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기아리 전투` 심상대 지음·예옥 펴냄장편소설·1만3천원

세상과 인간사의 내밀한 풍경을 섬세한 문체와 드라마틱한 문장으로 묘사해온 소설가 심상대(57)가 중세로 관심을 돌렸다. 최근 출간된 `앙기아리 전투`는 그 `관심`과 고심의 결과물로 읽힌다.

`앙기아리 전투`(Battaglia di Anghiari)는 1440년 6월 피렌체 공화국이 이끄는 이탈리아 동맹군과 밀라노 공국군 사이에 벌어진 싸움이다. 이 전투는 이탈리아 중부에 대한 피렌체의 지배권을 지켜내며 피렌체의 승리로 끝이 난다.

현재는 소실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묘사된 것으로도 유명한 앙기아리 전투. 양국 군인 수천 명이 투입된 이 전쟁은 마지막 날까지 밀고 밀리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지만, 단 한 명만이 전사했다는 후일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심상대는 이런 `간략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대폭 투여해 비극적 서사의 미학을 축조해냈다. 심 작가가 그간 추구해온 `극단적 예술중심주의`의 완결판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름다운 한 소녀가 보티첼리의 작품 `봄`에 묘사된 90여 종 꽃 가운데 33종의 꽃을 지하실 벽에 그리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늙은 교수 하나는 영원히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 믿었던 여인이 정신병원에 갇혀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인물은 소설가로 등장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심상대는 독자들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벽화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마키아벨리 시대의 피렌체로 데려간다.

`앙기아리 전투`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별개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 삼아 이를 유기적 의미망 안에 묶어내는 심상대의 현란한 직조 솜씨로 빛난다.

소설가의 능력은 `상상력의 미학적 완성`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다. 이 명제 아래서 보자면 심상대의 이번 장편이 지닌 미학적 완성도는 발군이다.

심상대의 지난 작품 `나쁜 봄`에 이어 `앙기아리 전투`까지를 꼼꼼히 읽은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심상대 작가의 미에 대한 추구는 이제 예술지상주의와 유미주의를 넘어 `순정한 예술주의`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주의란 예술을 신념의 차원에서 존중하고 집중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앙기아리 전투`의 마지막 장. 심상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전 생애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또 다른 사람이 지구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령부득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책을 펴드는 수밖에 없다.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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