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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는 여전히 `죽음`과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등록일 2017-02-09   게재일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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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길 위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①

   
▲ 보스니아에는 이슬람교도가 많다. 도시 곳곳에서 이슬람 예배당인 모스크(Mosque)를 볼 수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면교사 해야 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죄 없는 수백만 명의 사람을 죽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캄보디아의 폴 포트(1928~1998)와 함께 아래 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이들은 자신이 도대체 무슨 악행을 저지른 것인지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
라도반 카라지치(1945~)
라트코 믈라디치(1942~)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새벽 거리는 괴괴하리만큼 조용했다. 크로아티아의 해변도시 스플리트에서 밤늦게 출발하는 국제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도시.

198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며, 폐병을 앓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1895~1918)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라틴 다리(橋)`가 있는 도시. 거기에 크지 않은 공간에 세르비아정교회 성당과 이슬람교 성당인 모스크, 가톨릭 교회까지가 각기 다른 신을 향해 첨탑을 올린 풍경들.

외국인 여행자가 거의 없는 국제버스터미널에서 기자를 시내로 데려다줄 트램(노면전차)의 승차장을 찾아 걸었다. 트램은 보스니아만이 아닌 동유럽 여러 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생소한 공간이니만치 길 찾기가 쉽지 않았고, 그 덕에 제법 걷고 나서야 트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전이 끝난 지 20년이 가까워오는데, 도심 건물들은 아직도 흉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사라예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까지도 그랬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건물들이 쥐 파먹은 모양으로 흉측스러웠던 건 `비극적 역사`가 벌어질 당시의 총탄 자국 때문이란 걸.

보스니아 사람들의 가슴에 상흔(傷痕)이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탄흔(彈痕) 역시 여전했다. 한두 건물이 아니라, 그 도시 대부분의 건물이 그랬다. 때론 세월이 상처의 흔적을 숨겨줄 수도 있지만, 영혼에 입은 상처는 시간만으론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다.

  ▲ 보스니아의 역사적 비극을 상징하는 듯 슬픈 느낌을 주는 조각상.  
▲ 보스니아의 역사적 비극을 상징하는 듯 슬픈 느낌을 주는 조각상.
▲ 술을 팔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독특한 구역`

시내 한복판으로 짐작되는 곳에 내려 숙소를 찾았다. 이른 아침인지라 구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아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양고기와 노란색 향신료를 사용한 볶음밥. 메뉴에 돼지고기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무슬림 식당이다.

알다시피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돼지고와 술을 먹지 않는다. 이슬람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알게 되는 사실이다. `신성 무슬림 국가`를 지향하는 이란의 이스파한(Isfahan)을 여행할 때 만난 그곳 청년들은 기자가 “한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곧잘 먹는다”고 하자,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표정을 만들어내며 몸서리를 쳤다. 종교와 지역이 다르면 음식문화도 판이한 것이다.

  ▲ 무슬림 구역과 달리 사라예보 가톨릭 구역에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무슬림 구역과 달리 사라예보 가톨릭 구역에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식사를 마친 후 다행히 저렴한 가격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밤새 버스에서 시달린 여독을 풀고 편하게 한숨 자려고 맥주 한 병을 청했다. 꼭 술집을 겸하지 않더라도 유럽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맥주와 간단한 음료 정도는 판매한다. 그런데 맥주가 없단다. “가톨릭 구역으로 가야 살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스니아에서 생산되는 맥주 `사라예보스코`. 쓴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돼 풍미가 좋은 술이다. 그러나, 사라예보의 무슬림(Muslim·이슬람교도) 구역에선 맛보기가 어렵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사라예보에는 지금도 무슬림 구역과 가톨릭 구역이 존재한다. 무슬림 구역의 식당과 숙소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심지어 슈퍼마켓에서도 그렇다. 술이 없는 슈퍼마켓이라니….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술을 구할 수 있는 한국인의 상식에선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다.

반면, 몇 블록을 건너가면 곳곳이 노천카페이고, 길가에 앉아 `사라예보스코`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는 청년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슈퍼마켓엔 맥주는 물론, 보드카와 위스키, 그리스 전통주인 우조(ouzo)까지 없는 술이 없다. 이건 가톨릭 구역 이야기다. 2개의 구역으로 나뉜 하나의 도시. 기자가 보기에 사라예보는 참으로 기묘한 도시였다.

  ▲ 사라예보를 둘러싼 야트막한 산은 학살당한 사람들의 공동묘지로 조성돼 있다.  
▲ 사라예보를 둘러싼 야트막한 산은 학살당한 사람들의 공동묘지로 조성돼 있다.
▲ 생각보다 작고 초라한 `라틴 다리`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지형의 사라예보. 그 산마다 온통 하얀 색 비석이 가득하다.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때 대충 듣기는 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는 시기까지 보스니아 전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량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게 실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전쟁과 혁명을 몸으로 겪어보지 못한 한국의 1970년대 생. 기자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책이나 영화로 대리체험을 했을 뿐이지 총살과 고문, 일방적인 구타와 저항할 수 없는 모욕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서 기자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이런 결론에 가 닿은 이유는 다음 회 여행기에서 설명하려 한다.

  ▲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점화된 사라예보의 `라틴 다리`.  
▲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점화된 사라예보의 `라틴 다리`.

달콤한 잠으로 여독을 푼 후 숙소를 나와 `라틴 다리`부터 찾았다.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황태자에게 총을 쏜 장소가 궁금했다.

민족과 조국이란 단어는 청춘들의 피를 뜨겁게 한다. 그렇기에 과도한 민족주의에 경도됐을망정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의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청년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문장에 매혹되기 쉽다. 자신과 부모, 이웃을 괴롭히는 자들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그 열망 속에서 제 나라를 핍박하던 이국(異國)의 통치자를 죽이고, 스스로도 죽었다. 그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역사책을 찾아보면 된다.

그런데, 기자의 생각과는 달리 `역사의 현장`인 라틴 다리는 너무나도 작았다. 한국 시골 마을 도랑에 만들어진 교량 수준의 크기였다. “여기로 거대 제국의 황태자가 탄 차량과 뒤를 따른 보좌행렬이 지나갈 수 있었을까”라는 혼잣말이 나올 정도. 그 다리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점화됐다는 사실은 입구에 있는 낡은 표지판만이 증언하고 있을 뿐이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한때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발칸반도에 위치한 나라다.

공식 명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Hercegovina)이고 수도는 사라예보(Sarajevo). 북부 보스니아와 남부 헤르체고비나로 나눠져 있다. 보스니아는 보스나 강(江)에 인접했다는 것에서, 헤르체고비나는 옛날 이 지역 통치자의 별칭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언어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공용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한다. 면적은 5만1천197㎢, GDP는 2016년 기준 165억 달러로 세계 112위 수준이다. 사용되는 화폐의 단위는 마르카(marka). 평균수명은 약 78세다.

무슬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등이 함께 살고 있다. 국민의 45%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유럽 국가 중 알바니아와 함께 무슬림의 비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세르비아인은 인구의 약 33%, 크로아티아인은 19% 정도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만큼 관련 문화유적도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다. 17세기에 축조된 역사적 사원인 카레바(Careva)와 알리파사(Alipasa)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사라예보는 물론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도 아름다운 푸른색 타일로 장식된 모스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구는 약 390만 명. 인접국은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등이다.

  ▲ 사라예보 공동묘지에 세워진 새하얀 비석들.  
▲ 사라예보 공동묘지에 세워진 새하얀 비석들.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병합됐다가 1946년 공화국이 됐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될 무렵 독립을 선언했으나 이슬람교와 가톨릭, 세르비아정교 등 종교간의 대립으로 무참한 집단학살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다. 때문에 철광석과 아연, 은과 대리석 등의 광물이 풍부하다. 또한, 삼림과 수자원을 이용한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후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보스니아 지역은 온화한 편이나 겨울 추위는 매섭다. 반면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기온이 높고 건조하며, 한겨울에도 온난하다.

한 나라의 수도치고는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사라예보에서 터키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요리를 즐기고, 강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건 보스니아를 찾는 여행자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포도 등의 과일이 맛있고, 중세의 성(城)과 1556년 만들어진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한 모스타르(Mostar)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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