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보수정권의 실정 가운데 손꼽히는 것이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 직원이 조직적으로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을 올렸다는 것이 사건의 요체다. 이 사건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일명 ‘드루킹’사건으로 댓글조작의 늪에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의혹이 커져만 가는데 청와대는 특검수용에 부정적이다. 해명처럼 무고하면 특검인들 두려울 이유가 있을까 싶은데, 반대하는 까닭은 짐작키 어렵다. 지난 18일에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대선때 경선현장과 온라인상에서 지지해온 문재인 팬클럽 ‘경인선’을 격려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경제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뜻을 담은 조직인 ‘경인선’은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김모(필명 드루킹)씨가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조직이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문재인 후보 지지, 안철수 후보 비난 글을 집중적으로 올리며 네이버에서 댓글부대와의 전쟁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져 댓글의혹에 불을 지피고 있다. 드루킹의 흔적은 지난 해 대선과정에서도 있었다. 대선 당시 국민의 당은 드루킹을 포함한 네티즌 14명을 댓글 등을 이용한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바로 드루킹이 안철수 후보가 30% 중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MB아바타이기 때문이라고 안 후보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서로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 이때 민주당이 드루킹이 포함된 고발건을 콕 집어 취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협상에 나섰던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민주당측은 네티즌 14명 가운데 드루킹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반박했지만 드루킹에 대한 고발취하 요청이나 청와대 행정관 추천, 오사카 총영사 추천 같은 일은 드루킹과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든 깊은 관계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드루킹 사건을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게이트’로 규정한 자유한국당은 국회 본관에서 천막농성을 벌인데 이어 이틀 연속 의원총회를 열어 강도높게 규탄하고 나섰다. 바른미래당 역시 당 지도부와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총출동해 국회규탄대회를 열고, 청와대 항의방문을 통해 특검을 촉구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드루킹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드루킹의 인사청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알려진 김경수 의원이 경남도지사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석연치 않다. 김 의원은 당초 출마를 선언키로 했던 19일 새벽 돌연 출마선언 장소를 경남도청에서 국회 정론관으로 바꾸더니 국회 기자회견 역시 예정시간 30분을 앞두고 취소해 불출마선언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결국 김 의원은 이날 오후 “정쟁 중단을 위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경남도지사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김 의원의 출마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일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5번째 선고가 19일 내려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날 재상고심 선고에서 징역 4년 파기환송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드루킹 사건· 김기식 금감원장 낙마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소폭 반등했다는 점이다. ‘댓글조작으로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큰 소리친 드루킹의 망령이 현 정부를 댓글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