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부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부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난민 수용거부’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온다.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사람들의 난민신청을 거부하라는 것이다. 이 글은 나흘만에 16만의 동의를 얻는다. 가히 폭발적이다. 그런데 국민청원에 동의하는 분들은 예멘이 어디에 있고, 어떤 나라이며, 어떤 역사적인 경로를 거쳐 난민이 발생했는지 아시는지 궁금하다.

예멘은 지금 내전 중이다. 52만㎢의 땅에 2천800만 주민이 거주하는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쪽, 오만의 서쪽에 위치한다. 예멘 건너편은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가 있는 아프리카다. 일찍이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았던 예멘을 1839년부터 영국이 남북예멘으로 나누고, 남예멘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오스만제국의 1차 대전 패배로 북예멘이 1918년 독립하고, 1967년에는 남예멘이 소련의 도움을 받고 독립한다. 북예멘은 이슬람의 종교적 권위에 의지해 국가를 경영했지만, 남예멘은 소련식 사회주의 정책을 국가경영 전략으로 채택한다. 그 결과 남북예멘은 1972년과 1978년 두 차례의 내전을 겪지만, 1990년 무혈통일에 이른다. 1994년 남예멘의 연방탈퇴를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무력으로 진압한다. 2011년 아랍의 봄이 닥치자 남북예멘은 다시 내전에 접어들게 된다. 시아파를 중핵(中核)으로 하고 미국에 적대적인 후티 반군은 수도인 사나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수단, 쿠웨이트, 카타르, 모로코, 바레인과 연합군을 형성해 후티 반군과 맞서고 있다. 수니파의 총궐기에 대항해 시아파의 맹주(盟主)인 이란이 후티 반군을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정황(政況)으로 예멘난민이 발생한 것이다.

유엔은 예멘을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 위기국가로 규정했지만, 확실한 지원이나 개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난민들은 비자없이 입국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로 이동했지만, 2018년부터 말레이시아도 난민수용에 난색(難色)을 표하고, 3개월만 체류허가를 해주고 있다. 체류연장이 불가능해진 549명의 예멘난민들이 말레이시아를 경유(經由)하여 제주도에 도착한다. 제주도를 떠난 일부난민을 제외하면 제주도에 남아있는 예멘난민은 486명에 이른다.

제주당국은 직접적인 물적 지원보다 어선과 양식업, 요식업 일자리 같은 취업연계로 난민을 돕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402명의 난민들이 일자리를 구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예멘난민들은 지구촌 곳곳을 떠돌아야 할 운명이다. 주지(周知)하는 것처럼 유럽 각국은 아랍의 봄 이후로 중동 곳곳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수용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오늘날 중동의 바둑판같은 국경획정은 1916년 제국주의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시원(始原)이다. 오스만제국의 분할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맞추려다보니 아프리카 지도처럼 중동지도 역시 줄자로 그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예멘의 분할과 분단과 내전의 근저에도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배가 자리한다. 남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을 도륙(屠戮)하고,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신음하게 만든 유럽 제국주의의 본령(本領)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미군 장교가 그은 38선으로 민족분단을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우리도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7위의 수출입 대국이자 15위 이내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지금과 여기는 국민들의 피땀어린 분투노력에 힘입은 것이지만, 세계 전역의 원조와 방책도 기억해야 한다. 도움받은 기억을 되살려 이제는 도움을 주는 성숙하고 아량있는 대한민국과 그 시민으로 우뚝 서기를 희망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