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태국 ③

▲ 세상엔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이 본 최고의 해변은 어디인가” 물을 때면 기자는 매번 똑같이 “태국의 피피섬”이라고 답한다.
▲ 세상엔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이 본 최고의 해변은 어디인가” 물을 때면 기자는 매번 똑같이 “태국의 피피섬”이라고 답한다.

여름도 끝자락에 이르렀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폭염과 폭우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는 먼 바다로 떠나는 꿈을 꾸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통유리와 자동차의 소음. 이는 도시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것들을 몰아내면 어떤 공간이 그려질 수 있을까? 아마도 푸른 파도의 나지막한 노래가 몸과 마음의 피로를 녹여주는 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기자는 그간 `아름다운 해변`이라 불리는 국내외 여행지를 여러 곳 돌아봤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 “네가 가본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야?”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잠시 후에 내놓기로 하고 먼저 기자의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몇 개의 해변을 말해볼까 한다.

▲ 낭만 가득한 석양… 인도의 베나울림 해변

일출이 희망과 다시 시작함의 은유라면, 일몰은 스산한 낭만과 적멸의 메타포다. 낙관적인 인간들은 일출에 감동하고, 비관과 냉소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몰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기자는 후자에 가깝다.

인도를 홀로 여행했던 10여 년 전. 석양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소문난 고아(Goa)에서 보름쯤을 머물렀다. 그 붉은빛이 “사람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든다”는 아라비아해의 석양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과연 그랬다. 거기 머문 보름 동안 해질녘만 되면 석양빛에 감동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고아의 해변들 중에서도 유럽 여행객 사이에서 인기 높은 안주나 해변이나 팔롤렘 해변보단 아직 개발의 손길이 덜 미친 베나울림 해변이 가장 좋았다. 거기서 5일을 묵었다.

20대를 인도에서 히피로 보냈다는 이탈리아 할머니, 프랑스 여대생 살리나와 함께 베나울림 해변의 모래밭에 앉아 아라비아해의 서쪽으로 까무룩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던 그날들.

그 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영혼까지 핏빛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다.

▲ 저물녘 해변의 석양 아래서 즐기는 식사는 더없이 낭만적이다.
▲ 저물녘 해변의 석양 아래서 즐기는 식사는 더없이 낭만적이다.

▲ 푸른 잉크를 쏟아 부은 듯… 아드리아해

동쪽으론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를 끌어안고, 서쪽으로 이탈리아를 품은 아드리아해. 그곳 물빛은 네이비블루 잉크 수십 만 병을 쏟아 부어 만든 것 같다. 그 역시 투명한 푸른빛으로 유명한 필리핀 비사야 군도(群島) 외딴섬 발리카삭의 바다보다 더 푸르렀다.

아드리아 바다의 푸른빛 아름다움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는 건 고풍스런 붉은색 지붕으로 축조된 동유럽의 집들이다. 야트막한 산에 올라 옅은 붉은색 지붕과 근사한 조화를 이루는 짙은 푸른색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낭만, 놀라움,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도트프린터의 소리를 내며 머릿속으로 `촤르륵` 지나간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최고의 `뷰포인트(view point)`는 크로아티아의 고도(古都) 두브로브니크다. 사람이 서넛밖에 없는 매끄러운 자갈 깔린 조그만 해변에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면 `행복의 절정`이 뭔지 실감하게 된다.

이 말이 과장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두브로브니크를 가보고도 그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아드리아해가 지구 위의 사파이어라면, 두브로브니크의 이름 없는 작은 해변들은 아드리아해가 선물한 보석이다.

이탈리아의 남부 해변도시 아말피와 포지타노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최고의 뷰포인트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도시.

절벽을 끼고 2차선 좁은 도로를 낡은 버스가 위태롭게 달린다. 그러나, 누구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엽서 같은 풍경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터뜨리는 감탄사는 동양인과 서양인, 백인과 흑인, 노인과 아이가 다르지 않다는 걸 그 길에서 알게 됐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포지타노의 한 레스토랑. 웨이터가 아일랜드 배우 콜린 파렐보다 잘 생겼다. 이탈리아는 그런 나라다. 아름다운 해변을 오가는 미남과 미녀들.

오른쪽에서 본 착한 사람이 왼쪽에서 본다고 나쁜 사람이 될 리 없다. 아드리아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보건, 서쪽에 서서 동쪽을 향해 눈을 맞추건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다시 만나고 싶은 바다 아드리아. 그리고, 두브로브니크 붉은색 지붕들.

▲ 기자가 만난 최고의 바다… 피피섬

이제 앞서의 질문에 답할 시간이 됐다. “당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어디인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별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태국의 피피섬 물빛을 잊을 수 없다”고.

인간의 눈으로 보는 바다의 빛깔은 그 아래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해와 동해의 바다 색깔이 다른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혹당하는 바다의 빛깔은 청옥색. 이른바 코발트블루 색채다. 바다가 그 빛깔을 띠기 위해서는 아래에 산호가 있어야 한다.

그 눈 시린 푸른색은 서로에게 심상한 `아주 오래된 연인들`까지도 낭만적 감상으로 내몰아 바닷가에서 정열적으로 입을 맞추게 할 정도다.

태국과 인도 사이의 바다인 안다만(灣). 그곳을 여행한 사람들은 안다만의 백미(白眉)로 피피섬을 지목한다. 피피섬 일대 바다는 왕조시대 청옥을 수만 보따리 빠뜨린 것처럼 맹렬한 코발트블루 색채를 띤다. 무성한 산호숲을 품에 안은 바다.

2006년과 2011년에 여행한 피피섬. 첫 번째로 그 섬을 방문했을 땐 태평양 일대를 폐허로 만든 쓰나미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이었다. 수십m의 파도에 휩쓸려 가버린 호텔과 집을 복구하며 땀을 흘리던 까만 얼굴의 태국인들을 기억한다. 그렇다. 피피섬은 바다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인간이 이어가야 할 삶의 소중함까지 기자에게 가르쳤다.
 

푸른 물결이 유혹하는 태국 해변들

누가 뭐라 해도 태국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파이어빛 바다와 백옥처럼 빛나는 모래밭에서 누리는 휴양이다. 여기에 각종 해양스포츠도 태국 해변을 찾는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선과 아찔한 절벽으로 가득한 수천 개의 섬이 손짓하는 나라. 물살을 가르며 제트스키를 타거나,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거나, 싱싱한 새우와 생선으로 만든 요리를 맛보거나….

태국의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아래 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세 곳을 소개한다.

◆ 태국에서 가장 큰 섬 `푸켓`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푸켓은 태국의 진주다.” 방콕에서 남쪽으로 891km 지점에 위치한 푸켓은 태국에서 가장 큰 섬이기도 하다. 일 년 내내 동서양 관광객이 몰려드는 해변은 에너지로 가득하다.

넓은 백사장과 얕고 완만한 경사의 바다는 수영을 즐기기에 최적의 여건을 제공한다. 지척에는 한국인들에게 인기 높은 피피섬이 있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국적인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높았다.

◆ 130개의 아름다운 섬을 만날 수 있는 `크라비`

태국 남부 크라비주(州)의 해양도시다. 푸켓에서 뱃길로 45㎞ 지점에 위치한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건기인 12월에서 3월까지다. 하지만 스콜이 잦은 9~11월에도 나름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13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크라비 군도엔 수백m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정글과 원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석회암 동굴도 멋진 볼거리다.

◆ 조용한 휴가를 즐기고 싶다면 `코사멧`

잔잔한 물결 일렁이는 바다와 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석양. 코사멧은 유명 휴양지의 시끌벅적함을 피해 조용한 휴가를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섬이다. 방콕에서 남동쪽으로 220km 가량 떨어진 코사멧은 `카오 렘 야-무 코사멧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19세기 발표된 태국의 서사시 `프라 아파이 마니(Phra Aphai Mani)`의 배경이 된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를 증명하듯 해변엔 서사시의 주인공인 왕자와 인어가 동상으로 서있다.

글/홍성식기자
사진제공/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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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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