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지난 2월 19일 교육부 주최 공청회에서 발표된 `2021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출제범위(안)`에 따르면 이과학생들이 치르는 수학 `가형`에서 `기하`가 빠져 있다. 이에 국내 기초과학계를 대표하는 단체 가운데 하나인 `대한수학회`는 수능 출제범위에 `기하`를 반드시 포함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그들의 주장은 간명하고 실용적이다.

“이공계 진학 희망자에게 기하는 필수기초 교과목이며, 인공지능과 3차원 프린팅, 자율주행자동차,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등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신기술 개발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핵심 분야다. 이공계 기초과목인 수학에서 기하가 차지하는 비중을 간과(看過)하여 미래 이공계 인력의 기초실력 배양과 역량강화를 위한 노력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수학에서 기하를 배제함은 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마저 불용(不容)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피타고라스 이후 서양철학과 수학에서 기하학은 지식과 교양의 첫 번째 교과목이었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학당`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이외에도 기하학의 대가인 유클리드와 천동설의 이론적 완성자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려져 있다. 고전 그리스 시대에 철학과 수학은 한 몸으로 세상과 우주의 질서와 원리를 현현했다.

어디 그뿐인가. 중세유럽 대학은 문법, 수사, 변증의 트리비움(Trivium)과 산술, 기하, 천문, 음악의 크드리움(Quadrium)을 필수적인 교양 교과목으로 삼았다. 전자의 인문교양과 후자의 자연교양을 습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학생들은 신학, 의학, 법학, 철학 등의 전문영역을 섭렵할 수 있었다. 그들 양자 (兩者) 일곱 교과목을 이른바 `자유 7학예 Sept Ars Liberaux`라 불렀다. 오늘날 인문학의 영어표기 `Liberal arts`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지리상의 발견과 계몽주의, 산업혁명과 자유민주주의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도 기하의 중요성과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고도로 발전한 자연과학과 그것에 기초한 공학의 성장은 기하학에 힘입은 바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기초과학이 취약한 대한민국에서 이번에 기하를 수능에서 제외한다면 우리는 더욱 뒤처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한자와 한문을 모르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의 문장 해득능력이 나날이 추락하는 것을 우리는 오늘도 확인한다. 기하도 배우지 않고 대학에 들어와 다시 기하학을 공부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 자칭(自稱) 국보 양주동 선생의 글 `몇 어찌`를 읽고 소리 내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형이 학교에서 받아온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인 듯하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漢學)을 배우던 선생이 읍내로 신학문을 익히러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전혀 새로운 과목과 만나게 된다. `기하(幾何)`다. 대체 이것이 무슨 과목일까, 곰곰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그 의미마저 생소하게 다가온 `기하`라는 교과목.

선생은 어릴 적부터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現)`을 금과옥조로 삼아 공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읽고 또 새겨도 그 의미가 끝내 와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다 못해 선생은 한밤중에 읍내로 수학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의 물음이 흥미롭다.

“선생님, 대체 `몇 어찌`가 뭡니까?!”

몇 기, 어찌 하로 음과 뜻을 풀면서 질문했던 까까머리 땅꼬마 양주동 선생의 모습이 떠올라 홍소(哄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아에서 근대학문을 정립한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기하의 의미를 고전 한자에서 찾아내려 했던 한학소년 양주동. 그렇게 우리에게 기하는 어렵고 생경하게 다가왔다. 이제 다시 그런 희극적인 일화(逸話)가 벌어지지 않기 바란다. 대학은 모름지기 이렇게 주장해야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