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원 이광수가 193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이차돈의 사`. 젊은 순교자 이차돈의 삶과 죽음, 그 궤적을 좇아가는 작품이다.
신라의 불교 공인을 위해 죽음을 자처한 스물한 살 청년. 잘린 목에서 젖처럼 새하얀 피가 솟았다는 이차돈의 순교는 고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차돈 순교`는 드라마틱하고 논쟁거리 다분한 문학적 소재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차돈의 죽음에 관해 노래한 시나, 그의 짧고 뜨거웠던 생애를 그려낸 소설은 이상스레 드물다. 이런 상황이니 1935년부터 1936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춘원 이광수의 장편소설 `이차돈의 사(異次頓의 死)`는 발표된 지가 8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이차돈의 삶과 죽음을 읽어낼 긴요한 텍스트로 역할하고 있다.

`신라왕조가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재주 많았던 한 청년이 안타깝게 희생됐다`는 역사적 사실에 춘원 특유의 장엄한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진 `이차돈의 사`.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신라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이차돈은 아름다운 연인 달님과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질투하는 공주와 법흥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간신들의 모략에 의해 고구려로 쫓겨난다. 신라보다 더 큰 번영을 누리고 있는 고구려의 모습에 놀란 이차돈은 `내 나라 신라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이차돈의 명민함을 높게 평가한 고구려의 왕족은 이차돈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차돈은 고구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한편, 이차돈이 신라로 돌아오는 것을 걱정하던 간신들은 자객을 보내 이차돈을 죽이려 한다.

구사일생으로 위험을 피한 이차돈은 백봉국사(白峰國師)를 만나 불교가 전하는 교리를 배운다. 이후 `불법을 통해 나라를 구원하겠다`는 다짐으로 신라로 돌아온 이차돈은 순정한 뜻을 펼치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차돈의 사`는 법흥왕과 이차돈이 살았던 1500여 년 전 신라의 문화·종교·생활상을 서술한 80년 전 소설이다.

“현대적 세련됨이 없어서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광수의 문장은 21세기 소설만큼이나 핍진성과 감수성이 넘친다. 게다가 유장한 서술과 꼼꼼한 묘사는 독자들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까지 자극한다.

소설이 신문에 연재되기 사흘 전. 이광수는 `이차돈의 사`를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다.

“이차돈의 짧지만 다사하고 빛났던 눈물겨운 일생의 이야기를 통해 참된 사랑을 돌아보고, 그 참된 사랑 속에서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신라의 역사, 나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의 빛과 그림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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