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공방 -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 탐방 (1) 임향순

▲ 임향순 작가

살고 싶고 가고 싶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내일 우리가 살고자 하는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에 대해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는 유사한 해답을 제시한다.

포항시가 원도심 일대의 빈 점포를 활용해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조성한 꿈틀로엔 지난해 6월부터 23명의 예술가가 입주해 있다. 이 예술가들의 전문 분야는 공예, 도예, 음악, 공연, 조각 등 다양하다. 이 새로운 입주민들은 포항의 경제·문화의 중심지였으나 도시계획변화 등에 따른 도심 공동화로 인해 빈 점포 등 유휴공간이 늘어나면서 활력을 잃었던 북구 중앙동 일대를 장인적 에너지와 창조적 의식을 발휘하며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 중이다. 또 곧 철거될 듯한 낡은 거리의 풍경들은 `사라져 가는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꿈틀로 작가들은 이제 거리의 존재감이 시민들에게 가져다주는 무형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기회를 어떻게 제공할 것이냐 하는, 보다 깊은 고민이 남아있을 뿐이다. 전 세계인들에게 탐방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만들어내 시민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 있는 문화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장소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의 모습을 차례로 소개한다.

꿈틀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업실이 소나기다.

임향순 작가는 이곳에서 도자회화라는 조금은 생소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2층 작업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전시돼 있는 임 작가의 작품을 보면 도자회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도자회화는 쉽게 말해 도자판에 회화 작업을 한 것이다. 먼저 흙을 밀어 판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스케치, 조각, 채색 등 다양한 작업을 한 후 초벌구이를 한다. 그리고 유약을 바른 후 재벌구이를 하는 것이 도자회화의 기본적인 작업방식이다. 작가 스타일에 따라 작업 순서나 방식은 바뀔 수 있다. 한국화를 그리던 임 작가는 40대 중반 울진에 거주할 때 도자회화를 접하게 됐다.

“흙을 만질 때 촉감이 너무 좋아요. 제 손으로 만진 흙이 가마에서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는 설렘도 좋고요. 가마에 작품 10개를 넣으면 1개가 제대로 나올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원하는 작품이 나올 때 희열이 더 크지요. 이런 설렘과 희열이 저를 도자회화의 세계로 이끌었지요.”

흙과 불은 성질이 예민하고 가마는 변화무쌍하다. 흙과 불이 만나서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예측불가다. 흙과 불의 성질을 잘 알아야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임 작가는 “처음 흙덩이를 만졌을 때만 해도 세상에 뜻대로 되는 것을 만났다는 기쁨으로 한국화를 접고 흙 작업에 빠져 들었지만, 작업을 할수록 이 또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이제는 무심한 채로 작업을 즐기고 있네요”라고 말한다.

 

▲ 임향순 작가의 작업실 소나기.
▲ 임향순 작가의 작업실 소나기.

2008년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 임 작가는 뜻밖의 호응에 힘을 얻어 이듬해 서울 인사동에 작업실 겸 전통찻집을 마련한다. 당시 인사동에서도 도자회화는 낯선 세계여서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가마를 울진에 둘 수밖에 없는 여건이어서 임 작가는 서울과 울진을 오가며 작품을 빚어냈다.

“전통찻집을 하면서 밤에 작업하고, 서울과 울진을 오가는 강행군을 3년 동안 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작업에 전념할 수 있었고, 제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던 인사동 3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지요.”

임 작가는 울진과 서울 인사동에 이어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에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타향이지만 말이 통하는 작가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처음에는 소나기를 도예카페로 꾸몄다가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카페를 접고 작업실로만 쓰고 있다.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따뜻한 차를 대접해준다.

임 작가의 작품에는 나무, 산, 바다, 마을, 어선 등이 등장한다. 30년 머물렀던 울진의 아름다운 풍광을 잊지 못해서다.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고, 따뜻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여운 깊은 작품에 차향 짙은 소나기를 잊지 못해 종종 발걸음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 작가는 꿈틀로의 동료 작가와 연말에 작품전을 열 계획이다. 기한에 맞춰 작품을 준비할 수 있을지 부담이 되지만, 올해만큼은 인사동 시절처럼 작품에 푹 빠져들고 싶다고 한다.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지요. 꿈틀로가 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가마만큼 뜨거운 열정이 어떤 작품을 빚어낼지, 임 작가의 지인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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