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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지붕 아래의 가난, 그러나 얼굴엔 웃음이…

등록일 2017-04-13   게재일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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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길 위에서
필리핀 ③

   
▲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필리핀의 도시 풍경. 다채로운 지붕이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현대인이 일상에서 모험을 즐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행에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소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기자는 여행지에서의 `스릴`을 즐기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일까? 안전성 면에서 훨씬 높은 점수를 받는 큰 비행기보다 작은 비행기를 더 좋아한다.

소규모 난기류에도 심하게 흔들리고, 대형기에 비해 추락의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되는 소형기들 말이다. 여러 차례의 제주도 여행에서도 60인승 정도의 작은 비행기를 탔던 게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필리핀 여행에서도 소형기를 자주 탔다. 필리핀은 대략 7천50개 정도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고, 각각의 섬들을 이어주는 유용한 교통수단이 작은 비행기와 페리(ferry·여객운송선)다. 필리핀에는 에어필리핀, 필리핀항공, 세부퍼시픽, 동남아시아항공 등 크고 작은 항공사들이 여러 개 있다.

보라카이 섬의 관문인 카티클란에서 수도 마닐라로 이동했을 때는 동남아시아항공의 비행기를 탔다. 승객이 채 30명도 되지 않았다.

물론, 비행기 역시 버스보다 작았다. 객석에 앉으면 조종사의 뒷모습이 보이는 소형기에서 내려다본 필리핀의 바다와 육지 풍경은 때론 아름다웠고, 어느 순간은 남루해 보였다.

기자를 태우고 세부공항에서 칼리보공항까지 날아간 세부퍼시픽 항공기 역시 60~70명의 승객만을 태울 수 있는 소형기였다. 필리핀과 독일의 피가 섞인 스튜어디스는 친절한 눈빛과 편안한 미소로 난기류의 울렁임을 두려워하는 노인 승객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비행기가 아래위로 요동치는 그때의 상황을 즐기고 있던 건 기자 하나뿐이지 않았을까? 당시 흔들리는 창밖으로 보이던 각양각색의 필리핀 가옥 지붕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질적 단어인 가난과 낭만이 섞인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 필리핀의 버스 역할을 하는 지프니(jeepny)에 올라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  
▲ 필리핀의 버스 역할을 하는 지프니(jeepny)에 올라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

▲ 여행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여행 또는, 일상에서의 떠남이란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자신의 내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체험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훈훈한 바람에 실려 오는 한 점 먼지도, 햇살 아래 피어 있는 조그만 보랏빛 꽃 한 송이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시간을 선물 받는 게 여행이지 싶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인용하자면 “언어란 존재의 집”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어떤 시인은 “언어만이 인간을 문학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언어로 존재의 집을 짓는 게 비단 시인이나 소설가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만의 언어로 수백 년 무너지지 않을 성(城)을 축조하고싶다는 꿈을 아직도 온전히 버리지 못한 존재가 아닐까. 비단 문학청년, 문학소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필리핀 비사야제도를 얼음 섞인 차가운 맥주에 취해 떠돌며 이런저런 상념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은 행복했다.

“대체 나는 누구에게 존재를 온전히 확인시킬 수 있을까?” “세상의 가난과 불행은 어째서 해결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일까?”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과연 절대적일까?”라는 평소에는 하기 힘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가슴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필리핀 여행만이 아니었다.

동유럽과 중동, 아시아의 다른 국가를 여행한 후에도 기자는 훌쩍 자라있는 `정신의 키`를 실감하곤 했었다. 평소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나의 내부`를 제3자의 입장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작가 한수산이 장편소설 `부초(浮草)`를 탈고한 후 “곡예사들의 유랑과 새로운 출발에 관해 쓰면서 내 정신의 키가 한 뼘은 자랐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고백한 것처럼.

 

  ▲ 좌판에 복권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필리핀 노인.  
▲ 좌판에 복권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필리핀 노인.

▲ 가난에 주눅 들지 않은 필리핀 서민들을 기억하며

네그로스와 발리카삭 같은 적요한 비사야제도의 섬들과 이와는 정반대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지 보라카이, 세부의 해변을 이리저리 헤매 다니던 필리핀 여행이 끝나가던 무렵.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닐라에 도착한 기자는 가지고 있던 수첩에 아래와 같은 메모를 남겼다.

“여기는 한때 `동양의 진주`라 불리던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네온사인 휘황한 화려한 신도시 `마카티`에서 택시를 타고 15분만 달리면 거주자의 절반이 매일 끼니 걱정을 하는 거대한 빈민가 `톤도`가 앙상한 뼈를 드러내는 곳.

자비와 긍휼의 구세주가 아니더라도 나 또한 가난한 아이들의 때 묻은 작은 손을 잡아주고 싶구나. 세상과 삶이 불공평하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러나, 어쩔 것인가? 한국 역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의 삶과 철거민촌의 생이 공존하는 땅. 지구는 생겨나면서부터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별이었던 것을.”

 

  ▲ 필리핀 관광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노점상들. 여기에선 갖가지 기념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 필리핀 관광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노점상들. 여기에선 갖가지 기념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본다. 지구가 만약 `불평등과 불합리의 별`이라면 우리는 어떤 힘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지. 답은 간명할 것 같다. 바로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아닐까.

필리핀을 떠돌 때 기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들이었다. 낡은 버스와 트라이시클을 몰던 기사들, 관광지 거리에서 구운 소시지와 열대과일을 팔던 장사꾼들, 검게 탄 등 위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 힘겹게 나르던 일꾼들…. 그들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웃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미소는 남루와 빈한함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아껴줄 식구와 이웃을 향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 어떤 참혹한 가난도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이게 필리핀 여행에서 기자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 해마와 전갈 등이 간식으로 만들어져 필리핀 거리에서 판매되고 있다.  
▲ 해마와 전갈 등이 간식으로 만들어져 필리핀 거리에서 판매되고 있다.

필리핀 `길거리 음식`과 만나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젊은 패기와 모험심을 여비 삼아 떠나는 배낭여행이 `청춘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단기 아르바이트 등을 해서 모은 100~200만원 안팎의 여행경비로 동남아시아 몇몇 나라를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4주씩 돌아본다. 이들에겐 저렴하면서도 색다른 맛을 지닌 `길거리 음식`이 작은 축복이다. 해물볶음밥이 맛있는 태국과 쌀국수가 유명한 베트남처럼 필리핀에도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 적지 않다. 아래 기자가 마닐라와 세부, 일로일로와 보라카이에서 맛본 것들을 소개한다.

◇ `밀크피쉬 구이`에 쌀밥 한 접시

필리핀 사람들이 `방구스`라고 부르는 밀크피쉬(Milk-fish)는 남태평양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생선이다. 청어처럼 생겼는데 맛은 한국에서 먹는 고등어와 비슷하다. 주로 구워서 소금이나 간단한 양념을 뿌려 먹는다. 흔한 물고기이기에 비싸지 않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가격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 거리의 좌판에서 밀크피쉬 한 마리를 굽고, 여기에 쌀밥 한 접시(필리핀은 밥을 그릇이 아닌 접시에 담아주는 경우가 많다)를 구입하면 점심으로 손색이 없다.

 

  ▲ 필리핀 특유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시지를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  
▲ 필리핀 특유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시지를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

◇ 독특한 향과 맛의 필리핀 소시지

한국인들과 비슷하게 필리핀인들 역시 돼지고기를 즐겨먹는다. 비사야제도의 조그만 섬에서 새끼돼지를 통째로 바비큐 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이 요리를 레촌(Lechon)이라 불렀다. 큰 잔치가 있을 때 준비되는 요리 같았다. 레촌이 `특별식`이라면 소시지는 필리핀 사람들의 `일상식`에 가깝다.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 소시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노점이나 수레를 세부와 마닐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바게트를 갈라 가운데 소시지를 넣으면 가벼운 한 끼 식사로 그만이다.

◇ 달콤하고 새콤한 열대의 과일들

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망고스틴, 스타애플, 람부탄, 파파야, 두리안…. 하나씩 이름을 부르다보면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는 새콤하고 달콤한 과일이 지천인 곳이 필리핀이다. 한국에선 꽤 비싼 값에 판매되는 열대과일을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에 맛볼 수 있기에 과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필리핀이 `새콤달콤한 천국`으로 느껴진다. 슈퍼마켓에서 kg 단위로 사는 것도 좋지만, `나 홀로 여행자`라면 노점상 좌판에서 조각으로 썰어 놓은 파인애플이나 두리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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