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터키 ④

▲ 무슬림 예배당인 모스크는 터키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다.
▲ 무슬림 예배당인 모스크는 터키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다.

또 1년이 갔다. 한 해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이들은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에 매달린다.

초등학생이 연주하는 단조로운 피아노곡 같은 지루한 날들을 살고 있는 기자 또한 `좋았던 과거`를 자주 떠올리는 요즘이다.

몇 해 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나라 터키에서 한 달쯤을 보냈다. 그중 보름 이상을 이스탄불에 머물렀다. 추억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어젯밤. 터키 여행 때 쓴 일기를 뒤적이다가 혼자 웃음 지었다. “저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구나”라는 혼잣말을 하며.

2017년의 막바지. `현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 해묵은 일기의 몇 부분을 공개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2018년이 목전이다. 내년엔 여행 외의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해장국 없어도 이스탄불은 즐거운 도시

터키 여행일기의 첫 부분은 아시아에서 출발해 동유럽을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과 느낌을 적고 있다. 불면에 시달리는 어제오늘과 달리 그곳에서의 편안했던 잠도 기록돼 있다.

`태국 방콕을 출발한 비행기가 우크라이나 키예프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로의 비행까지는 4시간쯤이 남아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공항 안을 서성거렸다.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우크라이나.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공항의 여성 보안요원은 패션모델처럼 늘씬하고, 스낵바에서 맥주를 서빙하는 종업원까지 푸른 눈동자에 금발이 눈부셨다.

대기 시간은 빨리 흘렀다. 마침내 키예프공항을 출발한 에어로스비트 항공기는 2시간 15분만에 나를 옛 동로마제국의 수도에 내려놓았다.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띈 풍경은 이슬람 예배당 모스크의 둥근 지붕들이다. 한두 개가 아니고, 수십 수백 개였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이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이스탄불과 이전 여행지 동남아시아의 시차는 4시간. 한국과는 6시간이 차이 난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몸은 그 간극을 이기기 힘들었는지 자정이 되기 전 잠들었다. 이스탄불의 밤 12시는 방콕이라면 새벽 4시, 한국이라면 새벽 6시다.

낯선 곳에선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내가 단 한 번도 뒤척이거나 깨지 않고 죽은 듯 잤다. 꿈 한 조각 없는 깊디깊은 잠이었다. 이슬람국가 터키에서의 잠은 달콤했다.

깨어나 도미토리 숙박비 13유로(약 1만7천원)에 포함된 아침을 먹었다. 오이와 토마토, 치즈와 빵, 삶은 달걀과 각종 과일잼, 오렌지 주스와 우유, 시리얼과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 올리브, 커피와 홍차…. 북엇국이나 생태찌개 따위의 해장국이 없어도 좋았다. 사람은 어디서건 적응하며 살 수 있는 동물이고, 여행은 그 적응력을 단련하는 시간이 아닌가.`
 

▲ 관광지에서 여행자에게 터키 국기를 판매하는 상인.
▲ 관광지에서 여행자에게 터키 국기를 판매하는 상인.

▲그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터키에 도착한 후 맞은 첫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 철없는 아이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낯선 공간의 탐험`이라 불러도 좋았다. 여행일기에는 즐거웠던 거리 탐험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주말을 이스탄불에서 보냈다. 옛날, 아니 아주 옛날도 아니다. 작년 겨울만 하더라도 내가 튤립 가득한 이 고풍스런 도시에서 주말을 보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의 생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도 내일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드라마틱하고 재밌는 게 인생이 아닐까.

토요일 저녁엔 옛 직장 동료와 만났다. 서울을 떠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결혼해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유쾌한 여성. 같은 회사를 잠시 함께 다녔다는 인연만으로 그녀는 내게 한국식당에서 소주와 불고기, 냉면을 사줬다.

짐작하다시피 외국에서 먹는 한국 음식은 비싸다. 소주가 한 병에 1만5천원이니. 식사비가 20만원 가까이 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별로 해줄 게 없었다. 마르마라(Marmara) 바다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빌라에 산다는 옛 동료의 삶이 앞으로도 웃음으로 가득하기를 빌어주었을 뿐.

일요일 밤엔 오만가지 국적의 사람들이 넘쳐나는 술탄아흐멧 광장과 공원, 이스탄불 유럽 지구에서 아시아 지구로 건너가는 배를 타는 항구, 어른 팔뚝만한 도미가 가지런히 진열된 생선시장, 향기와 색깔로 휘황찬란한 향신료 장터를 홀로 돌아다녔다.

점심으로는 터키식 패스트푸드인 양고기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을 먹었기에 저녁은 해산물을 택했다. 싱싱한 생선은 소금 외엔 아무 양념을 더하지 않고 구웠는데도 혀를 놀라게 할 만큼 맛있었다.

날생선을 절인 요리와 초록빛 해초무침도 입에 딱 맞았다. 수십 년 전 서울 중심가를 운행했다는 전차와 유사한 이스탄불의 트램(노면전차)을 타본 것도 즐거웠다.

영화배우 말론 브랜도를 닮은 흰 수염의 할아버지가 운전하고, 조지 클루니와 판박이인 젊은 남자 차장이 차비를 받는 버스도 탔다.

대다수의 터키 남자들은 건장하고 잘 생겼다. 겨우 거리와 시장을 돌아보고 대중교통에 올라 도시 외곽을 구경했을 뿐인데도, 하루 종일 내 입가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새로운 경험. 인간이란 그 경험 속에서 커가는 것이다.`
 

▲ 이스탄불 거리를 오가는 빨간 노면전차는 재밌는 볼거리다.
▲ 이스탄불 거리를 오가는 빨간 노면전차는 재밌는 볼거리다.

▲ 어느 곳에서건 평화로운 꿈을 꾸는 새해이길

생의 모든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지구 위에 없다. 많은 이들이 지지부진한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근사하고 멋들어진 `또 다른 삶`을 꿈꾼다.

낯설고 먼 곳으로 훌쩍 떠나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콧노래 흥얼거릴 수 있는 여행 역시 그런 욕망이 반영된 행위다. 그러나 마음먹은 시간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어떤 곳으로건 훌쩍 떠날 시간적·금전적 여유를 모두 갖추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본 터키의 시골마을이 떠오른다.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새해엔 우리가 어디에 있건 그 풍경을 닮은 평화와 행복만이라도 꿈꿀 수 있었으면.

 

▲ 터키 재래시장에선 다양한 색깔의 향신료들이 판매되고 있다.
▲ 터키 재래시장에선 다양한 색깔의 향신료들이 판매되고 있다.

터키여행,
이것만은 꼭 해보자

여행지에서라면 평소에 해보지 못한 것들을 용기 내서 해볼 수 있다.

한국에선 엄두도 내지 못할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해변을 걷는다든지, 남들이 모두 일하는 낮 시간에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고 흥얼거리며 노래 한 곡을 불러본다든지, 높은 산에 올라 아이처럼 돌아올 메아리를 기다린다든지 하는 일들.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꿈꾸는 것들은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소심했던 이들은 매일 같이 비슷한 일만이 일어나는 생활의 공간을 떠나있음에 사소한 일탈을 시도하기도 한다. 사실 그런 것이 바로 여행의 재미다.

터키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흥미롭고 독특한 경험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여행자라면 아래 정보를 참조하면 된다.

◆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 해보기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슬람 예배당 모스크와 숯불 위에서 연기를 피우며 맛있게 익어가는 각종 케밥, 유쾌하고 웃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갈라타 다리`다.

카라쾨이 지역과 에미뇌뉘 지역을 가로지르는 갈라타 다리 위에는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낚시꾼들이 가득하다.

먹다 남은 빵이나 과자를 미끼로 조그만 물고기를 낚는 이스탄불 사람들은 관광객과 쉽게 친구가 된다. 자신의 낚싯대를 빌려주거나 잡은 고기를 나눠주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제법 큰 숭어를 잡는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 터키식 패스트푸드를 판매하는 식당. 저렴하고 맛있는 것들이 많다.
▲ 터키식 패스트푸드를 판매하는 식당. 저렴하고 맛있는 것들이 많다.

◆ 터키 동부에서 친절한 쿠르드족 만나기

터키 동부지역에는 적지 않은 쿠르드족이 살고 있다.

종족제 사회를 구성해 생활하는 쿠르드족은 20세기 초반부터 정치적 문제 등으로 터키 사람들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지만,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친절하다.

이란이나 아르메니아에 접한 국경에서 만나는 쿠르드족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을 귀한 손님으로 맞이한다.

이는 이슬람의 전통이기도 하다. 조그만 시골 식당이나 카페에서 음식이나 홍차를 대접받는 것은 흔한 일이다. 조금 더 친해진다면 집으로 초대받아 쿠르드족 전통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 혀를 녹일 듯 달콤한 터키 디저트 맛보기

달콤한 음식은 때때로 삶의 에너지가 돼준다. 대부분의 나라엔 식후에 먹는 달콤한 디저트가 있다.

터키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건 겹겹의 얇은 빵 속에 견과류를 넣은 바클라바(baklava).

이 터키식 디저트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만나면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잠시 잊게 된다.

터키의 대도시는 물론 소읍에도 달콤한 빵과 과자를 맛볼 수 있는 디저트 가게가 한두 개는 꼭 있다.

모양도 깜찍하고 예쁜 터키 디저트를 처음 본 날. 기자는 너무 많은 디저트를 먹는 바람에 저녁 밥맛까지 잃기도 했다.

사진제공/류태규

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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