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대지 않고 근종 치료 `희소식`
갖가지 부작용 드러나 `주의`
새 치료법 엄격한 기준 적용해야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삶도 어느새 25년째다. 그동안 의료 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했다. 청진기로 진단하고 개복 수술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초음파, CT, MRI와 같은 영상기기로 환자의 골반 내부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최근엔 최소 절개만으로 원하는 근종, 선근증, 자궁내막증을 수술할 수 있는 시대로 발전했다. 특히 심부 자궁내막증 분야에서는 개복 수술보단 숙련된 의사를 통해 복강경 시술로 더욱 완벽하게 병변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정말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과거 수련의 시절, 최소 침습 수술기계인 복강경장비가 국내 첫 도입돼 여러 여성질환의 수술적 치료에 사용할 무렵이었다. 그 당시 자궁외임신의 주요 원인인 나팔관 임신을 복강경으로 수술할 때 걸린 시간은 두시간 정도. 집도의에 따라 다섯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복강 내 피가 너무 많거나 유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곧바로 개복하기 일쑤였다.

복강경 수술범위는 자궁절제술과 자궁경부암 초기 영역까지 빠르게 확대됐다. 솔직히 이 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의사들의 시험대상이 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불행한 일을 겪은 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개복 수술을 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 환자가 이제 막 복강경 수술을 시작한 집도의에 의해 좋지 않은 결과를 얻거나 나중에서야 재발해 원치 않는 결과를 얻은 불행도 있었다.

지금은 의사들의 노력과 경험이 쌓여 복강경수술 숙련도가 일정 수준까지 올라왔다. 환자들도 다양한 정보를 통해 수술법을 선택할 수 있어 불행한 결과는 줄일 수 있게 됐다.

나 역시 복강경수술에 익숙해져 자신있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 20년간 많은 수술을 해왔다. 빠르게 발전하는 의료장비를 잘 다룰 수 있기까지는 그만큼 엄청난 정열과 경험이 요구된다. 아무리 신기하고 획기적인 치료법이라 할지라도 치료결과까지 좋을 것이라고 장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복강경수술의 첫 등장만큼이나 근래 들어 로봇 수술법이 인기몰이 중이다. 대학병원마다 너도나도 도입해 로봇 장비가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 들여온 `하이푸`는 몸에 칼을 대지 않고 근종, 선근증을 치료할 수 있다며 방송, 신문, 인터넷에서 엄청난 홍보를 하고 있다. `수술하지 않고 하이푸로 당일 치료받으면 일상생활도 가능하다`는 문구를 보고 처음엔 나도 `그렇게 신기한 치료 방법이?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 병원에서도 치료할 때 사용하면 어떨까하는 고민도 들었다.

무엇보다 근종, 선근증 환자에게는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하이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료의뢰서를 써 달라는 환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이푸 시술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이 최근에서야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시술받은 한 젊은 여성은 정상적인 자궁근육까지 손상돼 결혼 후 임신 중 자궁파열로 태아는 사망하고 산모 생명 또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이른 일이 있었다. 근종에 해야 할 시술을 척추에 해버려 하반신 영구 마비가 온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시술 효과를 보지 못해 다시 복강경 수술을 해야만 했던 사례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그동안 하이푸시술 실패로 내원한 환자만 해도 20여명에 달하니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사실 하이푸시술 기기 구입을 망설였던 그때,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부작용 및 수술 실패 사례들, 그리고 해당 시술을 적용할 수 있는 환자의 근종 크기와 위치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 선뜻 사용하기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과 한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하이푸시술을 시행하고 있지만,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아직도 이를 치료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많은 환자들이 부작용을 겪은 지금에서야 하이푸시술법이 각종 학회에서 난상토론 주제로 거론되고 있다.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물론 하이푸 시술이 성공해 큰 효과를 본 환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작정 어떤 치료법을 비난할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의료행위가 전문의사에 의해 행해지며 엄격한 규칙이 있는 존엄한 행위라면, 새로운 치료법 역시 그러한 혹독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新) 의료술 등장과 그 기술을 잘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의사는 결코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