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인도 ⑫

▲ 인도 북부 한적한 마을의 매력적인 풍경. 하늘이 보석처럼 파랗다.
▲ 인도 북부 한적한 마을의 매력적인 풍경. 하늘이 보석처럼 파랗다.

뱅갈로르 시외버스터미널은 복잡하고 컸다. 풍채가 경찰청장급인 잘생긴 제복의 사내에게 `인도의 알프스`로 불리는 우티(Ooty)행 버스티켓을 파는 곳과 출발 장소를 물었다. 대나무 막대기를 든 그가 점잖게 고갯짓으로 기자의 의문에 답해준다. 그 폼 역시 의젓하기가 청장급이다. “곧 승진하길 빌게요”라는 농담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다행히 매표소는 멀지 않았다.

우티까지의 소요시간을 물으니 “10시간 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또 그 긴 시간을 낡은 버스에서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도는 넓고도 크다.

뱅갈로르를 출발한 버스가 털털거리며 우티를 향했다. 대여섯 시간을 달리니 높다란 산길로 접어든 것인지 눈에 띄는 나무부터가 흔해빠진 인도 야자수가 아닌 끝이 뾰족한 침엽수다. 침엽수는 추운 지방에서 자란다.

선득선득한 기운이 느껴지는 풍경.

섭씨 40도를 넘는 인도의 불볕더위를 열흘 이상 경험한 터라 갑자기 닥쳐온 추위가 싫지 않았다. 한국에선 정말 싫어한 게 찬바람이었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처럼 조변석개(朝變夕改)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까?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휴게소에 도착한 것인지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다.

덩달아 하차해 인도 담배 골드 프레이크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조도가 낮은 형광등 불빛만이 두어 개 덩그러니 켜져 있는 황량한 휴게소. 뭘 먹을 생각도 별로 없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저만치서 귀엽게 생긴 꼬마 남매가 걸어온다. 오빠는 열 살쯤, 여동생은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목판에 끈을 묶어 목에 건 오빠가 “담배를 사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목판엔 인도에서 생산되는 몇 종류의 담배와 초콜릿 따위가 담겨 있다. 그걸 왜 사지 않겠는가.

 

▲ 뱅갈로르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노인. 승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 뱅갈로르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노인. 승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5갑만 다오”라고 말하니, 눈이 동그래진다. 반갑다는 것이겠지. 웃으며 달라는 대로 값을 지불하니, 키가 기자의 배꼽에도 이르지 못하는 여동생이 무거워 보이는 보온병을 들고 와 “짜이(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섞은 음료)도 드세요”라고 권한다. 그것 또한 왜 마시지 않겠는가. 오빠에게처럼 “5잔만 다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혼자선 그만큼을 마실 수가 없다. 대신 가격을 물어보지 않고 100루피(약 2천원)를 줬다. 그 푼돈을 꼭 쥐고는 저 멀리 뒤편에 선 엄마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아이. 꼬마숙녀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기자의 마음도 환해졌다.

둘을 끌어안고 사진을 찍고는 “여기 사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지 기자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남은 생에서 다시 이곳을 찾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여기`로 돌아와 이 아이들이 건강하고, 착하게 커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열망만은 감출 수 없었다.

기자와 남매가 이야기 나누는 걸 지켜보던 백인 할아버지 하나가 “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자기는 호주에서 10년 전에 인도로 왔단다. 그리고, 열 몇 살이 적은 인도여자를 만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10시간 비행기 타고 저 멀리 한국에서 왔습니다.”

“어디로 가냐? 우티냐?”

“네. 거기로 갑니다.”

“어디 묵을 거냐?”

“가서 알아보면 되겠지요. 설마 나 하나 잘 곳 없겠습니까.”

“너, 재밌는 청년이다. 연락처 적어줄 테니, 내일 밥 먹자.”

은자(隱者)들에게 어울리는 도시. 우티에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지어진 알록달록한 예쁜 집들, 거기에 차갑고 코끝 매운 공기. 뿐이랴, 사는 곳이 달라 기질도 다른 것인지 더운 지방 사람들처럼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 호객을 하지도 않는다. 사람을 못 본 채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가끔은 고마운 일이다. 인도에서라면.

기자에게 호의를 보인 호주 영감님이 “가는 길이니 함께 타자”고 오토릭샤를 잡으며 권한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곤 옆자리에 앉았다. 5분 정도 달리니 호텔과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한 지역이 나타났다. 영감님이 손가락으로 오른쪽 오르막을 가리키며 “저기가 괜찮은 호텔”이란다.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내일 전화 드린다며 작별을 고했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어깨를 움츠리며 숙소로 향했다.

 

▲ 국민 대다수가 힌두교도와 무슬림인 인도. 교회를 보기는 쉽지 않다.
▲ 국민 대다수가 힌두교도와 무슬림인 인도. 교회를 보기는 쉽지 않다.

길게 흥정할 것도 없었다. 더운 물이 나오는 싱글룸 800루피. “지금은 우티의 최고 성수기”라며 할인은 안 된단다. 다른데 가봐야 형편은 비슷할 것이란 부연설명까지 덧붙인다.

“그럽시다. 밥을 안 먹었는데, 아직 식당이 영업을 하나요”라고 물으니, 한단다. 잘 됐다.

마음 같아서는 뜨끈한 짬뽕국물에 소주 한잔이 간절한데, 여기는 만리타향 인도.

그냥 뜨거운 물에 미지근한 볶음밥을 먹으며, 추운 몸도 녹일 겸 위스키를 두어 잔 마셨다.

방으로 올라와 창문을 열었다.

맵싸한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간다. 그 차갑기가 한국의 11월 날씨 같다.

`아, 이래서 영국 사람들이 여기를 여름 별장도시로 만든 거구나`라는 깨달음이 새삼스러웠다. 호텔이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저 멀리 우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깜빡이는 작은 불빛 몇 개를 제외하면 캄캄절벽 같은 어둠이다.

농밀하고 너무나 명백한. 하지만, 그 색채가 검은색이라기보다는 푸르스름한 빛깔에 가깝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 은둔자가 된 시인 기형도(1960~1989)가 그랬던가. “밤은 검지 않고 푸르다”고. 그런 밤이었으니 `센티멘털`과는 거리가 먼 둔감한 기자도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상점에 가서 맥주라도 몇 병 더 사올까?

▲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도의 기차역.
▲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도의 기차역.
한 두시간 연착은 예사… 검은 매연 내뿜는 낡은 버스… `인도의 교통수단`

KTX를 타면 수도 서울에서 항구도시 부산까지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한국. 나라가 좁기도 하지만, 최첨단을 달리는 교통수단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편한 이동`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인도에선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기차나 잘 깔린 아스팔트 위를 고속으로 질주하는 안락한 버스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낡고 느린 기차의 식당칸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느긋하게 맥주 한잔 마시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려보는 것은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이다.

▲시시때때로 연착하는 기차

`기다림`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인도에서의 기차여행이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1~2시간 연착은 예사고, 어떤 경우엔 예정보다 10시간 이상 늦게 도착하는 기차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서인지 `연착하는 기차` 때문에 화를 내는 인도사람은 거의 없다. 10분만 늦어도 발을 동동 구르는 성질 급한 한국인들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차는 느리고, 나라는 넓기에 40~50시간 이상을 기차로 여행하는 경우도 흔하다. 때문에 인도 기차의 거의 대부분은 침대칸을 갖추고 있다.

 

▲ 인도 지방 소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낡은 버스.
▲ 인도 지방 소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낡은 버스.

▲ 매연을 뿜어내는 낡은 버스

“저런 버스가 아직 폐차되지 않았다니…” 인도에 처음 도착하는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혼잣말을 하게 된다.

낡은 엔진 탓에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것은 물론, 좌석의 고정장치가 망가져 휘청대기 십상인 인도의 시골마을 버스들.

어떤 버스는 아예 창문조차 없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가끔은 좌석 아래로 닭이나 오리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인도에서 버스를 탈 때는 마음을 비우고 `편안한 승차감`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게 좋다. 버스에서 만나는 인도 꼬마들의 환한 웃음이 그나마 여행자를 위로한다.

▲ 국내선 비행기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도의 기차나 버스에 비한다면 비행기는 고가의 교통수단이다.

한국의 항공료와 비교해도 결코 싸지 않은 인도의 비행기 요금. 하지만, 일정을 짧게 계획하고 온 관광객이라면 장거리 이동은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델리, 뭄바이, 콜카타 등의 대도시에서는 국제선은 물론, 인도 국내선 비행기도 운항한다. 한국처럼 환한 미소로 반겨주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은 없지만,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여행자들에겐 반가운 교통수단이다.

사진제공/송선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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