변화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처음에는 이를 적극 부정하는 1단계의 반응을 보였다. 지난 10월 26일 1차 담화에서 대통령은 최순실은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으로 청와대 비서진이 완비되기 전 홍보를 위해 잠시 도와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최순실의 국정 논단을 그럴 일이 없다고 적극 부인했던 것이다. 그 후 대통령은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비판적인 언론과 정치권에 대해 분노하는 2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특히 이 단계에서는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을 공격하는 당내의 비박계의 변신에 더욱 격노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1차 담화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퇴진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광화문 광장의 100만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폭발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하는데 이를 3단계인 타협의 단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11월 4일 2차 담화문으로 표출되었다. 대통령은 최순실에 대해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점`을 사과하고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음`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은 밤잠까지 이루기 힘들다고 자백하며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라는 자괴감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사태의 책임 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국정 혼란과 공백상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것이 타협안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통령은 스스로 퇴진보다는 심기일전하여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돌아선 민심은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대통령은 더욱 불안하고 우울한 4단계에 이르게 된다. 새누리의원과 경기지사의 탈당, 법무부 장관과 민정 수석의 사표, 새누리당의 양분은 대통령의 심기를 더욱 불안하고 우울한 상태로 내 몰았다. 190만의 광화문의 촛불 민심과 비박의 탄핵지지 선언은 대통령을 더욱 불편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11월 29일 3차 담화를 발표하게 된다. 대통령은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국회의 합의`라는 조건을 붙여 `임기 단축`이라는 카드를 선언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희망찬 장래를 위해 정치권의 지혜가 모아지면 거기에 따라 진퇴(進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3차 담화 역시 여야 정치권의 분란만 조장하고, 촛불 민심의 안정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12월 3일 232만명(주최측 추산)의 성난 촛불 민심은 이를 반증한다.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의 이번 사태의 수용 방식이다. 퀴불러 로스는 마지막 수용 단계를 `준비된 순응단계`로 규정하였다. 야 3당은 이미 12월 9일을 탄핵일로 선언하고, 비박은 7일까지 대통령의 하야 일정을 밝힐 것을 통첩한 상태이다. 박영수·윤석열 특검은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수용하면서 극복할 것인가. 여야의 정치적 대타협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인가. 대통령은 이러한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치적 위기 앞에서 대통령의 어떤 결단이 그의 최소한의 명예라도 지키는 일일까. 이번 주말이 탄핵과 하야의 최고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이 단계에서 대통령의 4차 담화를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