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필자의 취미생활 중 하나는 승마이다. 이 번 달로 배운지 1년 되는 초보자이지만, 지난주부터는 원형 연습장에서 나와, 승마장 마당에서 말을 타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는 필자는 두 번째로 승마장 마당에서 말을 탔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고분고분 하던 말이 갑자기 필자의 말을 안 들어서 몹시 힘들었다.

말은 몹시 겁이 많고 예민한 동물이라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말이 놀라면 갑자기 풀쩍 뛰거나 달리거나 한다. 이 때, 기승자가 말에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말에서 떨어지기가 십상이다. 말 등은 생각보다 높기 때문(대개의 말은 등 높이가 150cm 이상이다)에 갑자기 떨어지면, 몸에 충격이 크고 심하면 팔이 부러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승마장 사장님은, 웬만해서는 잘 놀라지 않는 말을 필자에게 타게 했다. 이 말의 이름은 찰리인데, 빨간 털에 약간 마른 못생긴 말이다. 필자가 초-초보자 시절, 즉 말을 배운지 3개월 정도 됐을 때 처음 이 말을 탔다.

처음 찰리를 탔을 때 참 고생을 했다. 말이 천천히 걷기(평보)를 시작해야 하는데, 아무리 가라고 지시를 내려도 걷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입으로 출발 신호를 주고 옆구리를 발로 차도 전혀 반응이 없다. 사장님은 기승자가 초보자라고 깔보고 간 보는 거라면서, “채찍으로 세게 때리세요!”라고 말한다. 필자는 동물을 때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채찍질을 심하게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날은 자꾸 멈추는 말을 가게 만드는 데에 레슨 시간을 다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말 타는 실력이 늘어서 이제는 찰리를 잘 탈 수 있게 됐다. 첫 날, 마당에서 찰리는 꽤 잘해줬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에는 찰리가 마당을 한 바퀴 정도 돌다가 자꾸 멈추었다. 한 번은 너무 짜증나서 필자가 신경질을 부리며 찰리를 채찍으로 두 번 연속 때렸다. 그러자 찰리도 뒷발로 나무 울타리를 뻥 찬다. 저도 같이 필자에게 짜증을 낸 것이다. 그 뒤로도 찰리는 자꾸 뒷발질을 하며 짜증스러워 한다. 이럴 때마다 `아! 이 말은 왜 이렇게 내 말을 안 듣나`하는 생각만 든다.

말에게 구보를 시키려고 하니 역시 제대로 되지 않는다. 조금 뛰다가 자꾸 멈춘다. 승마장 사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찰리를 타보라고 시켰다. 그러자 찰리는 마치 딴 말이 된 것처럼 사뿐사뿐 구보를 매우 잘 한다. 머리도 예쁘게 구부리고 배가 적당히 들어간 것이 몸매도 아름다워 보인다. 필자가 알고 있는 찰리가 아니라 다른 말인 것 같다. 필자가 아는 찰리는 빨간 털을 가진 좀 비루하게 생긴 못난 말이다.

사장님은 필자의 고삐 잡는 방법을 지적한다. 팔을 너무 앞으로 뻗고 팔이 경직되어 있어서 재갈이 말의 입을 자꾸 당긴다는 것이다. 이 날 필자는, 말이 고삐를 자꾸 당겨서 말의 입이 아프지 않게 팔을 앞으로 뻗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고삐의 유연성이 떨어져서 말의 입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이다. 말은 입이 아프면 머리를 심하게 흔들거나 멈추거나 한다. 이것을 모른 채 자꾸 멈추지 말고 가자고 옆구리를 차고 채찍으로 때리고 했으니 말이 신경질을 낼 만도 하다.

결국, 이 날 즐겁게 말을 타지 못하고, 말과 신경전을 벌인 것은 모두 필자의 탓이었다. 말이 나쁜 말이고 게으른 말인 탓은 아니었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 탈 때는 딴 말처럼 움직였고, 심지어는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 날 필자가 즐겁게 말을 타고 싶었다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나?` 하고 말 탓을 하기 전에 필자의 말 타는 법에 대해서 신경을 썼어야 했다.

“이 세상에 나쁜 말은 없다, 말을 못 타는 기승자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