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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스물일곱` 짐 모리슨을 만나다

등록일 2017-08-10   게재일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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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길 위에서
프랑스 ③

   
▲ 뜨거운 열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파리의 청춘들이 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였다.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싶었던 건.

3만5천 점의 고대와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고흐와 모네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명작이 줄줄이 내걸린 `오르세 미술관`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파리를 상징하는 불 밝힌 에펠탑 아래서 인증사진을 찍거나, 몽마르트르 언덕 `화가의 거리`에서 싸구려 초상화의 모델이 되고 싶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기자에게 파리는 `페르 라셰즈` 혹은 `짐 모리슨`(Jim Morrison·1943~1971)과 등호였다.

1960년대 활동한 록밴드 도어스(The Doors)의 보컬리스트였던 짐 모리슨은 절망과 희망, 빛과 그림자, 고통과 환희, 삶과 죽음…. 이 모든 심각한 단어의 절정을 살아냈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질주하고자 했던 영혼이 지구에서 증발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만 스물일곱. 삶의 허리가 가혹하게 부러진, 두말 할 것 없는 요절(夭折)이었다.

`플래툰`(베트남전쟁의 비극을 다룬 작품)과 `JFK`(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소재로 한 작품) 등의 영화를 통해 1960년대 미국의 역사에 천착해온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도 젊은 시절부터 짐 모리슨에 매료돼 있었다.

“차가운 얼음 속에서 뜨겁게 타고 있던 불꽃”이라 불러도 좋을 짐 모리슨의 굴곡 많았던 일대기를 그려내고자 한 올리버 스톤의 영화가 바로 `도어스`(제작 1991년)다.

  ▲ 파리 거리에선 짐 모리슨의 20대를 떠올리게 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파리 거리에선 짐 모리슨의 20대를 떠올리게 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영화에서 만난 `페르 라셰즈`를 찾아 지하철에 오르다

우울한 얼굴과 곱슬거리는 긴 머리칼을 가졌던 짐 모리슨의 인생이 독한 위스키와 마리화나, 마구잡이의 난교(交)만으로 이뤄졌을 것이라 착각해온 관객들은 이 영화에 경악한다.

사실 짐 모리슨은 10대 때부터 프랑스의 표상주의 시인 랭보와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살던 조숙한 문학청년이었다.

어릴 적 여행에서 본 아메리카 인디언의 죽음을 평생 잊지 못했던 그는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삶의 이면(裏面)을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제 또래 군인들이 베트남전에서 죽어가는 걸 마음 아파했던 짐 모리슨은 `반전(反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짐 모리슨이었으니 `광기`로 가득한 1960년대를 정면에서 마주 보기 힘들었을 터. 자학과 다를 바 없는 폭음과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무대에서의 기행(奇行·짐 모리슨은 수천 명의 관객과 경찰들이 지켜보는 콘서트에서 바지를 벗어버리기도 했다)은 그가 1960년대를 견디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 차가운 얼음 속 뜨거운 불꽃처럼 살다가 스물일곱에 떠난 록밴드 `도어스`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 <br /><br />삽화/이찬욱  
▲ 차가운 얼음 속 뜨거운 불꽃처럼 살다가 스물일곱에 떠난 록밴드 `도어스`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

삽화/이찬욱

어쨌건, 미국인이었던 짐 모리슨은 프랑스 파리에서 죽는다. 시체 인수를 거부한 아버지 탓에 시신은 파리에 묻힌다. 그곳이 바로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도어스`의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가 짐 모리슨의 무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3~4분의 과정을 담고 있다. 배경음악으론 알비노니(Albinoni)의 `아다지오`(Adagio)가 비장하게 흐른다.

그 영화를 본 게 스물한 살 때였던가?

25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짐 모리슨의 묘지를 찾아가게 된 기자의 심정은 첫 키스를 앞둔 열일곱 소년처럼 떨리고 있었다. 숙소 인근 브레게 사방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페르 라셰즈역을 향했다. 역에서 10여 분을 걸어가니 묘지의 입구가 보였다. 초여름, 파리의 새파란 하늘에서 갑작스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처럼 어두워진 거리에서 심장은 더욱 세차게 뛰었다.

“문학과 영화, 음악이 없다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던 10대 소년이 자신의 우상을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만나게 된 것이다. 비록 짐 모리슨이 지상의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가슴 떨림은 제어할 길이 없었다.

  ▲ 프랑스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자리한 짐 모리슨의 묘지.  
▲ 프랑스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자리한 짐 모리슨의 묘지.

▲세상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엔 짐 모리슨 외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와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극작가인 동시에 배우로도 유명했던 몰리에르(Moliere)도 부침(浮沈)이 거듭됐던 고단한 생애를 그곳에 눕혔다.

페르 라셰즈는 규모 또한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소나기를 맞으며 3시간쯤을 헤매 다녔다. 그럼에도 묘지의 10%도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짙은 초록색 이끼가 낀 오래된 조형물들의 미적 완성도를 보자면 페르 라셰즈는 공동묘지라기보다 조각전시장에 가까웠다. 묘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사라졌던 태양이 어두운 하늘 구름을 헤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짐 모리슨의 묘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보다 작았고 의외로 초라했다.

1년이면 수만 명의 숭배자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은 무덤 앞에 놓인 수천 장의 낡은 쪽지가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심지어 크메르어와 스와힐리어까지. 짐의 죽음을 슬퍼하는 메시지는 수십 개의 언어로 적혀 있었다. 같은 대상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다.

`도어스`의 음악에 매료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은 짐 모리슨의 묘지 앞에서 금방 친구가 됐다.

이스라엘에서 온 두 명의 청년은 기타를 연주하며 `피플 아 스트레인지`(People are Strange)를 불러 참배객들의 박수를 받았고, 몸 곳곳에 피어싱을 한 네덜란드 여대생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웨이팅 포 더 선`(Waiting For The Sun)의 리듬에 맞춰 요정처럼 춤을 췄다.

노래와 춤으로 추모할 대상이 있는 그들은 어느새 `우리`로 변해 있었다.

기자 역시 페르 라셰즈에서 펼쳐진 `기이한 축제`의 일원이 돼있었다. 청춘의 열기로 뜨거워진 짐의 무덤 앞으로 잠시잠깐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그 바람에 실려 온 짐 모리슨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었다.

“열정을 버리지 않는 자에게 청춘은 영원하다. 해서, 나는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너희도 그런 삶을 살아라.”

  ▲ 밤이 내린 파리의 거리. 세련된 옷차림의 여성이 어둠 속에 서있다.  
▲ 밤이 내린 파리의 거리. 세련된 옷차림의 여성이 어둠 속에 서있다.

파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여행자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게 여행 패턴이다. 어떤 사람은 박물관을 둘러보고, 미술관을 방문하며, 오래되고 멋진 건축물을 만나는 `낮 관광`에 방점을 찍는다. 또 다른 부류는 `밤 여행`을 즐긴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안개 낀 낯선 골목의 분위기가 선물하는 이질적인 감정을 만끽하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낮`에 관해선 너무나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가이드북만 펼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게 `파리의 낮`이다. 해서, 기자는 정보량이 다소 적은 `파리의 밤`에 관해 잠시 이야기해볼까 한다.

◇ 파리의 청춘들, 센 강변에서 노상방뇨를

파리를 찾은 첫날 밤. 엄청난 시차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으로 뒤척이다가 결국은 호텔을 나섰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센 강의 검은 물결이 보고 싶어 강변을 향해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늦은 밤이었음에도 가슴 속 뜨거운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파리의 청년들이 센 강 둔치에서 맥주와 포도주를 병째 들이켜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 봐라.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선 노상방뇨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놀라운 건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낯이 뜨거워진 건 그들이 아니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기자였다. 이튿날 파리에 거주하는 지인을 통해 왜 그런 풍경이 반복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센 강변엔 공중화장실이 적어요. 게다가 모두 유료거든요. 술값을 아끼려고 카페가 아닌 둔치에서 맥주를 마시는 애들이 돈 주고 화장실을 가겠어요?”

  ▲ 낯선 외국인 여행자를 예쁜 미소로 맞아주는 프랑스 꼬마.  
▲ 낯선 외국인 여행자를 예쁜 미소로 맞아주는 프랑스 꼬마.

◇ 몽마르트르 언덕엔 올빼미가 산다

낮에는 힘없이 드러누워 있다가 밤이 되면 눈동자 번득이며 활동을 시작하는 게 비단 흡혈귀 드라큘라(Dracula) 백작만은 아니다. 밤의 커튼이 드리워져야 활기를 찾는 `올빼미족`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한국에도 흔하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가장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 몽마르트르 언덕 사크레쾨르 성당 주변이다. 계단에 앉아 도란도란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은 새벽 2시가 넘어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대를 향한 애정 어린 손길과 키스는 누가 보건말건 무시로 오간다. 맞다. 청춘이 사랑을 나누는데 공간이 뭐 중요하며,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덧붙여 중요한 정보 하나 더.

밤에 담배가 떨어져 곤란에 빠진 헤비 스모커나 포도주 한 병이 간절해 철문이 굳게 닫힌 슈퍼마켓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여행자가 있다면 아랍인이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을 찾으면 된다. 그들의 가게는 새벽까지 술과 담배를 판매한다.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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