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지진으로 포항시가 고통받고 있다. 건물들이 부서지고, 삶터를 잃은 이재민들이 영하의 추위에 대피소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수학능력시험 고사장들이 파손되어 수험생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에 정부는 수능시험을 일주일 연기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가적 재난사태인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서울에서도 지진이 느껴졌다. 원고를 쓰려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책상과 방바닥이 기우뚱 흔들리는 것을 체감했다.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도 깜짝 놀랐는데, 진앙지인 포항 시민들의 충격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가늠조차 못하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루빨리 피해복구와 보상이 이뤄져 시민들의 삶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추가 지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도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연의 일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법이므로, 인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대비한 후 자연의 너그러움을 바라야 할 것이다.

아파트, 공공기관, 편의점, 카센터 등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지진이 발생한 순간의 긴박함이 서늘하게 피부로 와서 닿는다. 땅이 흔들리고 진열대가 넘어지고, 천장과 벽이 무너져 내리는 중에도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피했고,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이웃의 안전을 먼저 챙겼다. 포항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이웃을 향한 배려와 희생,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건물이 마구 요동치는 상황에서 산후조리원 직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신생아들부터 지켰다. 아기들이 누운 침대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붙잡고, 한 명 한 명의 아기들을 온몸으로 감싸 안아 낙하물과 충격으로부터 보호했다. 자신이 다칠 수 있는데도 자기 몸을 기꺼이 방패삼아 내어주었다.

진앙지와 가까워 지진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은 한동대학교인데, 건물 외벽이 붕괴되는 위험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함께 대피하던 중 다리 힘이 풀려 넘어진 청소 아주머니에게로 달려가 일으키고 등을 쓰다듬으며 “어머니, 괜찮아요”라고 다독여주었다. 한 커피전문점의 사장은 손님들과 직원들을 먼저 다 대피시키고 가장 마지막에 건물을 빠져나왔다. 회사원들은 자신보다 동료 직원부터 감싸 안았고, 유치원과 학교에서 교사들은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대피하게끔 인솔했다.

시민의식은 이토록 성숙했는데 관료와 정치인, 종교인, 기업가 등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의식은 속된 말로 너무나 후졌다.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건물은 국내 전체 건물의 7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진작 법제화했어야 하고, 법 제도가 아니더라도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했어야만 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며 헛소리를 해대는 정치인, “종교인 과세를 하려니까 포항에 지진이 난 것”이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목사는 이 땅에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추방시켜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이웃의 아픔에 대한 최소한 공감과 이해는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걸 못하는 이들이 사이코패스다. 격리조치가 필요하다.

시민들은 이미 보여줬다. 더 강력한 지진이 오더라도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나`보다 `우리`를 먼저, `혼자`보다 `함께`를 먼저 실천하며 재난을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증명해보였다. 이제 국가와 `국가`를 자처하는 사회지도층들이 응답할 차례다. 국민이 앞서가는 만큼 국가도 열심히 쫓아와주길 바란다. 지진도 흔들 수 없는 우리의 삶을 때로는 `국가`라는 이름의 당신들이 흔들었다. 이젠 같이 발맞춰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