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포항지진`여파로 포항지역 전세파동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포항시내 대다수 원룸건물에 적용된 필로티건축물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탈원룸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진공포를 호소하는 원룸 세입자와 임차인 사이에 계약 해지를 놓고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관리인 측
“계약 기간까지 월세 내놔야”… 법정소송까지 감수
보수·보강 기간, 붕괴 피해보상 책임도 보장 못해
세입자 측
세 부담 하면서 다른 주거지로 옮기기 만만찮아
“사람 목숨 달렸는데 계약 이행 타령인가” 분통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세입자들에게 일부 건물주들이 계약 기간을 명시, 법정소송까지 감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 임대·임차인 간 마찰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21일 장량동주민센터에 따르면 지난 15일 강진 이후 이어진 여진에 접수된 장량 일대 지진 피해 건수만 2천여 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19일과 20일 각각 규모 3.5, 3.6의 여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원룸촌 내 세입자들의 불안감과 추가 피해에 대한 우려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구 지역 원룸촌 세입자들은 원룸 관리인에게 연락해 월·전세 계약 해지를 문의했으나 `계약 기간까지 월세 납입을 해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장량 인근에 마련된 대피소조차 없는 상황에서 원룸 세입자들은 지진의 영향을 벗어나 타 지역으로 이사를 원하지만 전세금 반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머물고 있던 원룸의 세를 내면서 다른 주거지를 구해 이사하고 싶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세입자들의 상당수가 지진 불안 때문에 인근 친인척이나 지인의 집으로 임시 거처를 옮겨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인조차 없는 타향살이 세입자들은 막막한 심정이다.

직장인 최모(29·경북 안동)씨는 “직장 때문에 포항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흔들리는 원룸에 머물다가 객사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다른 곳에 방을 구하려 해도 이중 월세 부담 비용이 힘들어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포항을 떠날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세입자들은 파손된 원룸에 대한 보수·보강을 건물주 측에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건물 파손 정도에 따라 안전도 검사가 차례대로 진행돼 이후 원룸의 보수·보강 시일 또한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세를 받겠다는 뜻만 고수하는 건물주의 입장에 세입자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세입자 정모(45·북구 장성동) 씨는 “건물 보수도 늦을 수 있고, 이곳에서 머물다가 다치거나 죽으면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하는데 사람 목숨을 몇십만 원이랑 똑같이 생각하는 것 아니냐”며 “세입자들에게 계약 조건만 들이미는 행태에 몹시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포항 북구의 한 원룸촌 관리자는 “강진 이후 세입자의 계약 해지, 보수 등의 문의와 항의를 받는 상황이지만, 건물주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접점이 없다”며 “건물 붕괴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도 답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이나 일본은 지진보험 의무가입, 강제특약을 각각 이행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천재지변에 대해 건물주가 세입자 피해를 보상하라는 명백한 판례가 있어 건물주들은 보험을 필수로 가입하고 있으며, 보험의 종류도 다양해 인명이나 건물뿐 아니라 물건에 대해서도 세분화되어 보상받는다. 그러나 경주와 포항 강진을 겪은 한국은 주택화재보험 중 지진특약 가입률이 1%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8년 동안 거주했던 김대희(30·대구)씨는 “일본은 주거 임대 형식이 월세가 많은데 지진으로 피해가 발생할 때 큰 재난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작게는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토록 권유해 보험사로부터 세입자에게 보상을 하게 한다”며 “지진 피해에 대해 임대·임차인 간 보상과 책임 소재가 분명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지진에 대한 대처가 상당히 미흡한 수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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