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태국 ②

▲ 차오프라야강을 오가는 배에서 바라본 `왓 아룬`의 아름다운 풍경.
▲ 차오프라야강을 오가는 배에서 바라본 `왓 아룬`의 아름다운 풍경.

많은 돈을 쓰고 다닌다면 여행은 편해진다. 넓고 안락한 호텔에서 자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재료로 만든 희귀한 요리를 먹고, 버스나 기차가 아닌 기사가 운전하는 리무진에 올라 경치 좋은 곳을 돌아보는 여행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호사스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가능한 돈을 아껴가며 새로운 문물과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한다. 기자 역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면서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절약하는 여행자`에 가깝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 갔을 때도 “하루에 1만 원 정도로 이 도시를 즐겨보자`는 마음을 가졌다. 그때 겪은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가난한 연인들

5시간쯤의 비행 끝에 방콕에 도착한 첫날. 버스를 타고 카오산 로드로 가서 숙소부터 잡았다. 1980년대 한국의 여인숙 같은 허름한 곳이었다. 열대과일 썩는 냄새가 풍겨오는 골목 끝자락에 무너질 것처럼 자리 잡은 싸구려 숙소는 이름까지 작고 초라했다. `미니 게스트하우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 할머니의 키도 조그맣고, 방도 조그맣고, 오래된 목조건물이라 계단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 형편없는 숙소를 잡은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다. 왜냐? 저렴하니까. `미니 게스트하우스`의 하루 숙박비는 200바트(한국 돈 7천원).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골방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숙소 골목을 빠져나와 카오산 로드의 흥겨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느긋한 표정으로 오가는 세계 각국 여행자들을 구경하며 맥주에 싸구려 위스키를 섞어 마셨다. 그것만으로도 일상의 스트레스가 절반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밤이 깊어지니 피곤이 몰려왔다. `미니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 시간. 숙소 문을 밀고 들어가 낡은 계단을 오르다 젊은 태국인 커플과 마주쳤다. 둘 다 선량한 표정과 순수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방콕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건 백인 남성과 태국인 여성 커플이다. 방콕을 포함한 태국 대부분의 관광지엔 은퇴하고 태국에서 여생을 즐기는 60대 이상의 유럽인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지처 역할을 하는 태국인 여성과 함께 생활한다.

▲ 차오프라야 보트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 여행자들.
▲ 차오프라야 보트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 여행자들.

보기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커플들만 보다가 젊은 태국인 연인을 만나니 참 좋았다. 어디 먼 시골마을에서 방콕으로 놀러온 것인지 짐도 무거워 보였다. 환한 얼굴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커플의 방은 2E. 기자의 방은 2D였다.

그런데, `미니 게스트하우스`의 조악한 방음 시스템 탓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방 사이를 아주 얇은 베니어합판 하나로 막아놓은 구조라 옆방의 숨소리까지 들렸던 것이다. 자칫 트림이라도 하면 그 소리가 합판을 넘어갈 게 분명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옆 방 연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 나지막한 웃음소리, 심지어 입 맞추는 소리까지 모두 들렸다.

옛날 한국의 여인숙이 벽의 윗부분을 뚫어 형광등 하나로 2개의 방을 밝혔다던가. 그날 기자의 방 분위기가 딱 그 모양새였다.

도무지 민망해서 더 이상은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방을 나와 다시 카오산 로드로 갔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을 마시는데 이상하게 술맛이 썼다.

새벽까지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간 건 새벽 무렵이었다. 전날 밤 나의 고통과 고난(?)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찍 일어난 태국인 커플이 마당에서 인사를 건넸다. 환하게 웃는 그들 앞에서 기자 역시 웃을밖에 도리가 없었다.

간밤의 해프닝은 `싸구려 숙소가 선물한 색다른 경험이라 생각하면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 떠오른 게 신경림(81)의 시 한 구절이었다.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그렇다. 태국이건 한국이건, 그 연인이 부자건 가난하건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 차오프라야강을 오르내리는 크고 작은 배들.
▲ 차오프라야강을 오르내리는 크고 작은 배들.

▲저렴한 비용으로 더위 피하는 좋은 방법

방콕의 더위는 악명이 높다. 한국의 여름 날씨는 그곳에 비한다면 짜증스러운 것도 아니다.

끈적거리는 땀과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squall·열대지방의 세찬 소나기), 아스팔트를 녹일 것처럼 이글거리는 태양…. 이것들 모두가 방콕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다.

특히 카오산 로드에선 에어컨이 가동되는 식당이나 카페가 아니라면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전까지 더위를 피할 곳이 마땅찮다. 기자가 몇 차례 태국을 여행하면서 얻은 `더위 피하는 노하우` 하나를 살짝 알려줄까 한다.

카오산 로드에서 10분쯤 가면 `차오프라야 보트 선착장`이 있다. 말 그대로 차오프라야강(江)을 오르내리는 배가 승객을 싣는 곳이다. 시원한 강을 따라 1~2시간 정도 천천히 운행되는 배의 승선료는 겨우 15~25바트(500~800원). 그걸 타고 종점까지 쭉 가보는 거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배에 오르면 일단 선수(船首)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쪽엔 좌석이 비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전망도 거기가 훨씬 좋다. 게다가 깨끗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강물도 튀지 않는다.

▲ 태국 할머니가 차오프라야 선착장에서 승선권을 팔고 있다.
▲ 태국 할머니가 차오프라야 선착장에서 승선권을 팔고 있다.

그렇게 앞쪽 좌석만 확보한다면 호화로운 `보트 투어`가 부럽지 않다. 서울 한강 유람선이나 포항운하 유람선에 비하면 가격도 공짜에 가깝다.

그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강을 떠가다 보면 태국 동전에 선명하게 새겨진 `왓 아룬(Wat Arun)`의 거대한 석탑이 보이고, 왕궁 지붕도 보인다. 사원과 수상가옥, 높게 솟은 방콕의 마천루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저렴한 뱃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면 폭염의 오후가 끝나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루 1만원의 적은 비용으로 돌아본 태국이 그립다. 무지막지했던 방콕의 더위까지 그리울 정도다.

▲ 태국에서 마신 모히토(Mojito). 신선한 민트가 듬뿍 들어가 있어 청량감이 좋다.
▲ 태국에서 마신 모히토(Mojito). 신선한 민트가 듬뿍 들어가 있어 청량감이 좋다.

태국 여행에서 꼭 맛봐야 할 것들

태국 요리는 그 나라 사람들의 느긋한 성품과는 달리 향이 강하고, 자극적인 맛을 낸다. 팟타이, 카오팟, 솜땀, 톰얌쿵 등 이름도 재미있다. 해산물과 육류, 각종 향신료를 사용해 만드는 다양한 요리를 맛보는 건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의 하나다.

여기에 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등의 신선한 과일과 저마다 화려한 색깔을 뽐내는 칵테일도 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반가운 친구다.

◆태국 카페에선 싱그러운 칵테일 `모히토`를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이병헌이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잔 마셔야겠다”는 대사를 남겨 유명해진 칵테일이 바로 모히토다. 민트와 화이트 럼, 소다수와 설탕 등을 넣어 만드는 모히토는 특유의 초록 빛깔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화이트 럼의 양을 줄이면 술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즐길 수 있다. 특히, 태국에선 신선한 민트가 많이 생산돼 모히토의 향이 뛰어나다.

 

▲ 수상가옥에 사는 태국 소년이 차오프라야강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
▲ 수상가옥에 사는 태국 소년이 차오프라야강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

◆ 거리에서 맛보는 볶음밥과 볶음국수

적지 않은 여행자가 말한다. “태국이야말로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고. 기자 역시 이 의견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카오산 로드는 물론이고 관광지라고 이름 붙은 곳이라면 어디서건 즉석에서 볶음밥, 볶음국수, 과일 팬케이크를 만들어주는 노점을 볼 수 있다. 싼값으로 한 끼를 해결하려는 젊은 여행자들은 이런 태국 길거리 음식에 환호한다.

▲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여행자들로 가득한 카오산 로드의 한 카페.
▲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여행자들로 가득한 카오산 로드의 한 카페.

◆ 해변에서는 싸고 맛있는 생선과 새우를

푸켓, 코사무이, 코사멧, 크라비, 피피 섬 등 태국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지천이다. 새파란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다가 배가 고파지면 바닷가에 줄지어 늘어선 식당에 들어가 큼직한 새우나 바닷가재를 구워달라고 주문해보자. 그 감칠맛을 잊기 힘들 것이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열대의 생선들도 독특한 맛을 낸다.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하다.

글/홍성식기자

사진제공/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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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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