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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고양이, 꿈 그리고 나

등록일 2018-05-17   게재일 20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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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는 경계심도 많지만 한 없이 태평한 동물이기도 하다. 고양이가 이렇게 태평한 데는 시간관념을 담당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신피질이 전체 뇌의 용량 중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쥐는 신피질이 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쥐과인 다람쥐는 겨울을 대비해 내내 도토리를 비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쥐가 고양이를 두려워한다.  
▲ 고양이는 경계심도 많지만 한 없이 태평한 동물이기도 하다. 고양이가 이렇게 태평한 데는 시간관념을 담당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신피질이 전체 뇌의 용량 중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쥐는 신피질이 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쥐과인 다람쥐는 겨울을 대비해 내내 도토리를 비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쥐가 고양이를 두려워한다.

△깐돌이

‘골짜기 골짜기 말은 많이 들어도 이런 골짜기는 처음이야’라는 말을 듣곤 했던 물안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어릴 때는 고양이나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 개를 메어놓긴 했지만 목줄을 풀고 달아날 때가 많았다. 다섯 살 때까지 키운 진돗개는 그렇게 달아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쥐약을 먹고 죽었다.

가장 오래 함께 지냈던 개는, 그때는 개의 종에 대해서도 몰랐는데 돌이켜 보면, 아마도 코기 계열이었던 것 같다. 이 강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삿짐센터를 운영하시던 작은아버지가 데리고 오셨다. 어떤 집에 이사를 하러 갔는데 마당 넓은 집에 살던 주인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이 강아지를 버리려 했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반려동물’은커녕 ‘애완동물’이라는 개념도 없이, 개는 그냥 짐승이었고, 더 심하게는 식용이었을 때니까. 작은아버지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덥썩 받아가지고 오셨다.

명절에 작은아버지가 이 강아지를 데려다 놓았다. 이 녀석은 암컷이었는데, 어머니는 그런 것 따윈 무시하고 하도 까불까불한다고 해서 ‘깐돌이’라고 불렀다. 깐돌이는 총명해서 일을 하러 갈 때도 따라왔고 지겨우면 혼자 집으로 갔다. 신통하게도 멀리 동네 밖 아버지 경운기를 귀신 같이 알아맞췄다. 깐돌이가 마당에서 짖으면 형과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공부하는 척을 했다. 깐돌이는 우리 집에서 거의 10년을 함께 살다 자연사했다.

시골의 고양이는 거의 대부분이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를 데리고 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를 키우며 대물림해서 내려간다. 강아지는 풀어두어도 집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데 고양이는 늘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아무리 잘해줘도 1년이 채 되지 않아 집을 나가버렸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개나 고양이가 싫었다. 자기들 마음대로 떠나가 버렸고 자기들 마음대로 죽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이런 식인 것 같아서, 늘 버림받는 것은 나인 것 같아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데도 괜히 냄새가 난다며 동물을 멀리했다.

△루미

작년 10월 초에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옆집 암고양이를 좋아하는 이 숫고양이는 문을 열어놓으면 아주머니의 집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으면 그 고양이를 붙잡아 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루미는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 집에 온 후 루미는 바깥에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수의사에게 중성화 수술에 대해 물었더니 일단 어느 정도 친해진 뒤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

고양이 사료, 간식, 화장실, 모래, 장난감 이런 것들을 샀다. 또 고양이를 안정시키는데 좋다고 하는 캣닢 스프레이도 선물받았다. 루미는 한 동안 잘 지냈다. 내 침대를 좋아해서 방문을 열어놓으면 이불에 실례를 하곤 했지만, 그런 것 빼고는 다 좋았다. 한창 바쁠 때도 루미와 놀아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침마다 녀석이 흩뜨려 놓은 모래를 치웠다. 그걸 하려고 비싸기로 유명한 진공청소기도 구입했다.

루미는 두 달 동안 두 번 탈출을 했다. 한 번은 화장실 방충망을 발톱으로 뚫고 집을 나가버렸다. 다행히 옆집 암고양이를 만나고 있어서 쉽게 데려올 수 있었다. 마지막 탈출은 심각했다. 화장실 방충망을 고치기 전이어서 일전에 달아났던 그 구멍으로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루미는 방충망을 갈갈이 찢어놓고 사라졌다. 마치 일부러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내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랬던 루미는 겨울 어느 날, 암고양이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나타나 우리 집 옆 허름한 창고에 기거했다. 나는 이 녀석에게 줄 사료와 간식을 새로 구입했다. 그렇게 서너 달을 지냈을까, 녀석은 새끼들을 데리고 다시 휑하니 사라졌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랬던 루미가 지난 주 비오는 날, 다시 나타났다. 새벽 두 시, 루미가 나를 보고 울었다. 나도 반가워 눈물이 났다. 사료를 챙기러 집에 들어간 사이 현관문까지 따라왔다. 녀석은 집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쏜살같이 튀었다. 배가 고파 나를 찾아왔지만, 다시 잡히는 것은 싫었던 것 같다. 다시 가슴이 아렸다.

예전에 꿨던 꿈이 생각난 것은 순전히 루미 때문이다.



△고양이의 자살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였다. 취업도 대학원 진학도 실패했다. 친구집과 이모집을 전전하였고, 그 고달픈 삶 앞에서 전전긍긍할 때였다. 그러다 자살을 했고 자살한 사람들만 모이는 지옥에 갔다. 사람들은 줄을 지어 어느 곳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 줄이 끝나는 곳에는 민둥산이 있었다. 어렴풋한 그 산 꼭대기에 염라대왕이 높은 의자에 앉아 사람들에게 왜 자살했는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타당하면 천국으로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는 듯했다.

줄은 길었고 줄의 길이만큼 사람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끝나지도 않을 것 같은 줄의 끝에 서서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지루하기도 해서 그만 꿈에서 깰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내 앞에서 서너 번째에 서 있는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가 궁금해서 이 지루한 꿈을 이어가기로 했다. 드디어 고양이의 차례가 되었다.

“저는 원래는 집고양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저를 사랑했고 저 역시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조금씩 자라며 제 발 안 속에 깊숙이 감춰진 발톱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발톱을 저는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지만, 이 발톱은 제가 억제할 수 없는 욕망처럼 제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왔습니다. 감출 수 없다는 것, 제 안에 자라고 있는 이 야성을 숨길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

천국으로 가던 사람도 지옥으로 가던 사람도 멈춰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고양이를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줄은 자연스럽게 ‘ㄴ’자 모양으로 휘어졌다.

“집을 나와서 저는 한동안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도시의 어두운 밤을 기웃거렸고 담장이든 지붕이든 마음대로 뛰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 야성을 사용할 곳이 없었습니다. 도시에는 쥐도 없었고, 쥐가 있다하더라도 사냥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고,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 봉투를 찢는 일에 제 발톱을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고양이의 말은 유장하면서도 논리정연했다.

“이럴 바엔 제가 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에게 주어진 자유에 도취되어 어디까지 온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설사 간신히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제 야성을 억누르며 사람들과 함께 살 엄두를 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태생이 집고양인 저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무서움을 느꼈고 그런 이유로 도시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길고양이로는 제 야성을 충족시킬 수 없었고, 그 방법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람들은 조용했다. 번번히 말을 끊기 좋아하던 염라대왕도 고양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 발은 작고 털로 보숭보숭하지만 거기에 감춰진 날카로운 발톱을 숨길 수 없는 저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승의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나는 이 꿈이 끝나기 전, 이 고양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미를 볼 때마다 아린 것은, 내가 두고온 스무 살 무렵의 막막하기만 했던 그 때의 나이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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