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1992년 출품된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몬타나 주의 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일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버지에게 어릴 적부터 낚시를 배운 노먼과 폴 형제. 플라잉 낚시로 송어를 낚아채는 장면이 기억에 삼삼하다. 강물이 전진운동 하는 것처럼 영화의 시간도 앞으로 나아간다.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그리고 폴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실과 지난날의 반추로 이어지는 숨 깊은 영화다.

햇살에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강물과 초록의 나무그늘과 형제의 멀리 퍼져나가는 웃음소리와 새파란 하늘과 손에 잡힐 듯 그려진 바람! 그런 자연의 향연만으로 넉넉한 선물을 부여하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의 비의(秘意)와 본질에 대한 성찰이 나의 생을 혼란으로 이끌던 무렵 이 영화는 숙제로 다가왔다. `강물이 흐르듯 시간 흐르고, 더 많은 세월 지나면 나는 무엇으로 남을까`하는 물음이 닥쳤던 시절.

문득 생각한다. 강이 흐르지 않는다면?! `흐름이 정지한 강은 어찌 될까`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근자(近者)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수질개선을 위해 4대강에 2조2천억을 쓰겠다고 한다. 홍수예방과 수질개선을 목적으로 시작된 이른바 `4대강사업`으로 오히려 악화된 수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명목으로 국민혈세를 투여하겠다는 얘기. 어느 조간신문은 그것을 일컬어 `2조원짜리 인공호흡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4대강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으로 시작됐다가 빗발치는 여론악화로 수질개선과 홍수예방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는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류(支流)와 지천(支川)에서 발생한다. 지난 정부들이 노력한 결과 4대강 수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4대강사업 결과로 수질은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홍수예방도 성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 더해 4대강 준설토로 인한 피해도 해마다 수십억에 이른다고 한다.

4대강 `녹조라테`라는 오명의 근저에는 흐르는 강물을 틀어막고 곳곳에 건설한 댐이 있다. 전직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은 `보(堡)`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보가 아니라 `댐`이라 한다. 소량이기는 하지만 각종 보에서는 전기도 생산한다. 도처에 생겨난 댐으로 인해 유속(流速)이 현저하게 느려졌고, 그로 인해 강물은 생래적 속성을 상실했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라 호수나 연못이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흐르지 않는 강물 역시 썩기 마련이다. 그 결과 녹조라테의 악순환이 그치지 않는다. 단순 공사비만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사업에 정부는 그간 지류·지천의 수질개선, 농업용수활용 등에 2조8천억을 들였다. 여기에 다시 2조2천억이 추가 투입되는 셈이다. 따라서 총공사비는 액면가로만 27조에 이른다. 그러고도 수질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그것은 계속 물음표로 남는다.

정부와 토건업자들의 배만 채워주고 실패로 돌아간 4대강사업의 해법은 단순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를 허물어 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200만년 넘도록 흐르고 흘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강을 2년 만에 성형했으니 어찌 사달이 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의 큰 강들은 하나둘씩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그 강에 터를 닦고 살아온 허다한 생명들 역시 함께 사멸 중이다. 흐르지 않는 강물을 만든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낸 참사(慘事)다.

많은 세월이 흘러 노먼은 그 옛날의 강에서 홀로 낚시를 던진다. 예전의 청춘과 활기는 없지만 그에게는 흘러간 강물과 시간의 추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듯 유장(悠長)하게 흐르는 강에는 여전히 송어들이 노닌다. 그것들이 파닥거리며 맑고 푸른 대기로 뛰어오를 때 노먼은 이제는 없어진 폴과 부모를 떠올린다. 거기에는 예전처럼 투명하고 생생하게 살아 흐르는 강물이 있다. 흐르지 못해 죽은 우리의 강을 보면서 느끼는 소회(所懷) 한 자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