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도균 주임과장의 진료실 이야기(3)

울산에서 온 39세 미혼여성 A씨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너무 말랐었다. 30대 여성의 정상체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10년전 생리통이 심해 찾아간 산부인과 병원에서 우측난소 자궁내막종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복강경하 우측난소 절제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생리통, 요통, 다리저림은 계속됐다.

수술한 의사에게 원인을 물었더니 자궁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여자로서 자연적으로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어투였고, 그렇게 받아들였다.

2년간 정기적으로 초음파 검사를 하던 중에 좌측난소 자궁내막종을 진단받았다. 이번에도 같은 병원에서 수술했다. 복강경하 좌측난소 자궁내막종만 제거하고 난소는 보존했다. 좌측난소마저 제거하면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 후 골반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급기야 소화불량과 변비에 시달리면서 음식 섭취가 곤욕스러웠다. 생리와 상관없이 식사 후나 저녁때 갑작스런 복통이 찾아왔다. 2~3개월에 한 번씩 응급실 가는 게 생활습관이 됐다.

체중은 15kg이나 빠져 38kg에 이르렀다. 담당의사는 임신을 포기하자며 자궁 적출을 권했다. 환자는 수개월간 고민 끝에 자궁절제술을 받았다. 3년 전 일이다. `난 이제 여자가 아니야. 아이도 가질 수 없어`라는 생각이 자신을 강하게 짓눌렀다. 남자친구와는 헤어졌다. 직장도 관뒀다.

생리는 하지 않았지만, 생리주기가 반복되는 것이 신체변화로 느껴졌다. 밑이 빠지는 듯한 항문통과 요통, 다리저림은 계속됐다. 수술을 세 번이나 받고 자궁까지 제거했지만 통증은 지속된다는 현실이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음식을 먹으면 자꾸만 복통을 느꼈다. 구토 증상은 더 심해졌다. 일반 진통제로는 효과가 없어 마약성 진통제까지 복용했다.

서울의 큰 종합병원까지 찾아갔다. 증상이 심각한데다 주변 혈관이나 신경, 요관 손상 위험이 매우 크니 수술은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우리 병원을 찾은 환자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을 고백했다. 듣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정확한 진단부터 필요했다. MRI 등 여러 검사 결과 통증의 원인은 자궁이 아니었다. 자궁경부와 직장 사이가 문제였다. 요관과 신경혈관 직장에서 동시에 염증이 발생해 한 덩어리로 뭉쳐진 상태였다. 자궁내막증이 잘 발생하는 부위지만, 수술할 때 병변 부위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환자는 특히 복벽에 장이 심하게 붙어 있어 장운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장 마비 또는 일시적인 장폐쇄 증상도 보였다. 주변 장기 손상 위험 가능성이 컸지만 수술을 결심했다. 약으로도, 자궁적출술로도 효과 없는 통증을 치료해주고 싶었다.

환자와 가족 설득부터 성공했다. 수술 부담이 컸지만 안전하게 그리고 완전히 자궁내막증을 제거하고 장 유착 박리가 가능하도록 철저히 준비했다.

환자 뱃속을 열어보니 이미 4곳에서 장이 복벽에 단단히 유착돼 장운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였다. 복강경 기구를 넣기에도 힘든 정도였다. 조심스레 유착을 떼어내면서 수술을 진행했다.

2시간 정도 유착 박리 과정을 거쳐 직장과 질 사이로 넘어갔다. 신경과 혈관을 박리해 심부자궁내막증 병변을 제거했다. 엄지손가락 크기만 한 염증 덩어리가 한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다니. 4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장은 제자리를 찾았다. 오랜 시간 통증을 일으켰던 자궁내막증 병변도 완전히 사라졌다. 수술 다음 날 환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장 편안한 표정과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았다. 3개월 뒤 내원한 환자는 몸무게가 50㎏가 넘었다고 투덜거렸다. 너무 잘 먹어서 그렇다고.

자궁내막증은 자궁 제거가 치료법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복되는 골반염, 장염, 방광염으로 항생제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많다. 거듭되는 불완전한 수술은 도리어 유착처럼 심한 합병증으로 환자를 괴롭힌다.

진단도 수술도 어려운 심부자궁내막증은 의사가 가장 피하고 싶은 질환 중의 하나다. 그러나 정확한 진단과 완전한 수술에 대한 의사의 열정과 노력만이 환자를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