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획취재
지진 대응 일본을 보다

▲ 11•15 강진의 여파로 임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흥해초등학교 학생들이 여진 발생에 대비한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 11ㆍ15 강진의 여파로 임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흥해초등학교 학생들이 여진 발생에 대비한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지진 안전지대’ 안심하던 대한민국
경주·포항 지진 당시 전국민 불안 떨어

정부, 지진대응 체계 ‘대수술’ 착수
내진설계 의무대상 확대·인증제 도입
전국 단위 지진대피 훈련 실시도

포항시, 지진방재 선구도시 목표
현장중심 대응능력 고도화에 최선

글 싣는 순서

1. 지진 원인·특성과 한반도
2. 한신·아와지와 동일본 대지진
3. 고베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
4. 대한민국 방재는 어디쯤 왔나
5. 진앙지 포항 ‘뉴딜’을 꿈꾸며

 

▲ 스마트 지진방재 시스템 구축 업무협약식에서 이강덕 포항시장과 윤경림 KT 부사장이 시스템 구축 과정을 확인하고 있다.
▲ 스마트 지진방재 시스템 구축 업무협약식에서 이강덕 포항시장과 윤경림 KT 부사장이 시스템 구축 과정을 확인하고 있다.

□ 헛돌았던 지진방재대책

경주지진의 정부 대응은 참혹했다.

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경주시 남남서쪽 8.2㎞ 지점,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약 한 시간 뒤인 오후 8시 32분, 본진인 규모 5.8의 강진이 경주를 휩쓸었다. 이날 발생한 지진은 1978년 국내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였다. 경주는 물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진동을 느낄 만큼 강력했다. 행정안전부 추산 부상자 23명, 이재민 54세대 111명, 약 110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도 지진임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정보전달이 신속·정확하지 않았다. 이날 지진 이후 전 국민들에게 보내진 긴급재난문자는 8분이나 늦었다. 일부는 이 연락조차 받지 못했고, 최초 지진 이후 16분이 지난 오후 8시가 다 되서야 각 시민의 휴대전화에 발송됐다. 충분하고 신속한 설명자료 없이 5천만 대한민국은 원인도 모른 채 늦은 저녁 집 밖으로 나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물론 TV에서도 재난안내를 수분이 지난 뒤 짧게 내보냈을 뿐이었다.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모든 전산망이 마비됐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땅의 흔들림에 놀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었지만 모두가 불통이었고, 문자, SNS 등을 비롯한 모든 연락수단이 멈췄다. 일부 지역에서는 약 2시간 가량 전화 연결이 안되기도 했다. 지진을 관측하고 예보하는 기상청 홈페이지도 먹통이긴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한반도는 지진에 그저 방치돼 있었을 뿐이었다.

대피소도 마땅치 않았다. 주변에 대피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국민들이 대다수였다. 지진이 발생한 경주 역시 지정된 대피소와 재난 임시 주거시설도 마련돼 있었지만, 전쟁이나 풍수해 등에 대비한 시설이었다. 지진대피소는 없었다. 대한민국은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던, 이전까지 지진 안전지대라고 모두들 알고 있었다. 갈피를 못 잡던 주민들이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건물 주변에서 떨어져 본능적으로 넓은 곳을 찾아 삼삼오오 모이는 것 뿐이었다. 숱한 방재정책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간 건 없었다.

 

▲ 하마다 다사노리 일본 와세다 대학교 명예교수 일행이 액상화 현상이 발생한 송도동 주택가에서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 하마다 다사노리 일본 와세다 대학교 명예교수 일행이 액상화 현상이 발생한 송도동 주택가에서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 형식에서 실질적인 대책으로

경주지진 이후, 중앙정부는 지진 대응의 모든 부문에서 ‘대수술’에 들어갔다.

우선 지난해 12월 기존 내진설계 의무대상 기준을 3층 또는 연면적 500㎡에서 2층 또는 200㎡ 이상 건축물 및 모든 주택으로 확대했다. 법적으로 강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개인 소유 건축물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내진 설계를 적용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재산세와 취득세 등 지방세 감면율을 최대 100%까지 확대했으며, 소득세와 법인세 등 국세는 최대 7%(내진투자금액의 대기업 3%, 중견기업 5%, 중소기업 7%) 공제해 준다. 내진설계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축물 대장 및 부동산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내진성능을 표시하도록 했다. 또 ‘지진 안전 시설물 인증제’를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한다. 시설물 인증제는 민간 건축물과 시설물 등의 소유자·관리자가 필요한 경우 지진 안전 시설물 인증을 신청해 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고, 인증표시를 시설물 등에 부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건물주와 세입자 모두 느끼고 있는 지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방편이다. 이 외에도 교량이나 철도,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SOC시설의 내진보강은 오는 2019년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학교시설 내진보강 소요기간 역시 지진 예산을 투입해 기존 83년에서 34년으로 단축했다.

 

▲ 흥해체육관 대피소에서 포항의료원 의료진이 이재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 흥해체육관 대피소에서 포항의료원 의료진이 이재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거센 비판을 받았던 지진재난문자 송출체계를 지진 이후인 지난 2016년 11월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 기존에는 조기경보를 기상청이, 송출은 행정안전부가 담당해 차례를 거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기상청은 이동통신사(SKT·KT·LG U+)와 지진·지진해일 긴급 재난문자 서비스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신속·정확한 재난안내를 하기로 약속했다. 오는 6월부터는 규모 6.0 이상 지진 발생 시 강제 수신기능과 지진에 대한 행동요령을 포함하는 재난문자 발송 등의 서비스도 함께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지진조기경보 시간은 50초에서 25초까지 당겼다.

혼란을 가중시켰던 지진대피소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옥외대피소 8천155곳, 실내구호소 2천489곳을 구분해 지정했으며,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 지도와 T-map 등에서 대피소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전엔 없었던 전국단위의 지진대피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학교 안전관리사 제도 도입 및 안전교육·훈련 실시도 의무화했다. 지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장소와 상황별 구체적인 국민행동요령을 마련해 책자나 리플릿 동영상을 통해 상시 홍보하고 있다. 주택피해 지원기준 마련과 지진대응 전개양상을 반영한 매뉴얼 개선, 중앙과 지자체 모두 지진분야 전담조직을 확대했으며, 전문가 양성과 지진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

지진방재 전문인력 양성기관(고려대, 강원대, 충북대, 전남대, 부산대)을 지정해 운영하면서 지진대응역량강화를 준비중이다. 또 미지의 구역이었던 한반도 활성단층 조사·연구에 착수했다. 총 5단계 1천175억원을 들여 오는 2041년까지 25년간 추진하기로 했다. 범정부 지진 대응역량 강화를 위해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조직과 전문인력을 102명(중앙부처 45명, 지자체 57명)으로 보강하기도 했다.

 

▲ 대피소가 마련된 흥해체육관에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식사와 음료, 간식등을 제공하고 있다.
▲ 대피소가 마련된 흥해체육관에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식사와 음료, 간식등을 제공하고 있다.

□ 방재대책에 앞장서는 포항

최근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11·15 포항지진’의 피해 규모가 총 3천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직접 및 간접 피해액으로 나눠 포항지진 발생에 따른 자산 손실액을 추계한 결과다. 직·간접적으로 포항은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포항지진은 규모가 경주보다 작았지만 피해는 오히려 더 컸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께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포항시가 집계한 피해액은 현재 668억 2천 5백만원이고, 복구비용은 1천억원을 넘겼다.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명됐지만,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액상화현상이 나타나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이 집중됐다. 계속된 여진은 지난 3월 30일자로 100회를 기록한 뒤 멈췄다. 하지만, 지진이 끝난 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모로 포항지진은 경주지진보다 심각했다.

포항지진이 남긴 가장 큰 문제점은 이재민이었다. 포항지진이 포항 도심지를 강타했고, 발생 깊이가 얕았기 때문에 주거지의 피해가 심각했다. 특히 대성아파트는 30년이 넘은 아파트였다. 진앙지 주변으로 내진설계가 없었던 오래된 건축물이 많았던 것도 포항지진에 큰 피해를 입은 이유로 지적된다. 포항시는 전파·반파·소파로 나뉜 피해규모에 따라 우선적으로 재난지원금과 의연금을 지급하는 한편, 지진의 여파로 현 주거지에서 생활이 불가능한 이재민들의 이주작업을 진행했다. 국민임대아파트 172호와 다가구 128호 등 총 300호의 물량을 지원받아 현재까지 653세대 이재민 중 95%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다. 월 임대료는 경북도와 포항시가 각각 50%씩 나눠 부담하며, 전세임대 신청자에게는 LH의 지원을 받아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 포항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생하던 이재민의 이주가 시작됐다.
▲ 포항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생하던 이재민의 이주가 시작됐다.

강력한 지진을 겪은 포항시는 현재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통해 지진방재 선구도시로 나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4대 계획(△예측·예방 △사전대비 △지진발생시 대응 △조사·복구)을 마련해 추진하면서 현장 중심의 지진대응능력을 고도화시키고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데 목표를 뒀다. 주민 방재지도자 육성, 지진감지 센서와 방사선 감지기 추가설치, 기상청 및 교육청과 조기경보 협약 등을 통해 지진 예측·예방 기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재난방송 송출협약, SNS 상황전파단 운영, 주민소통 현장채널 개설, 이재민 관리 전자인증 시스템 도입 등을 마련해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을 정착시키기로 했다. 빠른 조사와 복구를 위해 원스톱 주거안정 시스템 마련, 이재민 주거안정협의회 구성, 포항 해비타트운동 전개, 심리안정 현장지원센터 및 국립 트라우마 치유센터, 국립지진방재센터 유지 등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동안 형식에 지나지 않았던 지진대피훈련을 수정해 실질적인 방안을 담았다. 읍면동 권역별 순회교육을 통해 지역 내 초·중·고 126개교를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이론·체험교육 등의 종합교육을 실시한다. 기업현장지원단을 활용해 개별 기업의 지진 대응계획 수립 및 대피훈련 실시 여부를 확인하고, 미수립 기업에 대해 자체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읍면동별 시범 마을·아파트를 지정해 자체 대피훈련을 정기적으로 추진하고, 학교·기업·다중밀집시설 등도 기관·장소별로 적합한 자체 매뉴얼을 수립해 정기적인 대피훈련을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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