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일화가 소개돼 있다. 옛날 진(晉)나라 대부인 조양자(趙襄子)가 왕자기(王子期)라는 명인에게서 승마법을 배웠다. 승마법 전수가 끝나고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조양자는 어느 날 왕자기와 달리기 경주를 했다. 그러나 조양자가 세 번이나 말을 바꾸면서 도전해도 세 번 다 왕자기를 당할 수 없었다. 그러자 조양자는 “가장 심오한 비법은 아예 가르쳐주지 않은 것 아니냐”고 원망했다. 왕자기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비법은 모두 전수했습니다. 다만 배우신 것의 활용법이 틀렸습니다. 말을 탈 때, 말과 기수가 하나가 되고, 말과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멀리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보니 뒤떨어지면 따라 잡으려 하고, 앞서 나가면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는 데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둘이서 경쟁하면 앞서가거나 뒤처지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앞서가든 뒤처지든 마음은 늘 상대편에게 가 있습니다. 이래서야 말과 일심동체가 될 턱이 없습니다. 경주에서 이기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말을 타는 승마경주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승부에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수단을 다한 다음에는 평상심으로 일관해 무아의 경지에서 담담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5·9장미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TV토론에서 뜨거운 공방을 벌이는 대선후보들을 봐도 이같은 이치가 적용되는 듯 싶다.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보다 지지율에서 앞선 후보나 뒤따라 오는 후보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정책공약을 설명하는 후보에게 더 많은 표심이 쏠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와 같은 달리기 경주로 비유되는 대선에서 승부를 가늠해보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좋을까. 아마 선거 판도를 규정하는 틀, 달리 말해 `대선 프레임(Frame)`이 어떻게 짜였느냐를 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게다. 예를 들면 지난 2007년 대선은 `경제 살리기` 선거구도가 주효했다. 이런 프레임이 짜여지면서 기업가 출신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낙승을 거뒀다. 2012년 대선때는 `경제민주화`가 대선 프레임으로 등장했다. 국내에선 `저축은행 사태`, 국제적으로는 `월가 점령시위` 등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는 시기였다. 이런 국내외적 상황속에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린 김종인씨를 캠프에 전격 영입,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됨에 따라 조기대선으로 치러지는 만큼 `정권교체론`이란 프레임이 견고하다. 일부 후보들이 `정치교체`나 `세대교체`등을 들고 나섰지만 `정권교체론`이란 대세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것이 정권교체론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높은 지지율을 받는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구(舊) 여권 출신 후보들의 지지율이 맥을 못 추는 근본적인 이유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후보는 TV 토론과 유세를 통해 “`촛불 혁명`도 정권을 교체하지 못하면 또 다시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만다”며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정권교체론의 기수로 나섰다. 국민의당 안 후보 역시 기존 보수와 진보를 모두 수구세력이라고 규정한 뒤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정치인, 미래를 이끌어나갈 능력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면서 `더 좋은 정권교체론`이란 프레임을 내걸었다.

최근 범보수 성향의 바른정당에서 국민의당 안철수·자유한국당 홍준표·바른정당 유승민 `3자 단일화`로 마지막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으나 유 후보의 부정적 태도 등을 미뤄볼 때 실현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어떻든 이번 대선은 모든 후보들이 앞·뒤를 신경쓰거나 타 후보들을 깎아내리는 데 힘쓰기 보다 후보 자신의 소신과 경륜, 국가운영 철학 등을 내놓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선거로 마무리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