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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화 편집부국장

정부는 내년도 우리나라 살림살이 규모를 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매년 전국 기초자치단체들 경제유발효과가 큰 대형 국비사업 예산 확보에 목을 맨다. 포항시의 가장 큰 국비사업으로 영일만대교를 꼽을 수 있다. 교량 길이 8.8㎞, 접속도로 9㎞, 총 사업비 1조7천700억원의 대형 국책사업이다. 애시당초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들여봤지만 역시나였다.

영일만대교는 사업이 구상된지 올해로 벌써 25년째지만 여전히 잠만자고 있다. 영일만대교는 지난 92년 초 포스코에서 발표한 `영일만 광역권 개발 기본구상`에서 출발했다. 서울대학교에 용역 의뢰해 만들어진 이 기본구상에는 영일만 해상도시(인공섬)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다. 영일만에 인공섬을 조성해 국제공항과 항만시설, 주거지역, 위락시설 등을 입주시키고 이 인공섬과 육지 양쪽을 교량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이 제안됐다.

영일만대교는 이처럼 포항의 새로운 희망으로 힘차게 출발했지만 그해 3월에 치러진 제14대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거용이란 비난에 시달렸다. 공교롭게도 총선에서 여당후보가 패배하며 출발부터 험난한 여정을 예고했다. 더욱이 영일만대교를 기획했던 고 박태준 전 포스코명예회장이 그해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과 정치노선을 달리한 죄로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며 영일만대교 구상도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박 전회장도 정계에 복귀하며 영일만대교 건설 계획도 되살아났다. 영일만대교는 이처럼 어렵게 희망을 되찾았지만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동안 경제성분석의 덫에 걸렸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SOC사업에 대한 적정성을 검토하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문민정부 출범한 이듬해 도입됐다. 예타 운용지침은 경제성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나 평가주체, 평가시점이나 방법 등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 민주당 집권 10년동안 서해대교를 비롯한 호남지역의 왠만한 섬이면 교량이 가설됐다. 여기에 적용된 예타기준은 국토균형발전론이었다. 반면 영일만대교에는 경제성분석의 잣대가 적용돼 매번 사업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영일만대교는 포항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으로 기회를 얻었다. 매번 족쇄가 됐던 경제성분석 대신 국토균형발전 명분으로 이명박 정부 30대 선도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됐다. 순항할 것만 같았던 영일만대교는 여당내 친이, 친박 계파 싸움의 희생양이 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친이계 인사들이 대거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덩달아 영일만대교 사업은 아예 말도 꺼내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영일만대교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와 국토부 타당성조사까지 마친 상태지만 지난해부터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가 진행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SOC사업 감축 방침으로 미뤄 볼 때 역시 수상쩍다. 또다시 경제성 부족 등 족쇄가 채워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일만대교는 이처럼 국내 정치 상황에 휘둘려 왔고 상대적으로 포항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정치에 대한 소외감과 불신, 배신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영일만대교는 북방물류거점항만으로 건설된 영일만항의 남쪽 통로이다. 영일만항과 포항철강산업단지, 울산공업단지, 부산항을 연결하는 물류수송 기능이 막중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발족시킨 데 이어 6, 7일 러시아를 방문,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극동지역 개발과 북극항로 개척을 협의하는 등 북방외교에 힘을 쏟고 있다.

영일만항은 러시아와 한국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문 대통령이 공을 들이고 있는 북방외교를 성공시킬 수 있는 교두보이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정치논리나 지역차별성에서 벗어나 영일만대교의 가치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