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가끔씩 한파가 닥쳐와 몸을 움츠리게 하지만 우수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왔다. 해도 제법 높이 올라오고 서릿발 사이에서도 얼었던 풀잎이 푸른빛을 되찾고 있다. 봄을 일찍 맞는 강가의 나무들은 잎눈과 꽃눈을 틔울 준비를 하느라 조금씩 부풀고 있다. 모두들 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은 봄을 어떻게 맞이했고 어떻게 느꼈을까.

윤선도 선생의 `고산유고` `봄의 의미에 대한 책문(對春策)`을 살펴보면 `태극(太極)이 쪼개지고 음양이 나뉜 뒤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서 네 계절이 생긴다. 해는 황도의 별자리에서 운행이 끝나고 달은 열두 달 뒤 운행이 끝나서 해와 달의 도수가 마감이 되면 한 해가 다시 시작되는데 이것을 봄이라고 한다. 봄과 관련된 날은 갑을(甲乙)이고, 봄의 임금은 태호이며, 봄의 신은 구망(句芒)이다. 봄은 무성하고 온화한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 피어 올라와 오로지 뭇 생명의 고동을 울려 만물을 이루어 자라나게 하는 것을 일삼기 때문에 봄의 작용은 낳음(生)이다. (중략) 봄은 사계절을 통틀어서 시작이 되고, 인(仁)은 사단(四端)을 통괄하여 근본이 된다. 이 봄은 만고에 변하지 않으니 이 인은 천 년을 흘러도 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간의 봄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에게 있는 인으로 돌이켜야 하고, 시간의 봄을 체득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에게 있는 인을 다해야 한다.` 봄을 인간완성의 시작인 인과 동일시로 풀이한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도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의 변화원리를 파악해 거기에 적응하고 문명을 일구어내고 문화를 창조할 것을 강조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태어남과 죽음, 그것만 자연스럽고 나머지는 모두 인공과 인위의 조작 속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 사람이 자연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다른 온갖 수단을 개입시킴으로써 편리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자연에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의 법칙과 원리를 이성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그 의미를 감성으로 느끼기도 한다. 노자는 자연을 불인(不仁)하다고 하였다. `천지는 불인하다. 만물을 풀개(芻狗)로 여긴다.` 여기서 풀개란 풀로 엮어서 제사에 쓰고 버리는 개 모양의 인형을 말한다. 노자가 보기에 자연은 만물을 만들어내서 제각기 자기 생긴 대로 살아가도록 두되 절대로 어느 하나를 특별히 배려하거나 더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게 한다. 그러니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여 거기에 적응하여 살아야 하고 자기 몸을 흐르는 자연스러운 순환을 감지해 순조롭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을 기계적으로 자연과학적으로 보는 관점도 필요하지만 이 삶이 물질적으로 재단되어지지 않았는지 누구나 그 의미를 새겨볼 일이다. 봄은 오랜 세월을 두고 오고 갔지만 그 오고 감을 느끼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누군가가 없다면 긴 세월 그냥 오고 간 그 봄일 뿐이다. 후한 때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한나라 원제(元帝)때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흉노 왕에게 후궁 한 명을 보내기로 했는데 중국 4대 미녀 중 한 사람인 왕소군이 선정되어 볼모로 시집을 갔다. 흉노의 생활지역이 초원이라 봄이 와도 주변에 꽃이 보이지 않자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하략) 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이 시에서 춘래불사춘이란 대목은 요즘 정치인들도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다. 또한 시의 첫 구절인 호지무화초는 조선시대 어느 고을 향시 주제로 선정되자 수많은 응시생들은 왕소군의 고사를 들어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막상 장원에 뽑힌 작품은 덩그러니 제목만 네 번 반복해서 쓴 사언절구였다.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고 하나,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엔들 화초가 없을까, 호지무화초/어찌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으랴마는,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이라서 화초가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