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③

▲ 화려한 금빛 장식이 인상적인 세르비아정교회 성당 내부.
▲ 화려한 금빛 장식이 인상적인 세르비아정교회 성당 내부.

전말을 알게 되면 누구나 통곡할 수밖에 없는 발칸반도의 역사. 상호배제와 끔찍한 학살, 비명과 고통이 수백 년간 반복돼온 아픔의 땅.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인간으로서의 희망`을 보스니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심한 햇살과 그 아래 새하얀 비석들 수만 개가 아프게 눈을 찔러오던 사라예보의 공동묘지. 실핏줄이 터진 붉은 눈동자로 사납게 짖어대던 개를 막대기로 쫓아준 꼬마들이 또래다운 호기심을 발휘해 드물게 보는 동양인인 기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왔다.

하지만 그날 그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들었고, 무슨 대답을 했는지 도통 떠오르지가 않는다. 시간은 증발했고 기억은 휘발됐다. 그건 단지 기자와 꼬마들의 힘겨웠던 의사소통 탓만은 아니었을 터.

아이들이 하나둘씩 산을 내려가고도 한참동안 더 묘지에 앉아 있었다. 시들어버린 장미와 암녹색 이끼, 해독할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비석을 눈앞에 두고. 참담함이라고 해야 할까, 향하는 곳이 분명치 않은 분노라고 불러야 할까? 당시의 심정을 아직도 명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어둠이 사라예보의 산과 묘지를 온전히 뒤덮은 다음에야 벗어놓은 슬리퍼를 꿰신고 시내 중심가로 내려왔다. 이 막막함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뒤집혀진 마음 상태론 술을 마시는 것 외엔 할 게 없었다.

 

▲ 짙은 녹색 이끼로 덮인 사라예보 공동묘지의 비석.
▲ 짙은 녹색 이끼로 덮인 사라예보 공동묘지의 비석.

▲ 하얀 비석을 뒤로 하고 내려와 마구잡이로 폭음

술을 팔지 않는 무슬림 구역을 지나 숙소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가톨릭 구역으로 휘청거리며 걸었다. `학살의 그날` 새겨진 총탄 자국 선명한 건물들이 스쳐갔다.

보스니아 내전 기간 동안 사라예보는 세르비아계 군인과 민병대에 포위돼 있었다. 식량이나 물을 구하러 거리로 나온 아이와 노인들은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을 맞고 생이 꺾이곤 했다. `죄 없는 죽음`이 곳곳마다 넘쳐났다.

 

▲ 어둠이 내린 사라예보의 가톨릭 구역. 무슬림 구역과 달리 술집이 흔하다
▲ 어둠이 내린 사라예보의 가톨릭 구역. 무슬림 구역과 달리 술집이 흔하다

사라예보 한복판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담은 조형물이 있다. 그건 내전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이고, 총탄 자국이 흉한 건물을 새로 단장하지 않는 이유는 `슬픔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을 기자는 한국에 돌아와서야 책과 인터넷을 뒤져보며 알게 됐다.

마침내 도착한 가톨릭 구역. 조그만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다. 싸구려 위스키로 시작해 러시아 보드카와 맥주, 나중에는 알코올 함량이 60%를 넘나드는 라키아(Rakia·유럽산 자두나 청포도를 증류한 투명한 술)까지 벌컥댔다. 끝도 모르게 이어진 폭음이었다.

 

▲ 사라예보 공동묘지에서 만난 아이들.
▲ 사라예보 공동묘지에서 만난 아이들.

저녁도 거른 채 급하게 들이켠 술은 엉망의 취기를 불러왔다. 주위에 앉은 보스니아 사람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윙윙거리더니 한순간 사라져버렸고, 술집 앞 거리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환시가 보였다. 나중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가… 사람이 사람에게 그럴 수가…”라는 혼잣말까지 지껄였던 것 같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기억의 회로가 끊겨버렸다. 샛노란 달이 처연하게 밝은 밤이었다.

멈췄던 기억의 회로가 다시 작동을 시작하고 정신이 돌아온 건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였다. 지갑과 여권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침대 머리맡 가방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어떻게 술집에서부터 숙소까지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술값을 제대로 지불했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직원을 찾아야 했다.

 

▲ 보스니아 사라예보 시내엔 내전에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 보스니아 사라예보 시내엔 내전에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다행히 사라예보에 도착한 첫날부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기자가 건네는 물음에 친절하게 대꾸해주던 금발의 20대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미안한 일이었지만 거두절미하고 질문부터 던졌다.

“저기, 제가 어젯밤 언제쯤 들어왔죠?”

“새벽 2시가 좀 넘었을 거예요. 얼마나 마셨는지 엄청나게 취해 보였어요.”

“아 그래요…. 혹시, 결례를 하지는 않았나요?”

“아뇨.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쓰러져 잤으니까요.”

 

▲ 조그만 강이 흐르는 사라예보의 한적한 오후 풍경.
▲ 조그만 강이 흐르는 사라예보의 한적한 오후 풍경.

▲ 슬픔과 부조리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쯤이면 천만다행이지 싶었다. 자신의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거나, 신파조의 슬픔을 무기 삼아 주위를 괴롭히는 건 마흔을 넘긴 사내가 젊은이들에게 할 짓은 아니지 않나. 고통과 아픔을 홀로 삼킬 줄 알아야 어른이라 할 수 있다. 별다른 실수가 없었다는 걸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그녀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에 친구랑 거리를 지나다가 술집에 혼자 앉아있는 당신을 봤어요. 심각한 표정이던데 왜 그랬어요? 사라예보가 싫은가 봐요?”

그 예상치 못한 물음에 이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요. 사라예보는 좋습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싫죠.”

 

▲ 내전 당시의 총탄 자국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사라예보의 건물들.
▲ 내전 당시의 총탄 자국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사라예보의 건물들.

그 여자 앞에서 주제넘게 철학자 흉내를 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도 가끔은 `대체 인간이란 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같은 종(種)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악독한 행위다.

 

▲ 맥주는 사라예보를 포함해 동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좋은 친구다.
▲ 맥주는 사라예보를 포함해 동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좋은 친구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과 행복이 아닌 다른 존재의 행복과 생존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 `희생`은 인간만이 사용하는 단어다. 양립되기 힘들어 보이는 극단을 오가는 인간. 바로 그 인간들이 만들어온 것이 역사다. 쉽게 이해되고 수긍할 수 있는 역사가 있다면, 불가해하고 일그러진 역사의 시간 역시 분명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불가해하고 일그러진 역사로부터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할까?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반성하지 않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보스니아 사람들은 내전과 학살의 아픈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2017년 오늘. 한국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나.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영화와 만나다

영화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어렴풋이나마 추측하게 해주는 대리체험의 교과서다.

참혹했던 `보스니아 내전`의 전개 과정과 인간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만드는 `인종청소`의 끔찍함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해준다.

아래 소개하는 3편의 영화는 여기에 더해 감동과 카타르시스까지 주는 작품들이다.

보스니아를 필두로 발칸반도의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상해보길 권한다.

▲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 `그르바비차`
▲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 `그르바비차`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 `그르바비차`

▲ 사라예보 외곽의 작은 마을 그르바비차에 사는 소녀 사라는 아버지가 없다. 엄마인 에스마는 “아빠는 전쟁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구하려다가 죽었다”고 말한다.

사라는 그런 아빠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수학여행을 앞둔 딸에게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있었으니, 사라의 아버지는 전쟁영웅이 아니라는 것. 어린 딸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불행한 과거를 들키게 된 엄마.

모녀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는데…. 보스니아 출신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의 데뷔작으로 베를린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웰컴 투 사라예보`
▲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웰컴 투 사라예보`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웰컴 투 사라예보`

▲ 사라예보의 참상을 취재하러 온 종군기자 플로이드와 마이클. 둘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할 말을 잃어버린다.

직접 보면서도 믿기 힘든 전쟁의 잔인한 맨얼굴에 치를 떨던 그들 앞에 고아 소녀 에미라가 나타난다.

어떻게 해서건 이 소녀를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시키고 싶은데…. 1997년 제작된 작품으로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최초의 영화로 알려져있다.

종교간 대립과 인종갈등이 인간을 어떻게 악마로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전쟁을 기록하는 종군기자의 윤리문제에도 카메라 렌즈를 가져다댄다.

▲ 안젤리나 졸리 감독 `피와 꿀의 땅에서`
▲ 안젤리나 졸리 감독 `피와 꿀의 땅에서`
안젤리나 졸리 감독 `피와 꿀의 땅에서`

▲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젊은 여성 아일라는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납치돼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곳에선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끔직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데….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원제는 `In The Land Of Blood And Honey`. 사람이 사람을 죽고 죽이는 비극의 현장인 전쟁터.

그 참화 속에서도 사랑의 숭고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함으로써 보스니아 사람들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준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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