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전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한 때 인기가 대단했다. 대선 출마에 관한 공식적인 언급이 없어도 단연 지지율 1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지난 12일 귀국한 반기문의 지지도는 예상과 달리 겨우 20% 전후에 머무르고 있다. 문재인 후보와의 격차는 오차 범위를 벗어나 있다. 대선 후보의 다자 구도뿐 아니라 심지어 문재인과의 양자구도에서도 2위에 멈추고 있다. 혹자는 2012년 대선 전의`안철수 현상`을 반복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당시 정치권 밖의 안철수가 정치권 현실에 진입 이후 그 거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기문의 반등이 언제 시작될지 그 예측은 현재로서는 어렵다.

선거의 승리는 결국 구도, 이슈, 조직과 지지층 확보가 필수적 요건이다. 반기문은 현재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여야 양당이 아닌 다당제 대선 구도 하에서 그는 매우 불리한 입장에 서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돌발변수가 없었으면 그는 무난히 여당 후보라는 꽃가마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국회의 탄핵 후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두 동강 나 버렸다. 촛불 민심은 이 나라 정치의 `혁명적 수준`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반기문은 아직도 기댈 언덕인 정당마저 선택치 못하고 있다.

대선 승리를 위해 후보는 어차피 선거의 정책 이슈를 먼저 장악해야 한다. 반기문은 화려한 경력에 비해 아직 정책이나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 공항에서 `정치 교체`라는 메시지는 전달했지만 그것이 유권자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고 있다. 그의 의도는 정권 교체보다는 정치를 근본적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 교체`나 `정권 교체`나 사실상 말장난에 불과하고 엇비슷하다. 반기문은 그의 정치 교체의 메시지를 정책 발표를 통해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입장만 밝혔다. 이 경우 진보층과 보수층 동시 견인의 의도가 있지만 양쪽으로부터 모두 배척당할 가능성도 있다. 종전의 대선처럼 이념전선이 분명한 이 나라 정치판에는 더욱 그러하다. 늦게 출발한 반기문이 민생탐방을 위해 동분서주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부터 뚜렷이 해야 이슈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에서 조직과 열성적인 지지층 확보는 정책보다 중요하다. 반기문은 구정이후 정당을 창당하지 않고 기존 정당에 가입할 뜻을 비쳤다. 그는 며칠 전`돈이 없어 정당에 들어가야겠다`고 밝혔다. 솔직하지만 아마추어적 그의 고백이다. 그는 새누리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의석은 많지만 개혁을 주장하지만 탄핵 정국의 원죄에서 탈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바른정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그가 새누리당과 합당하지 않으면 광범위한 보수층의 지지는 획득하기 어렵다. 그의 국민의당 입당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정치 행보와 호남 기반의 야당인 국민의당과는 정체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여권 인사, 외교관, 이명박측 인사로 구성된 그의 참모만으로 열성적인 보수층 지지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역동적인 한국의 정치판은 반기문의 지지를 반등시킬지 모른다. 그것이 반기문 중심의 정치적 돌발 변수이다. 그가 바른정당에 가입하여 여당의 통합을 통해 단일 후보로 옹립되는 경우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나아가 그가 국민의당과의 공동 경선을 통해 단일 후보로 확정된다면 그의 지지율은 급격히 회복될 전망이다. 이때는 전통 보수층의 회귀는 물론 표심을 숨기고 있는 `샤이 박근혜 표심`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반기문의 특정 정당 선택에 따른 정치적 빅뱅은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반기문의 제3지대 빅 텐트 설치에는 후보 간의 `정치적 타협`이라는 넘기 힘든 난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현재로서는 과거의 3~5% 차이라는 대선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