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샤이 토리(shy tory)`란 말이 있다. `수줍은 보수당 지지자들`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1992년 영국 총선 전 마지막 여론 조사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에 1% 뒤졌으나 실제 투표 결과는 보수당이 7.6% 승리한 데서 비롯된 용어다. 보수당이 여론 조사보다 더 많이 득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보수당 지지자들이 여론 조사에 소극적으로 응하는 바람에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그 이후 영국 여론 조사 업계에선 이같은 요소를 반영해 조사 결과를 보정하는 방안을 강구해 왔다.

얼마 전 미국에서 치러진 대선에서도`샤이 트럼프현상`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표심을 숨겨 왔던 `샤이 트럼프`들의 몰표로 대역전극을 펼치며 당선된 것이다. 수줍은 보수층들의 숨겨진 표가 선거에서 역전의 원동력이 됐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요즘 보수당 대권 후보의 지지도를 놓고 `샤이 보수현상`이 화제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가 지난 22일 자유한국당 의원들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샤이 보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기울어진 운동장` 주제의 토론회에서 `샤이 보수현상`을 반영한 대선주자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문재인 42.3%, 황교안 30.0%, 안철수 19.1%`로 나타났다고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올 경우, 안희정 45.1%, 황교안 26.9%, 안철수 18.8% △문재인-안철수 양자 구도에서는 문재인 43.6%, 안철수 35.6%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맞붙을 경우 문재인 53.6%, 황교안 33.7%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리얼미터가 13~14일 전국 성인 유권자 1천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3.1%p) 결과에다 지난 대선 득표율 가중치를 적용한 가공치라고 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당 의원들은 샤이 보수층을 매우 두텁게 평가하고 싶은 듯 너도나도 현재 여론조사 결과가 국민의 의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홍문종 의원은 “우익 세력은 커밍아웃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다”고 했고, 유기준 의원은 “야권 주자의 지지율 합계는 60%대, 여권은 20%대로 나타나는데, 보수·진보 유권자 지형을 봤을 때 이것은 왜곡된 여론조사”라고 했다.

그럼 실제 `샤이 보수층`은 얼마나 될까. 이 대표의 대답은 약 10~15%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로 마감된 반면 탄핵 반대 여론이 20%에 달했으니, 15%가 표심을 숨기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의 지난 대선 득표율이 51.6%인데 지금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사람은 37.3% 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약 10~15%의 샤이보수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샤이 보수층의 사이즈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을까.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표 역시 “탄핵 인용여부와 대선시기, 탄핵이 인용된다면 박 대통령의 구속 여부, 대선 구도 등 앞으로의 정국변화에 따라 샤이 보수의 사이즈는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는 생물(生物)이라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져 급변할 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골수 보수 지지층들의 무조건적인 나라사랑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반대 및 지지로 이어지고,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표가 태극기 집회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샤이 보수에 대한 보수정당의 기대가 크게 부풀고 있다. 하지만 `샤이 보수`는 타인에게 자신의 정치적 지지 성향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됐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보수정당들은 하루빨리 `샤이 보수`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해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결의와 자세로 당을 추슬러야 한다. `샤이 보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