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미국 연예계에서 출발한 미투(Me too)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뜻밖에도 우리나라에서 권력기관이라 불리는 검찰조직에 근무하던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검찰 간부, 원로시인, 원로 연극인, 중견배우이자 교수 등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권위와 권력으로 억압한 상태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일삼은 이들을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인 혹은 성공한 사람들이 잇따라 성추문에 휩싸이며 추락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 전통적인 남존여비 문화가 성차별적인 사회문화로 굳어진 데 따른 부작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해부터 문인들의 성추행의혹으로 시끄러웠던 문단이 미투운동에 본격적으로 휩쓸리게 된 것은 지난 해 12월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리고 난 뒤부터다. 시 `괴물`은 문단의 성희롱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최 시인은 `괴물`에서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중략)….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후략)” 가슴 서늘하게 만드는 독설이자 신랄한 고발장이다.

배우 김지우도 손바닥에 `ME TOO`라고 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영화계 미투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17살 때부터 방송 일을 시작하면서 오디션에 갈 때마다 혹은 현장에서 회식 자리에서 당연하듯이 내뱉던 남자·여자 할 것 없는 `어른`들의 언어 성폭력을 들으면서도 무뎌져온 나 자신을 36살이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면서 “당신네 가족이 있는 것처럼 당신들이 유희하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엄마, 딸, 누나, 동생 가족”이라고 꼬집은 뒤“(미투운동을) 마음을 담아 지지한다”고 전했다. 성폭력에 무뎌진 사회분위기가 더 큰 문제란 점을 제대로 짚고 있다.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개그계도 미투 동참할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화제다.

청원자는 한때 남자 개그맨으로 지냈다며 개그계의 성희롱 실태를 적었다. 2008년부터 2009년 초까지 대학로 Xxx홀에서 신인 개그맨으로 지냈다고 소개한 그는 여자 개그맨들에 대한 성희롱 사례로 “`너 찌찌 색깔은 뭐야?`이딴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강해야 살아남는다`고 믿던 여자 신인 개그맨들은 `갈색인데요`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쳐야만 했다”면서 “실제로 어떤 여자 개그맨은 남자 선배 5명이랑 자고 방송 나간 적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당시에는 개그맨에 대한 꿈이 너무 컸기 때문에 성희롱적인 발언, 폭행 등 당연하게 버텨야 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잘못된건 밝혀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면서 “개그계에도 미투 바람 불어서 앞으로 이런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글을 맺었다.

이제 세상을 뒤덮는 미투운동의 열기에 힘입어 사회·경제적 권력이나 성차별적 권력의 억압으로 다가오는 부조리한 성폭력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에 차별적인 사회의 편견에 맞서 미투운동의 선두에 선, 용기있는 여성들에게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벗어나 자유로워지자고 노래한 박노해 시인의 시를 전함으로써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나의 행복은/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나의 불행은/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행복은 비교를 모른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