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게임을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라고 한다. `양극정치`의 올무에 단단히 걸린 우리 정치사(政治史)는 죽고살기 식 극한투쟁과 저급한 복수혈전이 반복되는 최악의 제로섬게임 역사다. 주야장천 흑백논리가 난무하고 유치한 청백전이 펼쳐진다. 승자독식(勝者獨食) 정치야말로 이념과잉의 폐해에 찌든 우리 정치의 치명적인 고질병이다.

`중도정치`를 지향하는 또 하나의 정치실험이 펼쳐지고 있다. 중도신당 `바른미래당`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은 바른정당의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지난 2016년 총선 전 만들어진 국민의당은 다당제 흐름을 생성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만들어진 바른정당이 그런 기류를 가속화시켰다.

우리 정치의 다당제 현상을 유럽 선진국에서 발전돼온, 시민여론의 다양성을 충실히 담아내는 정치제제로의 전환 징조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극한정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일정부분 신선한 희망을 준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장미대선을 치르는 동안 전래적 폐해에 갇힌 허울뿐인 그 명분의 부실은 알몸을 드러냈다.

지역정치의 타파와 `탈이념`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철수는 정계에 들어온 몇 년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호남정치의 볼모가 되어 있었다. 그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한동안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대표직`까지 내던지며 족쇄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몸부림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바른미래당`으로 가는 길목에 대들보로 서 있는 유승민의 존재는 결코 만만치 않은 함의를 지닌다. 때로 독특한 그의 행동양식을 오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정직한 `개혁` 마인드는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원내대표로서 외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고백이 그의 인생을 바꾼 일도 이제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읽어야 맞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새로운 정치지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미 중상을 입었다. 바른정당이 먼저 쪼개져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국민의당도 반으로 동강났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오랜 양극정치 세력의 인력(引力)은 아직도 가공할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을 함께 했던 다수의 정치인들이 다시 이념의 커튼 속으로 달아났다.

안철수는 길을 정했다. 이제 `바른미래당`의 그림을 어떻게 그려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큰 짐이 유승민 앞에 놓였다. 기성 정치권은 한국정치사에서 명멸한 제3정당의 실패 망령을 끊임없이 덧씌우려 할 것이다. 제3지대를 한 뼘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지독한 이기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유승민은 아직 TK(대구경북) 민심으로부터의 담금질이 끝나지 않았다. 장구한 세월 `수구꼴통` 정서 속에 살아온 일부 민심은 여전히 그를 `배신자` 프레임에 가둬놓고 있다. 벌거벗겨져 황야에 내동댕이쳐진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계곡을 살아서 건너겠다”는 그의 약속은 “이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는 안철수의 다짐만큼 절절하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또 다른 길은 더 험준할 것이다. 유승민의 성패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낡은 이분법에 신물이 나 길을 잃은 민심을 담아내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나는 중도성향`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줄곧 50%를 넘나든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정치의 병폐 속에 답이 있다. 그 저열한 `제로섬게임` 풍토를 씻어내는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허구한 날 쓰레기통 엎어놓고 지지고 볶는 정치패턴부터 폐기처분해야 한다. 시대에 맞는 왕성한 소통의 리더십으로 향기로운 미래를 펼쳐내는 감동적인 중도실용의 `바른미래`를 개척할 책임이 오롯이 유승민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 크게, 그리고 멀리 보고 다르게 해야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